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
종은 깊은 울림을 퍼뜨리는 데 더없이 들어맞는다. 설레는 축복을 나누는 성물로서든 음울한 애도를 표하는 조종(弔鐘)으로서든. 그 점에서 김주영과 소헤일리 코메일이 공동감독한 다큐멘터리 영화 ‘종이 울리는 순간’은 더없이 적확한 제목을 지녔다. 이 영화는 대한민국 평창이 2018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면서 스키 경기장의 건설을 위해 파괴된 가리왕산의 비참한 현실과 그 현실에 복잡하게 얽힌 사회적 갈등을 다룬다. 인간의 세계에서 올림픽을 기념하는 축복의 종소리가 울렸을 때 자연의 세계에서는 무참히 파괴된 가리왕산을 진혼하는 애도의 종소리가 울렸음을 들려준다.
처참히 도륙된 가리왕산의 폐허를 굽어보고 찬란히 개최된 인류의 축제를 돌아보는 자세가 이 영화의 기본 구조다. 그러나 평창 올림픽은 정말 인류 전체의 축제였을까. 영화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올림픽의 개최가 한국의 국제 위상과 평창의 경제 수준을 높이는 데 일정한 도움이 됐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리왕산의 파괴를 반대하는 평창 주민들의 시위와 파괴된 가리왕산을 완벽히 복원하겠다는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한국 정부의 거짓된 행태는 평창 올림픽의 화려한 표면 뒤에 드리운 어두운 이면을 보게 한다. 일부의 인간들만을 위한 이익은 그 이익을 못 누린 타 집단의 원성을 필연적으로 자아내기 마련이다. 가리왕산을 안식처로 삼던 멸종 위기 동식물의 원망은 덤이다.
문제는 인간이 자기들끼리 살벌한 고함을 지르면서 싸우는 가운데, 자연의 원망은 듣지 못한다는 점이다. 코메일 소헤일리도 ‘자연은 말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단지 우리와 다른 언어를 쓰고 있을 뿐(‘자연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담론장의 영화’(김주영 감독과 소헤일리 코메일 감독이 문주화 영화평론가와 나눈 인터뷰), ‘씨네21 NO. 1533’, 씨네21, 2025. 11. 21, 15쪽)’이라 말한 것은 인간의 언어와 질적으로 다른 언어를 지닌 자연의 소리를 인간은 영영 듣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뜻도 된다. 어쩌면 인간과는 질적으로 다르게 세상을 지각하는 카메라의 사유를 통해 자연과 소통할 가능성이 조금은 생길지도 모른다. ‘종이 울리는 순간’은 다양한 형태의 쇼트를 통해 자연 전체의 존재감과 인간 이익의 분열상을 연결해 드러내는 영화로 분석될 때, 그 가치와 한계가 일관되게 포착될 수 있다.
이 영화는 가리왕산으로 표상되는 자연의 전체적 존재감을 상당히 대조적인 두 쇼트로 구현했다. 가리왕산에 사는 희귀 동식물들을 하나씩 보여줄 때는 클로즈업 쇼트를 활용함으로써, 크기는 작으나 멸종 위기에 처해 더없이 귀중한 생명체들의 묵직한 존재감을 강조했다. 한편, 가리왕산의 전경을 부감 앵글의 익스트림 롱 쇼트로 보여주는 부분들도 많다. 배경 풍광을 전체적으로 보여주기에 적합한 익스트림 롱 쇼트는 가리왕산 전경을 강조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이 유기적 관계 속에서 밀접히 연결된다는 전체성의 의미를 전한다.
반면, 영화 후반에서 포크레인으로 헐리는 가리왕산의 모습을 별개의 쇼트들로 분할해 한 화면에 담은 연출도 중요하다. 이 연출은 그 파편적 양상처럼 일부 인간들의 이익을 위해 토막토막 분열된 자연의 참상을 그대로 체화하고 있다. 자연이 겪는 이 고난은 가리왕산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타국들에서도 자연 보호를 위한 시민들의 거센 반대 시위가 행해지는 장면들이 영화 후반에 담긴 것은 자연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착취 대상일 뿐이라 인식하는 인간의 이기심에 경종을 울린다.
영화는 모든 인간이 자연을 하대해 착취하기만 하는 것은 아님을 물론 알고 있다. 영화 초반은 가리왕산의 파괴를 반대하는 시위자들과 그 시위자들을 저지하는 자들 간의 실랑이가 벌어지는 광경을 흔들리는 핸드헬드 쇼트로 촬영했다. 이 흔들림은 인간들 사이에서도 자연환경의 유지와 이용을 놓고 벌어지는 분열의 불안정성을 형상화한다.
자연을 보호하는 윤리적 가치와 발전을 도모하는 경제적 가치는 둘 다 중요하다. 영화도 양자가 모두 중요함을 아는 듯, 평창 올림픽의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언급하는 정치인의 인터뷰를 담았다. 가리왕산을 덮은 허연 안개는 자연에 관한 인간 사회의 복잡한 갈등을 은유한 이미지로도 보인다. 이 이미지는 영화가 더 깊어질 수 있었을 지점을 짚어주는 것도 같다. 김주영이 스스로 ‘개발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입장도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것 같다(같은 잡지, 같은 쪽)’라 고백했듯, 가리왕산의 희생을 통해 평창 주민과 한국 전체가 얻은 다양한 이익이 더 명시됐더라면, 가리왕산의 파괴를 비판하는 쪽에 조금 더 집중된 영화의 논조가 한층 긴장된 균형감을 확보할 수 있었으리라 판단된다. 그러함에도 ‘종이 울리는 순간’이 유의미한 쇼트들로 자연의 아픔을 헤아리게끔 연출된 영화라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
영화 ‘종이 울리는 순간’ 줄거리
갖가지 희귀 동식물의 서식지로서의 생태적 가치가 인정돼 국가 공식 보호 구역으로 지정된 가리왕산은 대한민국 평창이 2018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됨에 따라 위기에 처한다. 올림픽 스키경기장의 건설을 위해 헐릴 위기를 맞은 것. 대한민국의 행정기관은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가리왕산을 추후 완벽히 복원할 것을 약속함으로써, 가리왕산의 환경을 파괴해 스키장의 건설과 케이블카의 설치를 추진한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은 전 세계인의 환호와 축하 속에서 잘 진행됐으나, 가리왕산의 훼손에 연관된 정계의 실망스러운 각종 행태가 여러 관계자의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다.
김주영 감독 및 소헤일리 코메일 감독
김주영과 소헤일리 코메일이 공동으로 감독한 다큐멘터리 영화 ‘종이 울리는 순간’은 2025년에 16회 부산평화영화제에서 평화에 진심상을, 22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 한국경쟁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김주영과 소헤일리 코메일은 문주화 영화평론가와 나눈 인터뷰에서 각각 가리왕산에 관해 ‘숲의 주인은 우리뿐만이 아니라는 것(‘자연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공론장의 영화’, ‘씨네21 NO. 1533’, 씨네21, 2025. 11. 21, 15쪽)’을 느꼈다고,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의 개최에 관해 ‘이 올림픽을 허가한 박근혜 대통령과 실제로 운영한 문재인 전 대통령도 섭외하고 싶었다(같은 잡지, 같은 쪽)’라고 말했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