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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핵 보유국’인 인도와 파키스탄이 7일(현지시간) 미사일 공격을 주고받았다. 지난달 22일 카슈미르 휴양지 파할감 인근에서 관광객 등 26명 사망 17명 부상자를 발생시킨 총기 테러 이래 양국은 격렬한 비난을 서로 퍼부으며 ‘보복’ ‘보복의 보복’을 거듭하고 있다. 이날 인도의 파키스탄 댐 폭파 소식도 전해졌다. 앞서 AP·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이날 새벽 자국군이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9곳을 공격하는 ‘신두르 작전’ 개시를 성명으로 밝혔다.
파키스탄 측 주장으론 인도가 이날 이른 아침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와 펀자브주 등 다섯 곳에 미사일을 발사해 어린이 포함 민간인 3명이 죽고 14명이 다쳤다. 파키스탄 사마TV는 소식통을 인용해 이날 파키스탄군이 인도 내 목표물에 보복 미사일 공격을 했으며 공군이 인도 전투기 두 대를 격추했다고 전했다. 파키스탄의 48시간 영공 폐쇄에 따라 수도 이슬라마바드 국제공항 출입 모든 항공편이 파키스탄 남부 카라치 공항으로 회항해야 했다.
양국은 실질적 국경선인 실질통제선(LoC) 근방에서 열흘 연속 소규모 교전을 벌여 왔다. 2019년 2월 카슈미르 자살폭탄 테러 이후 최대 긴장 국면이다. 지난 70여년 여러 차례 서로를 향해 크고 작은 군사적 충돌을 거친 인도와 파키스탄이지만 이번엔 인도가 ‘강물 차단’까지 감행해 이례적 상황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심지어 전면전 수준의 전쟁 때도 유지된 ‘인더스 강 협정’(1960)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파키스탄은 인더스 지류에 농업 및 식수의 80% 이상을 의존한다. 인구밀도 세계 최고 지역인 두 나라에겐 수자원 접근권이 안보와 경제에 직결되는 민감한 문제다.
무함마드 칼리드 자말리 러시아 주재 파키스탄 대사가 3일 러시아 관영 RT와의 인터뷰 때 발언 내용이 파키스탄 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그는 인도 측의 인더스 강물 차단을 “전쟁 행위”로 규정하며 “총력 대응”을 다짐했다. 여기엔 재래식 전력과 핵전력이 포함된다는 점도 암시됐다. 그 전날 카와자 무함마드 아시프 파키스탄 국방부 장관 역시 현지 매체 지오뉴스 인터뷰에서 인도가 인더스강에 어떤 구조물을 짓든 파키스탄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해 “공격하겠다”고 장담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불구대천처럼 보일 만큼 원수지간이다. 언어·문화·혈통이 크게 겹치면서 사이가 불편한 경우로 러시아-우크라이나, 남북한, 세르비아-크로아티아, 온두라스-엘살바도르 관계 등을 꼽을 수 있으지만 그 정도가 가장 심하다. 인도 아대륙 무굴제국 시절 이래의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무슬림) 간 충돌이 수백 년간 이어져 국가 대 국가 싸움이 돼 버렸다.
파키스탄이란 원래 인도 아대륙 전역의 이슬람을 포괄하는 개념이며 ‘힌두 사교도들에게 핍박받는 1억7000만 무슬림 형제를 구하는 지하드를 통해 아우랑제브 시절 무굴제국의 영광을 되살는 것’이 골자다. 반면 인도 정부는 간디 이래 천명된 아대륙 전체의 정치적 통합과 안정을 추구한다. 공존하기 어려운 사이다. 이후 냉전시대 세 차례에 걸친 인도·파키스탄 간 전면전이 벌어졌으며, 인도 도움으로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고 오늘날 인도 내 무슬림 다수 지역인 카슈미르 문제로 갈등이 진행형이다.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유구한 갈등 속에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아예 딴 나라가 됐다. 인도·파키스탄의 배후엔 각각 미국과 중국이 자리잡고 있어 이들 서아시아 국가들 관계를 기본적으로 세계 패권 경쟁의 틀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인도와 앙숙이며 미국과 대결 중인 중국이 파키스탄에 공을 들여 온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엔 여러 가지 갈등 요소가 있으나 최대 현안은 역시 카슈미르 영유권 분쟁이다.
