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니가타현 사도(佐渡)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문제가 7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릴 관련 위원회에 오른다.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권고에 바탕해 세계유산위 21개 위원국의 ‘만장일치’로 결정된다. 11일 일본 언론은 최종 통과를 위해 자국 정부가 다방면의 로비를 벌여 왔으며 위원국의 하나인 한국이 결정적인 변수임을 전하고 있다.
금광이던 사도광산은 태평양전쟁 본격화 이후 구리·철·아연 등 전쟁물자 채굴에 이용됐다. 일본 정부가 2022년 2월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추천했으나 유네스코는 일본 측 설명의 미비점을 지적하며 심사를 보류했다. 한국발(發) 반대 여론이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도광산의 가치 조명을 16∼19세기 중반에 한정한 게 조선인 노역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일본 정부가 지난해 1월 지적된 부분을 보완해 재추천한 상태다.
근년 국내 학술 성과에 따르면 조선인들의 일본 내 광산 노역은 고수입을 위한 자발적 취업이었으며 업무 숙련도와 언어 소통능력에 따라 임금 격차가 있었을 뿐이다. 일제 패망 직전 1~2개월간 발생한 체불 임금 역시 훗날 한일청구권 협약 때 정리된 사안이다. 이른바 ‘강제징용 소송’이란 전시동원으로 일터에 발이 묶인 데 대한 위자료 청구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시마네현 이와미(石見)광산은 200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16~17세기 초 세계경제에 미친 영향, 은생산의 고고학적 증거가 양호한 상태로 보존돼 있으며 은광과 광산촌·제련소·정련소·수송로·항구에 이르는 광산 활동의 총체적 면모가 남아 있다는 점이 인정됐다. 이와미를 포함해 멕시코·볼리비아·칠레·폴란드·노르웨이·독일·슬로바키아 등 전 세계 여덟 곳 광산이 세계유산이다. 인류의 상업·산업 혁명의 발자취를 보여준다.
지난 500년 인류사 경쟁의 핵심은 무역로 확보에서 에너지 자원 획득으로 옮겨 갔다. 대항해시대 무역에선 향료와 금은보화가 최고였으나 18세기 산업혁명 이래 석탄 등 에너지원과 전쟁물자 금속이 중요해졌고 20세기 들어선 석유가 주인공으로 떠오른다. 일본의 태평양전쟁 도발도 중국침략에 대한 제재 조치였던 석유공급망 차단이 직접적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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