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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기일이야, 일찍 와. 승연이 남편에게 연락했다. 승연은 어제 구입해서 핏물 빼고 한소큼 끓여 잡냄새 뺀 갈비에 과일 양념을 한 찜갈비를 준비했다. 아버지가 좋아하던 음식이었다. 갈비찜은 가사일 도와 주던 이모가 맛있게 만들었는데 아버지 돌아가신 후 승연이 이모께 배웠다. 승연은 갈비찜과 호박전을 준비했다. 소금 간을 하지 않은 호박전을 아버지는 좋아했다. 식감이 좋다고 자주 해 달라 요구한 음식이다.
상차림을 간소화하자 해서 제사 음식 가짓수가 줄어들었다. 아버지가 뭘 좋아하셨더라. 승연은 빠진 게 없는지 점검했다. 아, 사과 감주. 김치냉장고에서 큼직한 통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어머니가 만든 것 중 가장 맛있다고 칭찬했던 후식이었다. 어머니는 명절 때 사과가 선물로 들어오면 좋은 건 골라서 제사 때 쓰고 벌레 먹거나 모양이 안 예쁜 건 골라 감주를 만들었다. 통사과, 통생강, 통계피 넣은 물을 팔팔 끓이다가 설탕으로 간을 했는데 설탕 대신 식힌 후 꿀을 넣으면 맛이 일품이었다. 승연이 아버지 기일마다 찜갈비와 호박전, 사과 감주는 도맡아 장만했다.
어머니가 서교동 집을 팔고 분당으로 옮긴 건 승연의 결혼 얘기가 오갈 무렵이었다. 혼자 큰 집에서 적적해하는 어머니를 오빠 승호가 모시겠다고 했다. 승호와 서현동에서 3년 정도 살다가 장가 간 아들과 같이 사는 게 불편하다면서 지금의 정자동으로 이사 왔다. 데모질이나 하는 막내딸 유학 보내려 했는데 정작 언니 승미가 미국 유학을 원했다.
아버지 죽음에 절규하고 분노하던 언니는 대한민국을 증오했고 다시는 한국 땅을 밟지 않겠다며 가족과 이별했다. 승미는 한국을 떠난 뒤 단 한 번도 한국을 찾지 않았다. 승미는 그곳에서 학업을 마친 후 교수가 되었고 미국인 변호사와 결혼해 아들·딸을 두었다. 어머니 생신, 아버지 기일마다 승미 가족이 영상 통화로 남은 가족의 안부를 물었다.
승호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회사를 떠안는 신세가 되었다. 숙부가 대표이사로 취임해 혼란한 상황을 떠안고 정리했지만, 아버지의 부재로 안팎에서 혼란을 겪었다. 시스템이랄 건 없으나 아버지가 이룬 기업 질서는 견고하고 안정적이었다. 부서마다 제 역할만 하면 톱니바퀴 맞물려 돌아가듯 오차 없이 진행되었다. 노조들의 모함과 억지, 파괴 본능은 아버지만 비극의 주인공으로 버려 두지 않았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몬 노조 두 명은 살인죄, 노조 간부 두 명은 살인 방조죄로 옥살이를 했다. 그리고 몇몇은 회사를 떠났다.
승호는 군대 제대 후 정일어패럴에 입사했다. 승호가 5년 전 대표이사직에 취임하면서 숙부는 아버지 빚을 갚았다며 물러났다. 승호는 아버지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 아버지가 하던 대로 공휴일에도 회사로 출근했다. 아버지보다 많이 배웠다 해도 아버지만큼 기업의 본질과 가치를 이해하고 사람 관리하는 건 어려웠다.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승호는 기도했다.
‘아버지 도와주세요. 아버지라면 어떻게 했을지 제게 지혜를 주세요.’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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