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제도는 국민의 생활안정과 복지증진을 목표로 지난 1988년 1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국내에서 처음 시행됐다. 이후 1995년 농어촌 지역, 1999년 도시지역 주민들에게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하면서 ‘전국민연금’을 실시하는 중이다. 지난 3월 현재 누적가입자는 2121만9700명이다. 조성된 금액만 543조6391억원이다. 국민연금은 조성 금액을 이용해 투자를 한다. 기금을 불리기 위해서다. 연금이란 개념 자체가 모금뿐 아니라 막대한 규모로 지급을 해야 하는 소중한 복지기금이기 때문이다. 지급하는 과정에서 모금한 금액 이상의 지출이 필요한 탓에 연금을 금융기관 등에 기탁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지난 3월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금융시장에 투자한 금액은 428조2441억원이다. 국내외 채권, 주식, 펀드 등에 투자재원으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돈을 운용하기 때문에 위험성이 높은 투자는 지양한다. 특히 주식시장에서는 양호한 실적, 현금흐름, 경영 안정성 등이 우수한 우량주인 이른바 ‘블루칩’ 투자를 중시하고 있다. 이 같은 투자가 이어지다보니 국민연금은 국내 주요 대기업의 대주주로 이름을 올린 경우가 많아졌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 LG 등의 주식 상당수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변화와 관련해 11.61%의 삼성물산주식과 5.04%의 제일모직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을 향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상황이다. 국민연금이 이들 두 기업의 합병을 바탕으로 한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키(Key)’로 작용하는 탓에 논란도 있다. 당초 수월하게 진행될 것이란 이들 기업의 합병을 외국계 헤지펀드사가 반대하고 나서면서 국민연금의 행보가 매우 중요해졌고 이에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민연금이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이번 합병의 성사여부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측은 이에 대한 언급을 피하는 분위기다. 이는 합병여부가 결정될 오는 17일 주주총회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스카이데일리가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행사하게 될 영향력과 이를 둘러 싼 각계의 목소리 등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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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을 향한 ‘백기사’ 당위성 여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국민연금은 오늘(10일) 오후 투자위원회를 열고 결정권을 내부에서 행사할지 외부에 위탁할지 등을 결정하는 회의를 열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의 지분 11.61%와 제일모직 주식 5.04%를 보유하고 있다. 사진은 국민연금 본부 ⓒ스카이데일리
국민연금이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두고 찬반을 가리게 될 ‘투자위원회’를 개최한다고 알려지면서 그 결과를 두고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감원 공시에 따르면 현재 국민연금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주식을 각각 11.61%, 5.04% 보유하고 있다. 이는 합병 성사여부를 가늠할 수 있을 만큼의 주식 보유량이라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합병에 반기를 든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7.12%를 보유한 상태이며, 삼성 측은 우호지분을 선언한 KCC를 포함해 총 19.78%의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한 상황이다.
줄곧 ‘묵묵부답’ 국민연금, 오늘(10일) 합병성사여부 방식 결정된다
이번 투자위원회는 10일 오후 3시에 개최하는 일정이 잡혔다. 국민연금은 이 자리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에 대한 찬반을 본부 내부에서 결정할지 외부의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로 넘길지 판단한다는 방침이다. 내부 투자위원회에는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을 비롯해 국민연금 내부인사 12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투자위원회를 통해 국민연금 측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의결권행사를 ‘전문위원회’에 위탁할 경우 오는 17일로 예정된 삼성물산의 주주총회를 1~2일가량 앞두고 개최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이 위원회에는 정부, 사용자단체, 근로자단체, 지역가입자단체, 연구기관 등이 추천한 인사들이 참여한다.
▲ 자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도표=최은숙] ⓒ스카이데일리
전문위원회는 최근 1년간 합병·영업양수 안건 3건 모두에 대해 반대를 결정해 같은 기간 14건 중 3건에 대해서만 반대 또는 기권을 결정한 투자위원회에 비해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다.
최근에는 SK와 SK C&C의 합병 과정에서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다. 당시 국민연금 측이 내세운 반대이유는 ‘주주가치 훼손’이었다.
‘단기차익’ 노리는 앨리엇 외국인투자자·소액주주 설득…국민연금 향방 촉각
당초 이들 두 회사의 합병소식이 전해지자 합병 자체는 순조로울 것으로 내다보는 시각이 다수였다. 오히려 이번 합병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후계체제 강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것이다.
하지만 엘리엇이 이에 반기를 들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에 문제를 삼은 것이다. 엘리엇은 가처분 소송 등을 제기했지만 법원 측은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이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자와 일부 소액주주들이 동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삼성그룹 측과 ‘삼성의 백기사’를 선언한 KCC의 지분은 각각 13.82%, 5.96%다. 반기를 든 엘리엇의 주식은 7.12%다. 이 밖에도 엘리엇을 제외한 외국인 투자자의 보유주식은 26.41%며 국내 기관투자자가 보유한 주식은 총 11.04%다.
