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서 일하던 한국인 노동자 300여 명이 미 이민당국의 대규모 단속에 체포·구금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헬기와 장비까지 동원된 단속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손과 허리에 이어 발목에까지 쇠사슬이 채워진 채 호송되는 장면은 많은 국민에게 충격과 분노를 안겼다. 한국 정부가 긴급 협상을 통해 ‘자진 출국’ 형식으로 귀국을 추진하고 전세기를 투입하면서 사태가 일단락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동맹국 땅에서 우리 국민이 이토록 모욕적인 대우를 받은 사실은 쉽게 잊혀지거나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한·미 관계 전반에 깊은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단순히 비자 문제로 환원할 수 없다. 미 당국은 동맹국 노동자들의 체류 자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외교적 협의 절차조차 거치지 않았다. 정치적 효과를 노린 듯 대규모 단속을 전개했고, 그 과정에서 인권 존중의 원칙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다른 국가들을 향한 시그널이라는 그럴듯한 해석에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반이민 정서를 자극해 정치적 기반을 결집하려는 의도가 드러나 있다는 점을 완전히 배제하기 힘들다. 국내에서의 정치적 필요가 동맹국 국민의 존엄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면 신뢰에 기반한 협력은 지속되기 어렵다.
한국 기업들 역시 이번 사건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한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은 수십억 달러가 투입된 대규모 투자 사업으로,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의 대표 사례로 평가돼 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해외 투자가 언제든 정치적 환경에 따라 불확실성에 노출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투자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자본 투입을 넘어 법적·제도적 안전장치, 현지 고용과 외국 인력 활용의 균형, 정부 간 긴밀한 협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더 큰 문제는 노동 인권이다. 미국은 최근까지 중국 신장 지역의 목화 생산 과정에서 강제노동이 이뤄졌다며 관련 제품 수입을 금지한 바 있다. 인권을 이유로 다른 나라를 비판하던 미국에서 동맹국 노동자들이 중범죄자처럼 결박된 채 호송되는 장면이 연출된 것은 심각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단속 장면을 영상으로 공개하며 ‘성과’를 강조한 행태는 오만이며 명백한 이중잣대와 위선이다.
국내에서도 즉각적인 비판이 제기됐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9일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태를 강력히 규탄했다. 특히 피의자의 권리와 안전 보장을 명시한 유엔 최저기준규칙 제47·48조를 정면으로 위반한 명백한 인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국제 규범에 비추어 봐도 이번 사건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한편으로는 이번 사태가 체류 비자 문제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해석하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단순 행정 절차 위반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 이번 사태다. 본질은 인권 유린이며, 이는 한국 사회가 결코 침묵할 수 없는 문제다. 동맹과 투자의 문제를 다시 들여다보는 차원을 넘어, 인권 문제는 반드시 짚어야 하며 미국에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동맹 관계라 할지라도 국민의 권리와 존엄이 침해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보여야 한다. 아울러 해외 투자 과정에서 인력 파견과 체류 자격 관리에 대한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주권 정부를 자임하고 있다. 이 정부에서 산재 사망사고 억제를 위한 강력한 대책을 추진해 온 만큼,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민의 안전과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정부가 기업과 협력해 해외 진출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권익을 철저히 보장하는 장치를 마련할 때 비로소 국민은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투자 규모와 동맹의 화려한 언사가 아무리 강조된다 해도 국민의 안전과 인권이 배제된 동맹은 공허하다. 이번 구금 사태는 한·미 관계를 다시 성찰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환기시켰다. 한국은 무조건적인 협력과 투자에 기대는 방식에서 벗어나 국가 이익과 국민의 존엄을 지키는 주체적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동맹을 진정한 신뢰의 관계로 되돌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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