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 오늘생각] 알베르 카뮈 ‘계엄령’은 무엇을 말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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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는 카뮈나 사르트르의 작품으로 접근해야
‘게엄령’ ‘페스트’로 입막음·통제의 비상사태 묘사
표현의 자유는 국가 권력에 우선하는 국민의 권리

방민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5-08 00:02:59

어떤 작가의 글은 쉽게 읽을 수 있고 해독도 어렵지 않다. 어떤 부류의 작가는 그렇지 않은 글을 쓴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1.7.~1960.1.4.)의 글은 결코 쉽지 않은 쪽이다.

많은 사람들처럼, 필자의 카뮈도 ‘이방인(L'Étranger, 1942)’에서부터 시작된다.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Demian, 1919)’을 지나 프란츠 카프카의 ‘성(Das Schloß, 1922년부터 집필 미완성 유고)’을 앞부분에서 덮어 둔 2~3년 후, 고3 수험생 시절이었다.

길지도 않건만 앞 부분이 아주 건조해서 주인공이 아랍인을 총으로 쏘기 전까지를 견뎌 내기 여간 어렵지 않았다. 이 어려움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필자가 1960년대 문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못한 주요한 이유의 하나였다. 실존주의는 철학만 아니라 카뮈나 사르트르의 작품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 얻은 흥미로운 힌트 하나. ‘이방인’의 영역명은 ‘The Stranger’인데, 이것은 카프카 소설 ‘성’의 주인공 ‘K’(카)를 ‘타 곳 사람’이라 할 때, 그 영역이 바로 ‘a stranger’라는 사실에 통한다. 또 여기서 카뮈가 에세이집 ‘시지프 신화(Le Mythe de Sisyphe, 1942)’의 부록으로 ‘카프카론’을 붙였다는 사실이 환기된다. 요컨대 카뮈는 카프카 문학을 의식한, 카프카의 적자였다. 최인훈 같은 1960년대 작가는 일종의 한국 사회의 ‘stranger’였다.

아무튼 오랜만에 교보문고에 나갔더니 출판사 ‘녹색광선’에서 펴낸 ‘계엄령(L'État de Siège·The State of Siege, 1948)’이 눈에 띈다. 장정도 특이해서 눈길이 가고, 시대가 시대이니만치 한 번쯤 손에 들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책의 설명에 따르면 이 희곡 작품은 먼저 발표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소설 ‘페스트 (La Peste, 1947)’와 관련이 깊다. ‘페스트’는 알제리 북부 해안의 ‘오랑’(Oran)에서 갑작스럽게 번지기 시작한 감염병 ‘페스트’를 이야기한 것이다. ‘계엄령’은 스페인, 곧 에스파니아의 요새화된 성벽 ‘도시’ 카디스에 몰아닥친 ‘비상사태’를 다룬다. ‘계엄령’의 프랑스어 원제목은 꼭 ‘계엄령’만을 뜻하지는 않고 ‘(국가) 비상사태’나 ‘봉쇄령’ 등으로도 옮겨질 수 있다.

이 작은 도시에 불길함을 상징하는 혜성과 ‘함께’ 페스트가 창궐한다. 한 ‘남자’가 나타나 ‘총독’을 “자유 의지”를 명분 삼아 밀어내고 새로운 통치를 시작한다. 이제 창궐하는 페스트가 곧 ‘국가’가 된다.(66쪽) 새로운 통치자가 포고령을 선포하는데, 그것은 마치 우리가 직접 경험한, 코로나19 시절의 엄혹한 통제를 연상시킨다.

감염자가 있는 집은 반드시 표식을 나타내야 하고, 모든 필수 식료품은 당국의 통제 하에 유통된다. 매일 밤 아홉 시에는 소등을 실시해야 하고, 역병에 감염된 환자가 나타나면 반드시 신고해야 하고 일체의 구조 행위는 엄격히 금지된다.

다섯 번째 포고는 모든 표현과 대화를 금지하는, 침묵의 강요다. “공기를 통한 감염의 예방을 목적으로, 대화 행위 또한 감염의 경로가 될 수 있으므로 거주민은 모두 초를 적신 헝겊을 입안에 항시 물고 있어야 한다. 이는 역병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주민들의 신중한 언동 및 침묵에 도움이 되는 조치다.”(72쪽)

번역자는 이 ‘계엄령’이라는 말의 동일성 때문인지 카뮈의 작품 ‘계엄령’의 현실을, 이 땅에서 지난 겨울 초입에 대략 여섯 시간 동안 포고되었던 계엄령과 같은 것으로 인식하는 듯했다. 카뮈의 ‘계엄령’의 번역본 뒤에 붙인 촘촘한 해설 어느 부분에 그런 표현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이 번역자의 좋은 번역이 그려낸 ‘비상사태’는 지난겨울의 ‘계엄령’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지난 몇 년 동안 ‘코로나 19’의 창궐과 함께 ‘민중’ 곧 시민의 의식 깊이 침투해 상식화되고 자동화된 감시와 통제의 일상화야말로, 그리고 이에 대한 어떤 비판이나 이의 제기도 하지 못했던 상황이야말로 카뮈의 ‘비상사태’에 가까운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바야흐로, 작품 ‘계엄령’의 예외적인 시민, 깨어난 자 디에고와 같은 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릴 수 있는 새로운 ‘비상사태’가 다가오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외신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표현의 자유는 ‘진실만을 말할 자유’가 아니라 불편한 진실과 논란이 될 수 있는 주장까지 포함하는 광장의 자유다. 이는 민주주의의 본질이자 국가 권력이 넘볼 수 없는 국민의 권리다.”

필자는 이미 이 ‘표현의 자유’가 적지 않게 위협을 받고 있음을 감지한다. “초를 적신 헝겊”을 입에 물고 아예 입을 닫든지 “부정선거”를 가리켜 ‘부엉선거’라 말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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