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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인공지능(AI)은 산업,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거대한 변화를 이끌고 있으며 수천조 원에 달하는 경제적 가치 창출과 생산성 혁신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따라 AI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각국의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이러한 시점에 국내에서는 최근 하정우 네이버 AI 혁신센터장이 대통령비서실 AI 미래기획수석으로 선임되면서 ‘소버린 AI’의 개념과 필요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소버린 AI는 ‘자주적인’ ‘주권이 있는’이라는 의미의 소버린(sovereign)과 AI가 결합된 용어다. 단순히 AI 기술을 자체 개발하는 수준을 넘어 국가가 해외 간섭 없이 독립적인 데이터, 인프라, 기술 역량을 기반으로 자국의 제도, 문화, 가치관을 반영한 AI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것을 일컫는 용어이다.
2020년대 들어 AI가 정책·자원·데이터·인프라 측면에서 독립성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소버린 AI는 기술 용어를 넘어 국가 전략과 정책 방향을 상징하는 핵심 개념이 되었다.
그렇다면 소버린 AI는 왜 필요할까. AI의 기술적 자립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그 AI가 자국의 가치관과 윤리, 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며 국가의 이익과 존속을 담보할 수 있느냐이다. 이를 위해 독립적인 데이터 확보와 클라우드 인프라 구축이 핵심 과제로 꼽힌다. 국가 안보, 사회 안정, 개인정보 보호와 직결되는 분야에서 해외 플랫폼이나 해외 기술 의존은 큰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한국은 언어라는 요소 덕에 ‘디지털 자주권’을 경험했다. 영어 기반 글로벌 서비스가 진입하기 어려운 2바이트 언어 체계 덕분에 한글 워드프로세서는 독보적 지위를 확보했고, 네이버는 Yahoo·Google과의 경쟁에서 국내 시장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러나 AI 시대는 다르다. AI에는 모국어가 없다. AI는 처음부터 다국어 데이터와 글로벌 정보를 기반으로 학습하며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다. 이로 인해 언어적 특성이 더 이상 진입 장벽이 되지 못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소버린 AI는 글로벌 AI 산업 경쟁 속에서 최선의 전략인가 아니면 세계 흐름에서 고립되고 뒤처지는 ‘갈라파고스 AI’로 전락할 가능성은 없는가.
AI는 규모의 경제와 글로벌 협업을 전제로 발전한다. AI가 다루는 데이터는 방대하고, 이를 학습시킬 컴퓨팅 파워는 천문학적이다. 국내 데이터와 인프라에만 의존하는 소버린 AI는 자칫 세계적 흐름에서 고립된 작은 생태계가 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소버린 AI를 무조건적 목표로 삼기보다는 글로벌 AI 생태계 속에서 한국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해 그 분야의 최고가 되는 전략이 필요하다. 반도체 산업이 좋은 예다. 삼성전자나 TSMC가 자국만의 반도체 표준에 갇혔다면 지금과 같은 글로벌 위상을 가지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들은 글로벌 시장이 필요로 하는 핵심 역량에 집중하며 독보적 위치를 확보했다. AI도 마찬가지다. AI 주권과 독립성은 중요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대한민국이 핵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분야를 발굴하고 투자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또한 AI 전략은 국가 차원을 넘어 기업과 개인이 각자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AI를 접목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AI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혁신을 가속하는 도구다. AI 기술을 개발하는 데 매몰되기보다 AI를 활용해 세계에서 가장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영역을 선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에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의 ‘AI 100조 전략’은 소버린 AI를 안보, 개인정보, 기간산업 등 필수 분야에 전략적으로 도입하되 글로벌 협업과 개방형 생태계를 통해 산업 혁신을 추구하는 균형 잡힌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
AI 시대의 승자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AI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독보적 경쟁력을 확보한 나라와 기업이 될 것이다. 소버린 AI는 그 전략을 뒷받침하는 수단이어야지 목적이 되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함정에 빠져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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