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창업한 범 현대그룹(당시 현대그룹)은 지난 1977년부터 2000년까지 24년간 국내 자산총액기준 재계서열 1위를 유지했다. 하지만 2세 경영체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소위 ‘왕자의 난’이라 불리는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고 범 현대그룹은 계열사별로 분리·해체를 맞게 된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현대그룹의 몰락’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정 명예회장의 차남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현대그룹의 자동차 계열사를 분리해 독자체제를 구축했다. 2000년 출범한 현대차그룹은 불과 몇 해만에 재계서열 2위로 올라서 분리 과정에서 불거진 우려를 일축했다. 지난달 5일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업체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2015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의 두 자동차브랜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각각 39위와 74위를 기록했다. 자동차 브랜드 순위로 따지면 7위와 11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글로벌 완성차시장의 강자로 거듭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매입한 삼성동 구 한전부지에 미래 현대차그룹 통합사옥이 될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계획 중이다. 재계 안팎에서는 GBC의 새 주인에 대한 관심이 높은 상황이다. 정 회장의 뒤를 잇게 될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의 시대가 GBC에 맞춰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것이다. 정 부회장은 최근 현대차의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를 출범시켰다. 스카이데일리가 현대차그룹의 프리미엄 완성차 브랜드 도전과 정의선 부회장에 대한 후계구도 등을 알아봤다.
|
▲ 현대자동차가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를 출범시켰다. 기존 제네시스·에쿠스 급의 차량을 별도 브랜드화 해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해당 사업이 현대차의 미래 먹거리로 부상할지 관심을 보이는 상황이다. 현대차 측은 해당 브랜드를 독립법인으로 추진할 뜻이 있음을 시사했다. ⓒ스카이데일리
현대자동차의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면서 정의선 부회장에 대한 후계작업도 동시에 주목받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4일 동대문디자인프라자(DDP)에서 행사를 열고 정의선 부회장이 직접 나서 세계 고급차 시장을 겨냥한 브랜드 ‘제네시스’의 론칭을 선언했다. 이어 10일에는 제네시스의 첫 모델 ‘EQ900’을 공개했다.
EQ900은 해외에서 G90란 이름으로 출시되며 오는 2020년까지 4개 차종을 추가시키겠다는 것이 현대차의 계획이다. 도요타의 ‘렉서스’, 닛산의 ‘인피니티’, 혼다의 ‘어큐라’, 포드의 ‘링컨’ 등과 같이 별도의 브랜드로 세계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기존 사업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창출했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제네시스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정 부회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정몽구 회장에 이어 차기 총수로 낙점된 정 부회장이 현대차의 지분을 추가 매입하고 있어 이 같은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에쿠스’ 車名 역사 속으로…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 현대차 미래먹거리 될 수 있나
제네시스의 첫 모델인 EQ900은 내달 출시될 예정이다. 당초 이 모델은 신형 에쿠스로 출시될 예정이었으나 현대차의 프리미엄 브랜드 출시에 따라 명칭을 달리하게 됐다.
이로써 지난 1999년 출시돼 현대차의 최고급 대형 세단으로서 국내 완성차 중 가장 고가(高價)로 각인돼 온 ‘에쿠스’란 차명은 사라지게 된다. 다만, 현대차 측은 기존 에쿠스가 지난 16년 동안 축적해 온 위상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에쿠스를 연상시키는 ‘EQ’라는 명칭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EQ900의 외국 출시명은 ‘G90’이다. 제네시스를 연상시키는 알파벳 ‘G’와 차 사양 등 급수를 바탕으로 한 ‘숫자’가 조합된 것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기존 현대차의 제네시스 차량은 ‘G80’로 개명하며, 2017년 출시 예고된 중형세단은 ‘G70’란 이름으로 불리게 될 예정이다.
▲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 탄생에는 정의선 부회장(사진)의 의중이 크게 반영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 부회장은 지난 4일 진행된 제네시스 브랜드 론칭 행사 당시 직접 발표를 맡았다. 정 부회장이 직접 발표에 나선 것은 지난 2009년 소나타 신차발표회 후 6년만이다. [사진=뉴시스]
제네시스란 브랜드의 차명은 문자와 숫자의 결합 방식인 ‘알파뉴메릭(alphanumeric)’이 적용된다. 이는 세계 유명 자동차에서 쓰이는 방법이다. EQ는 기존 브랜드의 가치를 제고해 한시적으로 사용되는 명칭이고 국내 모델에도 ‘G+숫자’ 체계를 갖추게 될 것이라고 현대차 측은 전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에쿠스를 의미하는 ‘EQ’가 이번 모델에만 적용될 것인지 차후 모델까지 적용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고객 반응 등 여론을 수렴해 ‘G+숫자’ 체계를 갖추게 될 것이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가 현대차의 새로운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는 상황이다. 완성차 시장에서 일반차보다 높은 판매 증가율을 보이고 있는 프리미엄 브랜드 시장에서의 호성적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프리미엄 완성차 시장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변하고 있다. 금융위기 당시 감소세를 기록한 프리미엄 완성차 시장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10.5%의 연평균 판매 증가율을 기록하며 일반차 연평균 판매 증가율(6.0%)을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 측은 향후 브랜드 제네시스를 현대차에서 독립해 새로운 법인 출범을 지향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존 1그룹 2개 차(현대·기아) 체제에서, 1그룹 3개 차(현대·기아·제네시스)로의 변화하겠다는 의중을 표출한 것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제네시스는 현대자동차 내 또 다른 브랜드로 시작하지만 향후 독립법인을 지향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법인 독립 의지는 갖고 있지만 이를 언제·어떻게 실행할지에 대한 것은 확정된 것은 없다”고 답했다.
