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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보수 정치의 운명이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국민의힘이 전당 경선을 통해 김문수 후보를 대선 후보로 선출한 지 하루가 채 지나기 전부터 당 지도부가 그를 향해 “단일화에 응하라”는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황은 그야말로 촌극이다. 이는 공당으로서의 존재감은 물론, 대의제 정당의 근간조차 부정하는 처사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 데에는 명백한 원인이 있다. 당 지도부는 ‘단일화’의 수순을 서둘러 앞세울 뿐 정작 논의되어야 할 선거 전략, 국민 여론, 명분과 원칙 등 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후보를 앉히기 위해 당헌·당규와 국민이 부여한 정당성을 무시하고 나선 게 아니냐는 비판을 마주하게 됐다. 당 핵심 인사들은 전당대회 소집과 단일화 여론조사까지 기획하는 등 일방적인 내부 정치를 벌였다.
김문수 후보가 경선 과정에서 한덕수 무소속 후보와의 단일화를 약속했고, 그 약속이 보수 진영 지지층의 표심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선출된 후보를 무력화시키는 수준으로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정당이 자기 손으로 뽑은 후보를 부정하고 내치려는 모습”은 어느 각도에서 봐도 납득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말해 “대선 후보 선출해놓고 단일화 압박하는 당 지도부 의중이 대체 뭔가”라는 국민적 분노는 당연하다.
게다가 이번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은 계엄·탄핵 논란, 국가 시스템의 붕괴, 경제·안보 위기 등의 복합 위기 앞에서 최소한의 개헌 비전이나 국가 운영 전략조차 내놓지 못한 채, 온통 ‘김문수냐 한덕수냐’ 식의 정치공학적 싸움에 몰두하고 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단일화 실패 시 사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하지만 단일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우선 당이 선출한 후보가 이를 주도하는 모양새를 갖춰야 한다. 당이 서둘러 단일화를 추진하는 모습을 보이자 김 후보 측에서 반발하는 건 당연하다. 권 비대위원장은 김 후보를 향해 “당원과 국민을 배신”한다며 공세를 폈다. 반면 김 후보 측은 당 지도부가 후보를 배제한 채 “후보를 교체하기 위한 쿠데타”를 저지르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니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은 해체가 답’이라는 냉혹한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해체하라는 말은 단순히 감정적 표현이 아니다. 정당 정치의 근간을 스스로 허물고 있는 정치 집단에 대한 최후의 경고다. 김 후보를 흔드는 지도부는 당헌에 명시된 ‘대선 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무시한 채 당원 대상 단일화 찬반 여론조사를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등 김 후보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게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이 단일화 요구의 본질이 과연 보수 승리를 목표로 하는 것인지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 지도부는 김 후보 측이 제시한 당무우선권 존중, 선거대책본부 설치, 후보 뜻 반영한 당직 인선 등 3대 요구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데 돌연 후보를 배제한 채 10~11일 전당대회를 열겠다고 결정했다. ‘단일화’를 앞세우지만 실제로는 ‘후보 갈아치우기’가 진짜 목적이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정당은 단순한 조직이 아니라 공적 약속과 규칙의 공동체다. 국민의힘은 지금 그 약속을 파기하고, 규칙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 만일 경선으로 뽑은 후보를 배제한 채 절차가 결정되고 진행된다면 ‘단일화 쇼’를 연출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민심은 더 이상 국민의힘 당내의 주도권 다툼에 의한 자중지란을 인내하지 않을 것이다. 김 후보 측도 약속한 단일화의 진정성을 밝힐 수 있는 행보를 취하고, 당 지도부는 당헌을 존중하는 선에서 물러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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