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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계급투쟁 하자면서 얼굴에 계급 매기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선배 자취방에서 세미나 하고 모두 한방에서 자, 그러면 남자들이 여자애들 한 명씩 데리고 나가더라고. 어딜 가는지 모르지만. 나는 남자 네댓 남아 있는 방에서도 항상 혼자 남았어. 위선자 새끼들. 그 새끼들 예쁜 애들하고 히히덕거리는 동안 저것들 먹고 난 설거지는 내 몫이었어.
나? 노동 현장에서 일하려 준비하는 중에 내 남동생이 교통사고로 죽었어. 그래서 운동은 더 이상 못하게 됐지. 내가 가장이 되는 바람에. 겨우 졸업하고 취직 준비했어. 항상 서류에선 합격하는데 면접만 보면 떨어지는 거야. 왜 그런가 했는데… 그때 알았지. 내가 상당히 못생겼다는 걸. 그래서 수술하기로 결심했어.
돈만 모으면 수술했어. 쌍꺼풀하고 나면 코 세우고, 이마 지방 넣고, 턱 깎고. 턱 깎을 땐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을 정도로 아파서 회의감이 생기더군. 붕대 감은 얼굴로 거울을 보면 퉁퉁 부은 사스콰치보다 더 못났더라. 고통의 시간이 지나니 못생긴 내가, 봐 줄 만한 얼굴이 돼 있더라고. 이후에 남편 만난 거야.”
강윤희는 종업원을 불러 물을 더 달라고 요구한 뒤 말을 이어 갔다.
“내 남편, 변호사면 뭘 해. 너무 키가 작아서 맞선만 보면 퇴짜 맞았대. 내가 그 심정 알잖아. 그래서 결혼했지. 그러다 아들 때문에 수정이 알게 된 거고…. 수정이 엄마가 승연 씨인 거 알고 깜짝 놀랐고. 긴가민가했어. 그때 동아리 워크숍 같이 간 옛 친구한테 수정이 카톡 대문 사진에 엄마랑 찍은 거 보여줬더니 승연 씨가 맞다고.
자긴 여전히 예쁘더라. 솔직히 샘이 났고 지난번 밥 먹으면서 대통령 두둔하는 거 보니 열도 받았고. 그 여편네는 무슨 천운이 있어서 대통령 부인까지 하는 건지. 암튼 미안해요. 그럴 의도는 없었어요. 수정이한테는 내가 잘 말할게요. 내가 벌인 일이니 내가 수습해야죠. 나도 운동했던 과거, 남편한테도 말 안 하는데.”
강윤희는 고개를 숙였다. 자기가 경솔했음을 인정했다.
“네, 그 자리에 있었던 일, 기억나요. 내 순서가 되었어도 나는 옷을 벗지 않았을 거예요. 옷 벗는 거랑 성적 자기결정권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렇다고 질투 때문에, 아무도 윤희 씨를 찾지 않았다는 이유로 함구하기로 했던 그날 일을 내 딸한테 말해요? 윤희 씨, 다른 건 기억 안 나요? 그날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날 일을 묻기로 했는지.”
그날 기순이는 자정이 다 돼서 펜션 밖에 바람 쐬러 나갔다가 윤간당한 게 떠올라 울분이 밀려왔다. 승연은 강윤희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은 남자들이 안 찾아서 목숨도 건지고 수술도 해서 행복한 삶을 사는데, 당신은 여자 취급 안 당한 게 수치스럽고 힘들었는지 몰라도 어떤 이는 그 반대의 이유로 고통받았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수술해서라도 밝은 인생 찾았던 것처럼 마음도 수술할 수 있다면, 그녀는 죽음을 택하지 않았을 거라고.
“인생에서 돈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가장 쉬운 방법이지요. 윤희 씨는 돈으로 결국 인생 바꾼 거잖아요.”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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