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은 광복의 달이다. 그리고 그 대표성을 띠는 날은 지난 15일 광복절이었다. 세계사(史)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날이기도 한 이날은 우리 역사에도 깊이 새겨질만한 달이었다.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출범은 대게 8월 15일을 기해 시작됐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됨과 동시에 우리말의 근간인 한글맞춤법 통일안이 발표됐다. 1953년에는 전쟁 중 부산이 임시적으로 맡아 온 수도 지위가 서울로 환도(還都)됐다.
1954년 대한민국 최초의 급행열차 통일호가 개통해 서울과 부산을 9시간 30분 만에 이은 것도 1970년 남산 1호터널이 개통된 날도, 1974년 경부선 새마을호와 서울지하철 1호선이 처음으로 달리기 시작된 날 역시도 모두 8월 15일이었다.
마찬가지로 광복절을 맞아 1975년 국회의사당이 준공됐으며 1987년에는 독립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1995년에는 광화문을 가렸던 옛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공사가 시작됐으며 철거 후 개보수 작업을 거친 광화문이 2010년 공개된 것도 모두 같은 날 이뤄졌다.
1945년 해방부터 72회 광복절을 맞이하게 된 오늘이 있을 수 있었던 까닭은 주권을 되찾고자 노력했던 숱한 유·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봉건국가로 주권이란 개념조차 없던 조선인들은 일제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내나라’에 대한 자주적 인식이 형성됐으며 ‘되찾아야 한다’는 근대적 사고를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그 인식과 사고를 바탕으로 무려 일제치하 35년을 버티며 싸웠다. 특히 대대손손 부자로 살아오다 전 재산을 바쳐 해방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은 숱하게 회자되고 있다. 충분히 편하게 살 수 있었음에도 시대적 사명과 선비적 소명을 다하고자 결단을 내린 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이라 할 만하다.
광복절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자 독립운동의 산실로 소개한 경북 안동의 임청각이 본가인 석주 이상룡 선생도 마찬가지다. 자산을 처분해 만주로 가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오늘날 경희대학교의 모태가 된 신흥무관학교의 설립에는 우당 이회영 선생 일가도 한 몫 했다. 우당을 포함한 6형제는 노비를 해방시킨 뒤 재산을 모두 처분한 뒤 가족들을 이끌고 만주로 떠났다. 그리고 그 재산으로 신흥무관학교 설립에 쏟아 부었다. 이들의 헌신 속에 설립된 신흥무관학교는 청산리·봉오동의 전사들을 양성했다.
부(富)를 단순히 개인 또는 일가의 영달에만 사용치 않고 민족과 국가를 위해 헌납한 이 같은 사연들은 몇 번이고 회자돼도 감동스런 의미가 아닐 수 없다. 부를 지녔기에 행할 수 있었을 테지만 모든 부를 가진 이들이 행할 수 없는 일을 행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 같은 희생적 발자취를 남긴 오랜 기간 그릇된 행동을 일삼은 대한민국에서 일부 재벌들의 행태는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시민으로서 말이다. 최근 GS그룹의 보복행태도 이 같은 관점에서 보자면 낯 뜨겁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경기도 동두천에 모습을 드러낸 GS25 매장 한 곳이 논란이 됐다. 앞서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과 계약관계의 가맹점주가 계약을 해지하고 타 업체와 편의점 계약을 맺자 코 앞에 매장을 신규출점하는 이른바 ‘보복출점’을 감행했기 때문이었다.
새 가맹점주가 매장운영을 의뢰한 것도 아니었다. 매장 임차를 본사가 직접 나서서 했을 정도로 GS리테일의 보복은 치졸하기 그지없었다. 또한 오픈한지 불과 1주일 된 식당에 웃돈을 얹어주고 내보낸 뒤 차린 편의점이었다. 무려 5년 넘게 계약관계를 유지했던 가맹점주와의 신의는 없었다. 상도의도 저버렸다. ‘감히 네가 나랑 거래를 안 해’ 식의 우월적 의식이 낳은 해프닝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사례였다.
누군가는 이 같은 갑질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요구했지만 이른 바 가진 자가 해서는, 적어도 재벌·대기업이 행해서는 안 될 도덕적 우를 범한 것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더욱이 독립을 위해 부를 포기했던 독립운동가들이 회자되고 있는 이달에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면서 더욱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광복의 달 8월에 접하게 된 두 사연. 감동스러웠던 전자는 언제 들어도 뭉클할 테지만 신선하고 황당했던 후자는 부디 숱한 유·무명의 독립운동가의 희생으로 점철 이 땅위에서 다시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다.
[김도현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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