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거래소의 ‘오너’까지 금융당국의 적격성 심사대에 오른다. 지금까지 대표자와 임원을 중심으로 확인했던 범죄 전력을 대주주까지 확대하고 재무상태와 사회적 신용도 함께 들여다본다. 대주주나 자금세탁방지 체계 등 주요 사항을 바꾸려면 변경 30일 전에 신고해야 하며 자금세탁방지(AML) 업무 인력도 최소 4명 이상 확보해야 한다.
1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가상자산사업자의 진입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특금법) 개정안은 올해 1월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2월19일 공포했다. 6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이달 20일부터 시행한다.
개정 논의의 출발점은 기존 신고제로는 가상자산사업자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대주주의 적격성을 충분히 확인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었다. 기존 법은 대표자와 임원의 범죄경력 등을 심사했지만 대주주에게 같은 수준의 심사를 적용할 근거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국내 가상자산 규제가 단계적으로 금융업에 가까운 관리체계를 갖춰가는 흐름도 이번 개정의 배경이다. 2021년 개정 특금법으로 가상자산사업자 신고제와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도입했고, 2024년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으로 이용자 자산 보호와 불공정거래 규제를 강화했다. 이번에는 사업자와 이를 지배하는 사람의 자격, 재무건전성, 내부통제까지 진입 단계에서 따지는 방향으로 범위를 넓혔다.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금융감독원은 제도 시행을 앞두고 신고매뉴얼도 전면 개정했다. 두 기관은 13일 서울 드림플러스 강남에서 가상자산사업자와 예비 사업자 등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어 구체적인 심사기준과 신고방법을 안내한다.
개정법과 신고매뉴얼의 핵심은 △가상자산사업자 대주주 개념 신설 및 적격성 심사 △대주주까지 법률 위반 이력 심사 확대 △사업자·대표자·임원·대주주의 재무상태와 사회적 신용 심사 △조직·인력·전산설비·내부통제 등 법령준수체계 실질 심사 △조건부 신고 수리제 도입 △대주주와 법령준수체계 등 중요 변경사항의 사전신고 전환 등이다.
‘오너 리스크’까지 본다…대주주 범죄경력도 심사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심사 대상이 회사 경영진을 넘어 대주주까지 확대된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은 기존 대표자와 임원뿐 아니라 대주주의 법률 위반 이력도 살펴본다. 대상 법률 역시 금융·자금세탁 관련 법률에서 공정거래법과 조세범처벌법, 특정경제범죄법 등 경제범죄 관련 법률까지 넓어진다. 다른 법률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도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
대주주는 단순히 최대주주만 뜻하지 않는다. 본인과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쳐 가장 많은 주식을 가진 최대주주와 의결권 있는 주식의 10% 이상을 보유한 주요주주가 포함된다. 지분율이 10%에 못 미쳐도 대표이사나 이사 과반을 선임하거나 경영전략 등 주요 의사결정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 주요주주가 될 수 있다.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 중 주식을 보유한 사람도 신고 대상에 들어가며 최대주주가 법인이면 해당 법인의 최대주주와 대표자 등까지 범위가 넓어진다. 당국은 이들의 실지명의와 국적, 지분 보유현황뿐 아니라 법률 위반 이력과 채무불이행, 파산·회생절차 등 사회적 신용도 확인한다.
대주주 바꾸려면 30일 전 신고…수리 전 실행은 제재
대주주 변경 절차도 크게 달라진다. 지금까지 대주주와 법령준수체계에 변경이 생기면 변경 후 14일 이내 신고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원칙적으로 변경 30일 전에 신고해야 한다.
특히 사업자가 신고한 뒤 금융당국의 수리 통보를 받기 전에 대주주 변경이나 내부통제 변경 등을 실행하면 형사처벌이나 행정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거래소 지분 인수나 경영권 변경 과정에서도 당국 심사의 영향력이 커질 전망이다.
사전신고 범위에는 준법감시인과 보고책임자 변경, AML 인력의 급격한 감소 등도 포함한다. 가상자산사업자는 AML 업무 종사 인력을 최소 4명 확보해야 한다. AML 인력을 10명 이상 신고한 업체는 인력이 30% 이상 줄거나, 10명 미만 업체는 전체 인원이 3명 이하로 감소하면 변경신고를 해야 한다. 4명 미만으로 떨어지면 충원계획도 함께 제출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인원 수뿐 아니라 준법감시인의 전문성도 살핀다. 전문교육과정 이수 여부와 자금세탁방지 업무 경력, 관련 자격 등을 확인하고 독립적인 감사체계를 갖췄는지도 점검한다.
서류만 갖춰선 안 된다…필요하면 금감원 현장점검
심사 방식도 ‘서류를 갖췄느냐’에서 ‘실제로 작동하느냐’로 무게중심이 이동한다. 기존에는 조직·인력과 전산설비, 내부통제체계를 주로 제출서류로 확인했지만 앞으로는 이들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 자체가 신고 불수리 사유가 된다.
금융당국은 자금세탁방지 시스템과 이용자 보호체계가 실제 업무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살핀다. 필요하면 금감원이 현장점검을 통해 인력 운영과 전산시스템, 내부통제의 실제 운영상황을 확인한다.
전산설비 기준도 구체화했다. 침입탐지·방지시스템과 방화벽, 데이터 백업장치 등을 갖추고 재난이나 장애 발생 때 업무 연속성을 유지할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고유식별정보나 개인신용정보를 처리하는 전산설비는 국내에 둬야 하며 클라우드의 경우 국내 리전에 서버가 있으면 국내 설비로 인정한다.
부채비율 200% 넘으면 ‘빨간불’…기존 사업자도 새 기준 적용
재무건전성도 신고 수리를 좌우하는 핵심 잣대가 된다. 가상자산사업자는 원칙적으로 자기자본 또는 출자총액 대비 부채총액 비율을 200%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 자기자본이 0 이하라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본다.
다만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 따라 사업자가 보관하는 이용자 예치금과 전자금융업자의 일부 미정산 잔액 등은 부채총액에서 빼고 계산한다. 고객 자금을 사업자의 일반 채무와 동일하게 계산해 재무상태가 실제보다 나쁘게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신고를 수리한 뒤에도 새 요건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불수리 요건에 해당하면 직권말소로 이어질 수 있고 대주주나 법령준수체계 등 주요 사항이 바뀌면 사전에 다시 신고해야 한다.
기존 사업자도 예외가 아니다. 개정 특금법 시행 당시 이미 신고를 수리한 사업자는 오는 11월20일까지 대주주와 법률 위반 이력, 재무상태 및 사회적 신용, 조직·인력·전산설비·내부통제체계 등에 관한 자료를 새 기준에 맞춰 제출해야 한다.
가상자산사업자 신고제가 도입된 지 약 5년 만에 심사 범위가 사업자 자체에서 실질적인 지배주주와 회사의 재무·운영체계 전반으로 확대되는 셈이다. 앞으로 거래소를 비롯한 가상자산사업자는 보안인증과 실명계좌 확보를 넘어 누가 회사를 지배하는지, 재무적으로 건전한지, 내부통제가 실제로 작동하는지까지 금융당국에 입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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