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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딩 숲속 사이로 유달리 돋보이는 초록색의 충정아파트는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파트다. 건물이 오래된 만큼 물이 새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불편한 점을 감수해야 하지만 건물 내부는 세월과 관계없이 튼튼한 모습이다. 사진은 충정아파트 ⓒ스카이데일리
충정로 대로변에 위치한 충정아파트는 5호선 충정로역과 불과 80여m 정도 떨어져 있고, 2호선 충정로역과도 도보로 5분 거리여서 교통이 편리한 곳이다.
지하 1층~지상 5층 규모로 한 층당 9가구 정도가 살고 있으며 대지면적 910.7㎡(275.4평), 연면적 3550㎡(1073평)이다. 1층에는 편의점, 음식점, 부동산 중개소, 옷 가게 등이 입점해 있다.
이 아파트는 건축 당시에는 건물주인 ‘도요다(豊田) 다네오’의 성을 따 ‘도요다 아파트’ 또는 한국식 발음인 ‘풍전아파트’라는 명칭을 혼용해 사용했다. 한때 호텔로 개조됐다가 다시 아파트(유림아파트)로 돌아왔고 현재는 충정아파트로 불린다.
사기꾼에게 빼앗길 뻔하고 건물 1/3이 잘려나가는 등 풍파 겪어
오랜 세월 한 자리를 지켜온 충정아파트는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이야깃거리가 많다.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에는 북한군의 군사 시설로 사용됐고, 미국의 서울 수복 이후에는 유엔군의 호텔로 쓰였다. 휴전이 성립되고 유엔군이 아파트를 반환한 후에는 정부 소유의 건물로 귀속됐다.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나라가 혼란했던 시절 충정아파트는 희대의 사기꾼인 김병조라는 사람의 소유가 된다. 정부가 6·25 전쟁 때 여섯 명의 아들을 한국 전쟁 때 잃었다는 사연을 가진 김씨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하고 당시 시가 약 5000만원에 이르는 충정아파트를 통째로 불하한 것이다.

▲ 충정아파트는 건물 가운데를 정원으로 만든 최초의 중정(中庭)식 아파트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 정원의 흔적을 찾을 순 없다. 사진은 충정아파트 복도 ⓒ스카이데일리
김씨는 지상 4층이던 이 건물을 한 층 증축해 ‘코리아관광호텔’을 열었다. 그러나 그는 거짓말이 탄로나면서 구속됐고 정부는 이 건물을 몰수했다. 이후 한국의 시대적 상황만큼이나 격변을 겪은 이 아파트는 1975년 서울신탁은행에게 넘어갔고, 서울신탁은행은 일반인에게 건물을 분양했다.
바람 잘 날 없던 충정아파트는 1979년 다시 한 번 풍파를 겪는다. 서울시 도로확충 사업에 따라 건물의 3분의 1이 잘려나가는 아픔을 겪고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최초의 중정(中庭)식·중앙난방 아파트…세월의 흔적 그대로
지하철 5호선 충정로역 9번출구를 나오면 정면으로 보이는 충정아파트는 외관상으로는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유리가 부서진 창문이 보이는 등 허름해보였다.
입구에는 ‘외부인 촬영금지’라는 공고가 큼지막하게 붙어있었는데, 아파트 한 주민은 “최초의 아파트라는 유명세 때문에 일반 대학생이나 포토그래퍼들이 찾아오는 탓에 입주민들의 불편이 커서 공고를 붙여놨다”고 설명했다.
충정아파트 안으로 들어가 보면 가운데가 삼각형으로 뚫려있고 1층의 정원 위로는 굴뚝이 솟아있다. 이 아파트는 최초의 중정(中庭)식 아파트이자 중앙난방을 처음 시도한 아파트이기도 하다. 과거 호텔로 사용됐을 때에는 굴뚝을 이용한 중앙난방을 사용하다가 일반인에게 분양된 후에는 연탄을 때는 개별 난방형태로 바뀌었고, 현재는 도시가스 개별난방을 사용하고 있다.
아파트 내부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복도에는 미처 들여 놓지 못한 오래된 세간이 쌓여 있었고, 특히 집안 내부의 찬장이나 방문, 콘센트 등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한 주민은 “전부 새 것으로 교체할 수도 있었지만 옛날 기념품 같아서 아직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 아파트 주민에 따르면 대다수 세대가 내부수리 해 원형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스카이데일리가 찾은 한 가구는 주방의 구조만큼은 손을 대지 않았다. 이사 올 당시의 찬장과 방문, 콘센트 등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사진은 충정아파트 내부 ⓒ스카이데일리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에는 마침 한 가구가 분주히 이사를 하는 중이었다. 이 가구는 충정로 확장공사 때 일부가 잘려나가서, 방 하나는 사다리꼴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또 다른 가구의 내부는 외관과는 다르게 말끔한 모습이었다. 집 주인은 “건물이 노후 돼 간혹 물이 새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으나, 많은 비용을 들여 내부수리를 한 탓에 실내는 새 집처럼 깨끗했다.
그는 “옛날에는 전철이 아파트 앞을 지나갔고, 지금은 2개 노선 지하철역이 지근거리에 위치해 있어 서울 도심 근처에서 여기만큼 교통이 좋은 곳도 드물다”고 말했다.
과거 명문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려고 이사 온 가구들도 있어
1970년대 충정로 일대는 지금의 강남 8학군에 버금가는 명문학군에 속했다. 1896년 개교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미동초등학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초등학교는 소파 방정환, 최초 비행사인 안창남, 작곡가 나운영, 시인 조병화, 방송인 엄앵란·사미자,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많은 유명 인사를 배출했다.
충정아파트에서 40년 넘게 살고 있는 한 주민은 자녀들을 미동초등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이곳으로 이사 온 케이스다. 그는 “나처럼 아이들을 미동초등학교에 보내려고 충정아파트로 들어온 사람들이 여럿 된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 주민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주차 문제다. 건물 1층 상가에서 6개 점포가 영업을 하고, 30여 세대가 거주하고 있지만 주차공간이 없어 아파트 옆의 유료주차장을 이용하는 실정이다.
한 주민은 “세대주들이 대부분 고령이어서 자가용을 소유한 집은 많지 않다”면서도 “명절이나 어버이날 등에 외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주차 때문에 큰 곤란을 겪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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