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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최남단 노령산맥 산간에 자리한 순창은 고추장으로 명성을 얻고 있지만 한편으로 고추장 때문에 다른 매력은 묻히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
하늘로 길을 낸 체계산 출렁다리와 절벽 따라 걷는 용궐산 하늘길, 섬진강변 자전거길, 꽃으로 가득 양지천과 오랜 기다림을 통해 웰빙 음식으로 다시 태어나는 장류들….
속도가 중요시되는 기술 발전 시대에 순창은 거꾸로 느림과 기다림을 브랜드화해 인기 여행지 반열에 올라섰다.
체계산 출렁다리와 유채꽃밭
채계산은 순창 적성면과 남원 대강면 일원에 자리하고 있는 해발 342m의 산이다. 회문산·강천산과 함께 순창의 3대 명산으로 꼽히는 곳으로 바위가 책을 쌓은 것처럼 보인다 하여 책여산으로도 불린다.
채계산(釵笄山)이라는 이름은 적성강변 임동의 매미 터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마치 비녀를 꽂은 여인이 누워서 달을 바라보는 것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많이 쓰는 한자는 아니지만 비녀 ‘채’, 비녀 ‘계’ 자를 쓴다.
이런 지형을 호그백(hogback)이라고 한다. 길고 좁은 능선이나 양쪽 측면에 가파른 경사를 가진 언덕 지형으로 보통 암석층이 서로 다른 각도로 기울어져 있어 한쪽 면은 경사가 급하고, 다른 면은 완만한 편이다.
채계산 출렁다리는 적성 채계산과 동계 채계산을 하나로 잇는다. 다리 밑으로는 24번 국도가 지난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긴 무주탑 산악 현수교로 길이가 270m에 이른다.
채계산 중턱 커다란 바위 하나가 눈길을 끈다. 화산옹이라고 불리는 이 바위는 신통력이 있어 풍년이 들려면 하얗게 되고, 흉년이 들려면 검게 변하고, 큰불이 나는 해에는 파랗게 되고,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닥치면 붉은색을 띤다고 한다.
4월 말이면 채계산 출렁다리 주변 적성뜰은 유채꽃 세상이 된다. 이곳 유채밭은 순창군의 1094농가가 경관보전 직불사업에 참여해 861만㎡의 대지에 경관작물을 재배하면서 조성됐다. 4월 말이면 채계산유채꽃축제가 열려 걷기 대회, 유채꽃 가요제, 카누 체험 등 다양한 활동이 펼쳐진다.
섬진강변 따라 달리는 섬진강변 자전거길
섬진강 자전거길은 전북 임실 섬진강 생활체육공원에서 시작해 전남 광양배알도 해수욕장까지 총 174Km에 이르는 구간으로 전국 자전거길 가운데 자연미를 잘 살린 것으로 이름 높다.
특히 순창과 남원 경계에 이르면 폐교각(219m)과 폐터널(390m)을 리모델링하여 조성한 친환경 자전거길이 나타난다.
순창 구간의 으뜸 볼거리는 마을 사람들이 수호신처럼 받들고 있는 요강바위다. 무게 15t에 높이가 2m에 이르는 이 바위에는 장정 3~4명이 들어갈 수 있는 포트홀이 형성돼 있다. 이런 포트홀은 1억 년 정도 반복해서 물살을 맞아야 생긴다고 한다. 이 같은 바위들이 장군목에서 구암정까지 약 5km가량 이어진다.
6·25전쟁 때는 마을 주민이 요강바위에 몸을 숨겨 화를 면했다고 하며 요강 바위 위에 앉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속설도 있다.
1993년에는 요강바위가 도난당하는 일이 있었다. 다행히 경기도 광주 비닐하우스에서 발견돼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황당한 사건이었지만 요강바위가 전국적인 명성을 얻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강 중간중간 떠 있는 흰 바위들을 보며 자전거 페달을 밟다 보면 마실오토캠핑장이 나타난다. 아이들이 첨벙거리며 물장난을 치는 동안 엄마들은 대수리(다슬기)를 잡는 모습이 여유로운 봄날의 풍경을 완성한다.
안개 도시가 만든 명품 장류
순창은 햇살이 유난히 강하고 안개가 많아 장류 제작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었다. 안개 낀 날만 일 년 평균 77일에 이른다. 장을 만들려면 발효가 필수인데 발효는 효모가 탄수화물을 분해하면서 일어나게 된다. 순창의 습한 환경은 효모가 활동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유리해 순창군을 장류의 본고장으로 만들어 주었다.
지난해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순창의 위상도 올라갔다. 현재 순창군 발효미생물산업진흥원에서는 10만여 개의 발효미생물 균주를 확보해 두고 있으며 순창발효테마파크는 한국관광공사 선정 2025년 강소형잠재관광지에 이름을 올렸다. 발효테마파크에서는 발효 음식의 유래와 발전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흔히 발효식품이라고 하면 김치와 된장만 생각하기 쉽지만 가장 오래된 것은 술이다. 2016년 대한민국명주대상에서 최고상을, 2020년 대한민국주류대상에서 대상을 차지한 ‘지란지교’는 순창의 술 연구가 임숙주 씨가 생산하고 있는 전통주다.
효모는 15℃ 이상에서만 활동하는데 임씨는 100일 동안 14℃도 놓아둠으로 발효의 급속한 진전을 막는 방법을 사용했다. 효모는 이 기간 먹이를 먹지 못한 채 잠자고 있는 상태가 되는데 100일이라는 임계점을 넘어버리면 술에서는 군내가 나기 시작한다. 달콤하고 향기로운 맛의 최정점에서 발효가 중단된 술은 90일간의 숙성을 거쳐 세상에 나오게 된다.
순창의 3대 장류인 고추장·간장·된장을 활용한 ‘순창 삼합’에는 독특하게도 홍어가 없다. 미슐랭 스타에 빛나는 유현수 셰프와의 협업으로 개발한 이 음식은 순창 된장으로 맛을 낸 삼겹살 수육과 고추장소스·파채를 얹은 장어를 묵은지에 싸 먹는 음식이다. 깔끔한 묵은지와 구수한 장류의 맛이 기가 막히게 조화롭다. 매콤한가 하면 고소하고 기름진가 하면 산뜻하다.
순창고추장을 이용한 ‘고추장 불고기’도 빼놓을 수 없는 메뉴다. 독특하게 소고기를 이용한 이 음식은 텁텁한 고추장 양념이 소갈비에 스며 부드러움과 매콤달콤함이 탁월한 조화를 이룬다.
순창 읍내 오래된 골목길에 3대째 운영하는 ‘창림동두부마을’은 직접 두부를 만들어 손님상에 내는 식당이다. 모두부와 순두부 둘 다 유명한데 양념 없이 하얗게 제공되는 순두부는 깔끔한 맛으로 유난히 충성고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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