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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최근 내놓은 퇴직연금 개편안이 발표되자마자 반대 청원이 국회에 올라오는 등 여론이 빠르게 들끓고 있다. 핵심 내용은 두 가지다.
첫째 3개월만 근무해도 퇴직연금을 받을 수 있게 하고, 둘째 퇴직금을 더 이상 일시금으로 받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퇴직금 수령 방식을 오직 연금 형태로 제한하겠다는 이 방안은 단기 근로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노후 빈곤을 줄이겠다는 명분 아래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제도 전환의 방식과 속도, 그리고 그 방향성에 대한 깊은 의문과 우려가 뒤따르고 있다.
특히 이번 개편안에서 정부가 언급한 ‘퇴직연금 기금화’ 구상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퇴직연금이 국민연금처럼 공적 연금으로 전환되면 정작 나중에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조차 ‘더 내고 못 받을 것 같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상황에서 퇴직연금까지 국가가 통제하고 운용하면 결국 ‘개인 재산을 정부가 사실상 관리하는 형태가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국회 청원 게시판에는 “퇴직금도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냐”는 반발이 이어졌고 “국민연금처럼 되는 것 아니냐”는 댓글이 수백 개씩 달리고 있다. 이러한 불신은 제도의 내용 그 자체보다 신뢰 없는 정책 추진 방식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퇴직금은 단순한 돈이 아니다. 이는 수년간의 노동의 대가이자 퇴직 후 인생을 설계할 수 있게 해 주는 귀중한 자산이다. 많은 사람이 이 돈을 기반으로 창업을 하거나 전셋집을 구하고 자녀 학자금을 마련한다. 그런데 정부는 이러한 자산을 개인이 일시에 수령할 수 없도록 통제하고 강제로 연금화하겠다는 것이다. 수령 방식에 대한 선택권은 보장하지 않으면서 국가가 정한 방식만 따르라고 요구하는 것은 재산권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다.
수익률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현재 퇴직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2% 남짓에 불과해 물가 상승률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퇴직연금을 연금으로 받더라도 실질적인 생활자금으로서 역할하기 어렵다. 이에 반해 많은 퇴직자들은 일시금 수령을 통해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재정 계획을 세워 왔다. 정부가 연금화를 추진하려면 먼저 수익률을 높이고 운용의 투명성을 확보해 국민 신뢰를 얻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기업도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3개월 근무자에게까지 퇴직연금을 지급해야 하면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고 그 여파로 고용을 줄이거나 단기 계약직 중심의 고용으로 전환할 가능성도 크다. 특히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에게는 직격탄이다. 고용을 촉진하기보다는 오히려 불안정한 일자리 구조를 더 강화할 우려가 있다.
물론 찬성 의견도 존재한다. 이들은 퇴직연금의 연금화를 통해 노후 빈곤을 완화하고 단기 근로자에게도 최소한의 퇴직소득을 보장함으로써 사회안전망을 확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퇴직금을 탕진하는 것을 방지하고 계획적인 소비를 유도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효과가 실현되려면 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전제돼야 하고 의견수렴 과정도 거쳐야 한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강제 연금화는 그 자체로 정책의 목적을 흔들 수 있다.
결국 퇴직연금 개편의 핵심은 하나의 선택지를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경로를 고려한 유연한 제도를 마련하는 데 있다. 정부는 퇴직금을 연금으로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충분한 혜택과 안정적 수익을 보장하고 일시금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자율성과 재산권을 보장해야 한다. 개혁은 설득으로 완성되는 것이지, 강제와 통제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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