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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사는 곳 근처엔 퇴근시간이면 인파가 몰린다. 버스 정류장 주변에 사람들이 가득해 바닥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개중엔 그 많은 인파를 노리고 오는 사람들도 섞여 있다.
전단지를 돌리는 판매원부터 피부과 시술을 권유하는 직원, “한 명에게만 더 홍보관을 소개하면 퇴근할 수 있다”는 영업사원, 심지어 종교인까지 구성도 다채롭다. 그 덕에 퇴근길은 고역이다.
그중 ‘도를 아십니까’로 유명한 모 종교단체 사람들이 퇴근하는 기자에게 거의 매일 접근한 적 있다. 묘하게도 그들이 기자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기자가 신입 기자를 데리고 다니듯 종교단체의 사람들 또한 2인조였다. 한 명이 말을 늘어놓으며 주도적으로 접근하면 다른 사람이 조용히 눈치를 보며 한마디씩 거드는 것도 비슷했다. 무엇보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반응이 탐탁지 않다는 점이 기자가 하는 일과 닮았다.
처음엔 호기심과 묘한 동지애로 대화를 나눴지만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이들을 거의 매일 상대하다 보니 진이 빠졌다. 북슬북슬한 옷을 입은 종교인에게 “같은 종교단체 소속 분만 다섯 번은 만난 것 같다”고 하니 그 종교인은 “그만큼 만났으면 인연”이라고 답하며 미소지었다. 끈질긴 것까지 기자와 비슷했다.
나이와 이름은 물론 개인적인 고민까지 묻는 종교인도 있었다. 기자가 취업박람회에서 지나가는 방문객들에게 던졌던 질문이 떠올랐다. ‘박람회를 알게 된 경위’ ‘연령대’ ‘취업 여부’ ‘희망 취업지’ 등에 대해 질문을 던졌던 기억이 겹친다.
종교인의 질문에 기자라고 밝혔더니 친근했던 표정이 굳어졌다. 그 이후로 퇴근이 쉬워진 점은 좋지만 동종업계 사람들끼리 섭섭하게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기자는 만만찮게 귀찮고 꺼려지는 존재다. 연예인이나 정치인은 기사 한 줄로 유명해질 수도 있지만 같은 기사 한 줄로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기자는 종교 권유자보다 더 반갑지 않은 존재일 수 있다. 취재원의 말 한마디를 끝까지 끌어내려는 노련한 기자도, 어설픈 질문으로 민폐를 끼치는 초짜 기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자의 악명을 경험하는 건 홍보실 직원이나 공무원, 정치인, 연예인만이 아니다. 평범한 시민들도 어느 날 우연히 거리에서 기자를 만날 수 있다. 기자는 취재 현장을 돌며 명함을 내밀고 시민 인터뷰를 요청하곤 한다.
그럴 땐 편하게 거절해 달라고 먼저 말한다. 거절은 당연한 권리이고, 전혀 미안해 할 일도 아니다. 기자의 질문은 때로는 부담을 주고, 시간을 빼앗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자는 거절을 예상하며 접근하고, 그 상황에서 인터뷰가 가능한지를 조심스럽게 묻는다.
반대로 시민에게는 기자에게 질문할 권리가 항상 있다. 인터뷰를 수락하든 거절하든, 기자는 자신의 소속과 직업, 질문의 목적을 분명히 밝혀야 하며 대화 녹음을 제안하는 것도 시민의 권리다. 이를 불쾌하게 여긴다면 그는 기자가 아니다. 대화를 허락해 준다면 기자는 오히려 고맙게 여긴다.
기업 관계자와 마주쳤을 때도 마찬가지다. 대다수 기업이 공식적인 입장은 홍보실을 통해서만 내보낸다. 일반 직원이 기자의 질문에 답하지 않도록 내부 지침을 두기도 한다. 실수로 내뱉은 한마디가 기사에 인용돼 의도치 않게 회사의 공식 입장으로 오인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기사의 무게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어떤 이에게는 단순한 정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커리어나 평판, 심지어 생계를 좌우하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기자는 말을 신중하게 옮겨야 하고, 취재원에겐 말의 무게를 고려해 대응할 권리가 있다. 물론 답변이 곤란한 질문에 대해서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 예의와 신뢰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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