명품 양모 제품인 ‘캐시미어’의 어원이 된 이곳은 기후나 풍토의 매력 이외에 지정학적 중요성도 높아 피차 놓칠 수 없는 처지다. 인구로는 이슬람이 훨씬 우위에 있으나 정치·경제 면에선 힌두교가 우세해 파키스탄으로선 ‘핍박받는 무슬림 동포’를 구해야 한다는 의식이 공유돼 왔다. 근년 나렌드라 모디 정권의 ‘힌두 내셔널리즘’ 강화 속에 무슬림이 위축되는 분위기까지 더해 수면 아래 갈등이 심화 일로였다.
영국 식민통치가 철수하면서 인도 아대륙은 1947년 8월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각각 독립하면서 대대적인 파란을 겪었다. 군주 및 지도층이 힌두교도지만 인구 다수는 무슬림인 카슈미르가 인도에 편입되자 반발한 파키스탄은 침공에 나섰고 이게 제1차 전쟁(1947~1948)이다. 유엔의 중재로 이뤄진 휴전 협정에 따라 카슈미르 약 3분의2와 3분의1이 각각 인도와 파키스탄 영토가 됐다. 제2차 인·파 전쟁(1965)은 카슈미르 내 무슬림 반란이 양국의 전면전으로 번졌으나 미국과 소련 중재에 의한 타슈켄트 협정에 따라 ‘원상 회복’으로 낙착된다.
제3차 전쟁(1971)은 파키스탄 동부(동파키스탄)에서 독립운동이 벌어졌을 때 인도가 이를 지원하면서 발발했다. 전쟁은 인도 승리로 끝났고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독립할 수 있었다. 원래부터 서파키스탄은 우르두어, 동파키스탄 벵골어 중심 지역이다. 독립 이듬해인 1948년 파키스탄 정부가 우르두어만 국어로 지정하자 동파키스탄에서 거센 반발이 일었다. 이른바 ‘벵골어 운동’으로 이어져 훗날 분리 독립의 실마리가 됐다. 동파키스탄 쪽 자원을 이용한 혜택을 서파키스탄이 주로 누린다는 박탈감도 크게 작용했다. 분리 독립 과정에서 수십 만 민간인이 죽었고 약 1000만 명이 인도로 피난했다.
파키스탄군과 무장세력이 카르길 지역의 인도 측 진지를 점령한 적도 있다. 이른바 ‘카르길 전쟁’(1999)은 인도의 반격과 국제사회 압력으로 파키스탄이 철수하면서 무마됐다. 양국 대결은 결국 핵 개발로 이어진다. 파키스탄은 1998년 약 30년 비밀 핵개발 노력의 결실을 맺었고 인도 또한 그 해 핵실험에 성공해 양국 모두 핵무기 보유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2001년 파키스탄 기반 무장 단체(라슈카르 에 타이바)의 인도 의회 공격으로 극도의 긴장이 고조된 바 있다. 전면전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외교로 겨우 풀었다. 2008년 인도 뭄바이 테러에선 군인·민간인 사망자가 170명을 넘어 충격이 컸다. 2016년 인도 군기지(우리) 공격으로 19명이 죽자 인도 정부는 파키스탄 국경 근처에 보복 공격을 감행했으며, 2019년 풀와마 자살폭탄 테러로 인도 무장경찰 40여 명이 희생됐을 때도 보복이 보복으로 이어져 핵전쟁 우려를 높인 바 있다.
이후 6년 만의 최대 충돌이 지난달 22일 총기 테러가 부른 현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조속한 종결을 희망했고, 스테판 두자릭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도 성명을 통해 “세계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군사적 대립을 감당할 수 없다”며 양국 모두에 군사적 행동을 자제해 달라고 촉구했다. 다만 양국간 대규모 전면전 확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는 전문가들 시각이 우세하다. 두 나라 모두 핵보유국이라는 점이 오히려 일정 수준 이상의 확전을 피할 ‘심리적 억지력’으로 작용한다는 해석이다.
더구나 파키스탄이 대규모 인프라 투자로 대외 부채에 시달리다가 코로나19와 2022년 대홍수 등으로 최악의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으며, 작년 3연임에 성공한 모디 인도 총리 역시 당장 전면전을 밀어붙여 지지세력을 결집해야 할 동인이 적다. 모디는 오히려 이번 파키스탄과의 무력 충돌을 빨리 마무리한 뒤 미국발 관세 문제에 더 신경 써야 할 형편이다. 하지만 여당 인도국민당(BJP)이 지난 총선에서 예상과 달리 단독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했고 이번 테러로 카슈미르의 본격 관광지화 정책도 타격을 입은 터라 ‘이미지 관리’ 차원의 보복을 계속할 가능성이 있다. 국내정치용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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