▲ 자료: IHS. ⓒ스카이데일리
제네시스 선봉 ‘정의선 부회장’…“경영능력 이미 인정, 지배구조 장악 관건”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의 선봉장은 정의선 부회장이란 의견이 그룹 안팎의 공통된 시각이다. 실제 정 부회장은 지난 2009년 소나타 신차발표회 이후 6년 만에 직접 브랜드 발표에 나섰다.
현대자동차의 차기 총수후보인 정 부회장은 자동차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기아자동차의 ‘K시리즈’를 성공시키는 등 경영능력 면에서 이미 인정받았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이는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재계 2~3세들 사이에서 돋보인다는 평이 나온다.
문제는 그룹 장악력이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를 축으로 한 순환출자구조를 갖추고 있다. 금감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현대모비스가 현대자동차의 주식 16.04%를 보유해 최대주주로 오른 가운데, 현대자동차는 33.88%의 지분을 통해 기아자동차를, 다시 기아자동차는 16.88%의 현대모비스 지분을 보유한 상태다.
나머지 대부분 계열사는 이들 3개사가 독자적으로 지분을 보유했거나, 3사 중 2개사가 공동으로 지분을 보유한 방식으로 지배하고 있다. 또 현대모비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가 각각 8.72%, 20.93%, 5.23% 보유한 현대건설을 통해서도 다수의 계열사를 거느리는 형태를 갖췄다.
결국 현대차그룹의 지배력 확보는 순환 축이 되는 3사의 지배력이 우선돼야 한다. 정몽구 회장의 경우 현대모비스와 현대자동차의 지분 6.96%, 3.99%를 보유했다. 하지만 정 부회장의 경우 이들 3사에 대한 주식이 다소 빈약한 상태다. 현대모비스의 지분은 없는 상태며,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지분 1.76%와 1.74%만을 확보했다.
▲ 자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2015년 11월 12일 기준. [도표=최은숙] ⓒ스카이데일리
현대자동차의 경우 최근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주식매입을 단행함에 따라 갖게 된 것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 9월 현대중공업이 보유한 316만4550주를 매입한데 이어 지난 10일에는 현대삼호중공업이 보유한 현대자동차 주식 226만5000주 중 184만6150주를 시간 외 대량매매를 통해 확보하고 어제(12일) 이를 공시했다. 정 부회장은 매입 전 보유주식까지 합쳐 1.76%(501만7443주, 보통주 기준 2.28%)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증권가 안팎에서는 정 부회장의 지배력확보의 시나리오로 크게 두 가지로 점쳐지고 있다. 하나는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건설의 합병을 통해 계열사 지배력 확보에 나선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계열사 가치를 올려 이를 현금화 한 뒤 순환출자 3사의 지분을 획득하는 방법이다.
현재 정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23.29%, 현대엔지니어링 11.72%, 현대위아 1.95%, 현대오토에버 19.46%, 이노션 2.0% 등의 계열사 주식을 보유한 상태다. 합병을 통한 지배력을 위해서는 정 부회장이 보유한 계열사의 가치상승이 선행돼야 지분율을 이끌어 낼 수 있게 된다.
현금화 역시 실행 가능한 시나리오다. 실제 최근 단행된 두 차례의 현대자동차 주식 매입 과정에서 소요된 금액 역시 보유주식 매각을 통해 마련된 것으로 업계는 내다봤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부터 올 초에 이르기까지 이노션과 현대하이스코의 보유 지분을 매각해 1조원의 현금을 확보한 바 있다. 정 부회장이 두 차례의 현대자동차 매입 과정에서 소요된 금액은 약 8000억원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중공업그룹이 재무구조 개선을 이유로 현대자동차 주식 처분에 나섰고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와 주주가치를 위한 정 부회장의 결단이었다”며 경영권 승계 등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한 광고·마케팅 회사 중역은 “영어 제네시스(Genesis)는 기원·발생이라는 의미로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현대차에게 어울리는 브랜드다”며 “특히 정 부회장에게 제네시스는 새 브랜드이자 현대차그룹 차기 오너로써 새로운 기원으로도 해석된다”고 평가했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