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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라는 애니메이션이 전 세계를 달구고 있다. 케이팝과 그 안에 담긴 한국 문화를 잘 담아낸, 아주 공을 많이 들인 이 영화는 한국 회사가 만든 것이 아니다. 케이팝의 지구적인 인기와 K컬처의 인지도를 등에 업고 외국 자본이 만들었다. 일본의 소니가 자본을 댔고 미국 넷플릭스가 제작과 배급을 맡았다.
하지만 감독인 매기 강은 한국인이었다. 유아 시절 캐나다로 건너간 그녀는 10대 초반까지 방학을 이용해 한국 문화의 젖줄을 맛보았고, 영화광인 아버지와 함께 영상 예술을 접하면서 한국의 것을 담아내고 싶은 ‘요망진’ 꿈을 꾸었다.
전문가로서의 학력과 기량을 세워 올린 그녀는 때가 되자 날아올랐다. 대부분의 해외 거주 한국인이 겪는 소외와 차별, ‘변방적’ 소수자의 경험을 걸출한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그녀가 제작진과 만든 이 작품의 동력은 넘치고 넘쳐 이제는 대기권을 뚫을 지경이 되었다. 영화에 등장한 귀여운 호랑이와 까치 모형의 키링을 찾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남산타워는 각국의 성지 순례자들로 넘쳐난다. 삽입곡은 각종 음원차트의 1위를 차지하고 남녀노소가 안무를 따라 한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열광하게 할까.
세계 최고의 걸그룹으로 활동하는 3인조 멤버 헌트릭스의 숨겨진 임무는 사람들의 영혼을 먹는 악령을 퇴치하고 ‘혼문’을 완성하여 세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헌트릭스의 활동을 좌시할 수 없는 마왕 귀마는 이들에 대항할 보이그룹 사자보이즈를 세상에 보낸다.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의 맞대결이 긴장을 조성하면서 남녀 주인공인 루미와 진우의 조응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이 영화는 ‘영웅 모티프’를 가지고 있다. 주인공인 헌트릭스의 리더 루미는 여성 영웅이다. 그녀의 태생적 비밀과 내적 갈등과 불안은 스토리를 탄탄하게 해 주는 장치이다. 헐리웃 영화가 차용하는 영웅과 악당의 선악 대결 구도 또한 존재한다. 이렇게만 보면 이 애니메이션은 기존의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갈등을 풀어 가는 방식이 남다르다. 루미와 진우는 우연히 자신들의 상처를 내보이며 공감한다. 그들은 각자의 진영에 속해 있지만 공통점을 알게 되고 서로를 동정한다. 미움과 분열과 전쟁의 현장에서 우정과 사랑이 시작된다.
그러한 맥락으로 헌트릭스의 ‘골든’의 가사를 살펴보면 한국의 정신문화가 들어 있다. 얼핏 보면 젊은이들의 자아실현과 용기를 말하고 있지만 곱씹어 보면 그 안에는 마음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적 우애와 공통의 목표, 용기와 기개가 들어 있다.
영화의 대표곡인 ‘골든’은 듣는 이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자존감과 용기를 돋우어 주며 동류의식을 준다. 팬들이 특정 노래를 즐기고 취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래가 갖는 영감이라고 생각한다.
‘골든’이란 제목과 가사 내용은 금척(金尺)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전통문화에는 여러 버전의 금척 설화가 있다. 금으로 된 자(尺·척)를 얻는 꿈을 꾼 주인공이 왕권을 갖게 되거나 문제를 해결하여 높은 지위에 이르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성계가 꿈에 금척을 받아 왕이 되었다는 내용이 기록된 용비어천가 또한 금척 설화다. 영화 속 헌트릭스는 팬들의 마음을 얻어 세상을 밝게 만들고 한편으로는 혼문을 완성하여 어둠의 세력을 몰아내려 하므로 금척을 지닌 영웅이다.
금은 변치 않는 영원성과 순수함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 금척은 진우도 가지고 있다. 진우의 마음속 금척을 일깨우고 그를 통해 화합과 포용을 이루는 과정은 영화 속에 숨어 있는 한국 정신문화의 보물이다. ‘골든’이란 노래가 만들어진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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