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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번듯하고 좋은데, 너무 조용해서 서류 넘기는 소리조차 부담스러운 사무실이 있다. 한 직원이 사무실이 아니라 어두컴컴한 비상계단에서 작은 목소리로 간신히 친구와 통화하고 있다. 과연 이 직원은 몇 년을 더 여기서 일할까.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매달 400만 명 이상의 직장인이 자발적으로 퇴사하는 소위 대퇴사(The Great Resignation) 현상이 일어났다. 많은 사람이 재택근무를 경험하면서 ‘일하는 방식’과 ‘일하는 공간’에 대한 인식 변화가 생겼다. 단순히 ‘일하는 공간’이었던 사무실이 일할 수 있는 ‘여러 공간’ 중 하나의 선택지가 된 것이다.
빅데이터 콘텐츠 구독 플랫폼인 KPR 인사이트 트리가 온라인상에서 이직과 퇴사에 관해 언급한 약 19만 건을 분석한 결과, 직장인들이 이직과 퇴사 결정에 영향을 준 요인으로 꼽은 것은 근무 환경 및 기업 문화가 37%로 1위를 차지했다. 단순히 일하는 ‘그냥 공간’에 불과했던 사무실이 회사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좋은 공간’의 선택지로 부상한 것이다.
이러한 ‘좋은 공간’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업무 몰입에 따른 생산성 향상이다. 미국의 컨설팅 기업 갤럽(Gallup)의 조사에 따르면 몰입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직원들의 생산성이 17% 향상되고 결근 수준도 41%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우수 인재 확보 및 이탈 방지에 유리하다. 사람인과 인크루트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봉 다음으로 ‘근무 환경’이 이직의 가장 큰 이유였다. 어떻게 하면 직원들도 만족시키면서 생산성도 높이는 상생의 ‘좋은 공간‘을 구현할 수 있을까.
2000년대 한동안 개방형 사무실 열풍이 불었다. 많은 기업들이 칸막이 없는 개방형 구조로 리모델링했다. 하지만 탁 트인 공간은 소음을 증폭시키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부작용을 겪었다. 게다가 상사와 동료가 늘 지켜본다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물론 감기 같은 전염성 질환에도 손쉽게 노출돼 건강에도 악영향이 있었다. 그 후 회사들은 각 회사 고유의 일하는 방식, 팀별·개인별 특성을 고려해 칸막이 설치와 높이를 결정하게 되었다.
흔히 가장 간과하기 쉬운 공간이 화장실이다. 관행 때문에 남녀 화장실을 동일한 크기와 구조로 설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여자 화장실은 남자 화장실 대비 2배 정도의 면적이 적당하다. 또한 화장실 출입 빈도가 적은 통로 쪽에 위치하도록 배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화장실은 단순한 생리 해결의 공간이 아니라 이제는 청결과 꾸밈의 준비 공간이 되었다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회의실도 단순한 회의 용도 외에 개인적인 소공간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일의 효율만을 목적으로 하는 숨 막히는 공간으로 설계하면 직원들이 힘들어 한다. 효율성 너머에 있는 창의성과 여유의 공간으로서의 보이지 않는 가치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커뮤니케이션 라운지나 사내 카페, 소음을 차단할 수 있는 폰 부스 같은 것을 설치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개인 공간의 디테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의자는 척추 건강 등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고, 의자의 종류도 동일 사양을 전 직원에게 일률적으로 제공하는 것보다는 직원 각자의 신체 조건과 취향을 고려해 몇 개의 선택지를 주면 좋을 것이다.
의자의 방향은 심리적 불안감을 고려하여 가능하면 출입문을 등지게 앉는 것은 피하고, 책상 크기는 직급에 비례하여 정하기보다는 일하는 기능에 맞추어 정하는 게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일반 사무원과 디자이너의 책상은 달라야 한다.
조명은 가능하다면 전체 조명과는 별도로 개인별 스탠드를 지급해 집중도를 높이고, 필요시 부분 조명으로 에너지 절약과 효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이 외에도 부서의 특성에 따라 출입구와의 거리 동선, 창문 환기, 보안성, 비상계단 위치 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사무 공간은 매 순간 감정이 예민하게 상호 작용하는 곳이다. 출근하는 순간부터 퇴근 시간을 기다리게 되는 지겨운 공간이 아니라 오래 머물고 싶은 편안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제 공간도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하나의 자산이다. 좋은 공간이 좋은 인재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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