▲ 자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CEO스코어 ⓒ스카이데일리
소송에서 이겨 주주총회를 열 수 있게 된 삼성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마음이 어디로 돌아설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11.61%의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한 국민연금을 향한 관심이 뜨거운 상황이다.
현재 재계 및 증권가 여론의 주된 반응은 “국민의 목숨줄과도 같은 노후자금으로 운용되고 있는 국민연금이 그 기금의 소중함을 생각한다면 미래가치를 최우선시 해야 하는 만큼 ‘삼성의 백기사’가 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명분도 있다”는 지적이 우세한 상황이다. 증권사 한 애널리스트는 “국민연금이 미래가치를 담보하는 국내기업 보호를 위해 나서야지 단기 차익 실현에 나서는 헤지펀드사와 행보를 같이한다면 우려되는 행보다”고 강조했다.
재계의 한 중역은 “국민연금 측이 투자위를 개최해 합병 의사를 직접 결정할지 외부가 결정할지 고민할 때가 아니다”고 주장하며 “국가 경제와 기금의 중요성을 동시에 생각한다면 당연히 삼성을 위해 의결권을 행사해야하는 것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임원은 또 “이미 합병반대세력이 등장한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국민연금 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며 “국민연금이 조속히 의사결정을 이뤘으면 이 같은 소동이 일어났겠느냐. 작은 해프닝으로 끝났을 이번 일을 국민연금이 키웠다”고 덧붙였다.
언론사 대표 출신 한 경제전문가는 “제일모직의 계열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내년 나스닥 상장 추진 계획을 발표한데 이어 자가면역질환 치료 바이오시밀러 개발에도 성공했다고 발표했다”며 “삼성측은 바이오 사업 가치가 7조5000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하는데 비해 ISS(국제의결권자문기구)는 이 사업의 가치를 1조5000억원으로 저평가 했다. ISS는 바이오산업의 현재가치를 보았고, 삼성은 미래가치를 주장한다. 삼성물산 주주들이 바이오산업의 미래 성장력을 인정한다면 합병에 따른 투자이익을 얻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주식 투자는 해당회사의 성장전망을 보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국민연금은 국민이 주인인 회사다. 대한민국 국민이 투자수익을 얻는 쪽으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이재용 삼성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이며, 국민연금이 이를 눈감아 줘서는 안된다는 게 반대론자의 주장이다. 하지만 국민이 낸 기금을 운용함에 있어 투자기업의 미래성장성을 가장 우선시 해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 국민연금 경영 슬로건 및 전략목표, 전략과제 [사진=국민연금 홈페이지 캡처화면]
물론 국민연금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이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 신뢰도 역시 고려해야 하는 만큼 무조건적으로 삼성 손을 들 수 없다는 주장이다. 국제 투자자들의 이해를 살 수 있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을 비판하는 측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주식을 모두 가지고 있는 국민연금이 이들 두 개사가 합병할 경우 더 큰 이득을 취할 수 있어 이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고 맞서는 상황이다.
재계 큰손 ‘국민연금’…30대그룹 184개 상장사 中 93개사 지분 5% 이상 보유
기금 특성 상 안전한 ‘블루칩’만을 대상으로 투자하는 국민연금은 현재 국내 재계의 큰 손과 다름없는 상황이다. 국내 주요 그룹 계열사의 지분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상장된 30대 그룹 계열사 184개사 중 국민연금이 5%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기업은 총 93개사다. 평균 지분율은 8.33%다.
국민연금이 갖고 있는 주요 기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국내 우량주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해당 기업들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롯데푸드, 롯데칠성음료, LG, LG상사, 한화, GS, CJ, 대한항공 등이다.
▲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두고 거취를 결정하지 못한 국민연금을 향한 재계의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늦은 의사결정으로 혼란을 키웠다는 것이다. 재계와 증권가 일각에서는 “국민노후자금으로 운영되는 국민연금의 사기업 경영권 참여가 설립 취지에 맞지 않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삼성물산(완쪽)·제일모직 본사 ⓒ스카이데일리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국민노후자금을 위해 조성된 기금으로 기업의 주요주주로 활동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분위기다. 안정적인 연기금 운용이 제일이라지만 너무 과하게 기업 경영권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사실 국민연금의 주체는 국민이 돼야하는데 결정권은 국민이 아닌 국민연금 자체가 갖고 있는 것 같다”며 “이번 삼성그룹 재계개편에서도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이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등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국민연금 슬로건이 ‘국민을 든든하게 연금을 튼튼하게’다”며 “연금을 튼튼하게 지킬 수 있게 지분권 등은 정부당국이나 외부 별도의 기관에 위탁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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