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부터 개발이 시작된 강남구 대치동에는 개포우성, 선경, 미도, 은마 등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섰다. 문교부는 강남 땅을 특별 분양해 경기·휘문·숙명·서울고 등 강북의 명문학교를 강남으로 이주토록 유도했다. 고급 아파트와 명문고가 만나 소위 강남 ‘8학군’ 전설이 시작됐다. 수준 높아진 공교육과 함께 사교육도 강남에 자리를 잡았다. 대치동 학원가는 2000년대 확고하게 사교육의 메카로 군림했다. 그 중심에는 메가스터디가 있었다. 강남 학원가 스타강사였던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은 2000년 7월 강남에서 잘나가는 학원 강사와 원장들을 끌어들여 메가스터디를 설립했다. 창립 이후 급속도로 성장한 메가스터디는 2003년 대치역 인근 대형 재수종합학원 강남대일학원을 인수했다. 대일학원이 인수되자 기존 강사들은 인근에 개인학원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대치동은 현재 100여개의 학원이 밀집한 사교육1번지로 불린다. 정권에 따라 새로운 교육정책이 실시됐음에도 불구하고, 대치동 학원가는 지난 20여년간 전국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2018년도 수능시험부터 영어가 절대 평가로 바뀌면서 대치동 학원가에는 변화의 바람이 일어났다. 스카이데일리가 ‘수능 영어’에서 ‘내신 영어’로의 변화가 일고 있는 대치동학원가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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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부는 2018학년도 수능부터 영어과목을 절대평가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수능에서 영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게 됐다. 이에 대치동 학원가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이곳에는 벌써 수능 비중을 줄이고 내신 비중을 늘리는 영어 학원이 늘고 있다. 기존에 수능 영어를 가르치던 강사들은 내신을 가르치거나 중학교 내신, 토익 등으로 옮겨가고 있다. 하지만 자리를 잡지 못한 일부 영어강사들은 속절없이 내쫓기는 실정이다. ⓒ스카이데일리
‘쉬운영어’ 기조 수능영어 절대평가 전환…영어 학원·강사 설자리 잃어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영어과목이 절대평가로 전환되면서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 및 강사와 국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측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10월 1일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기본계획’을 확정해 발표했다. 이 계획에는 2018년 수능부터 영어영역에 절대평가를 도입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사교육비 절감과 쉬운 영어 시험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수능 영어영역의 난이도가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영어에 투자하는 사교육을 늘렸고, 수능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는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문제 난이도를 높이는 악순환이 이어지며 외국인도 혀를 내두를 수준까지 영어 시험이 어려워졌다.
#box1#결국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만으로는 수능을 준비할 수 없다는 비판을 받은 교육부는 수능 영어영역 절대평가라는 특단의 대책을 도입했다.
교육부는 수능 영어과목에 9등급제를 도입했다. 100점부터 90점까지는 맞은 학생에게는 1등급을 준다. 89점부터 80점까지는 2등급이다. 이런 식으로 10점 단위로 등급이 나눠지게 된다. 현행 성적표에 나오는 백분위와 표준점수를 빼고 등급만 표시하기로 했다.
절대평가제가 시행되면 100점을 받거나 90점을 받거나 똑같은 1등급을 받게 된다. 수능 영어 무용론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대한민국 입시정책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서울대의 방침도 무용론에 불을 지폈다는 지적이다.
지난 17일 서울대는 2018학년도 입시부터 영어 비중을 크게 줄인다고 발표했다. 서울대는 정부의 쉬운 수능 영어 기조에 따라서 2018학년 수능부터 영어 1등급자에게는 전부 만점을 주고 2등급부터 0.5점씩 감점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영어 전문가들은 정부가 사실상 영어 시험을 포기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부 전문가는 “영어에서 5등급이 나와도 다른 과목에서 1등급을 맞으면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며 “영어실력이 중간 정도라면 영어시험을 전부 다 찍고 수학문제를 하나 더 맞는 게 낫다”고 전했다.
C영어 학원의 박진원(37·가명) 원장은 “인근의 S여자고등학교에서 며칠 전 치룬 모의고사서 98점을 맞은 학생이 전교에서 104등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1학년이 총 580명인데 이중 400명 이상이 영어 1등급을 맞은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자료: 교육부 ⓒ스카이데일리
박 원장에 따르면 서울시내에 위치한 대학들의 입학 정원이 총 7만명 정도인데 전국에서 영어 1등급자는 9만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내년부터 수능영어 수요가 줄어드는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한티역 인근 대형 종합학원인 명인학원 관계자는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뀌더라도 내신이 있어 학생들이 영어공부를 안 할 수는 없다”며 “제도가 바뀌기 이전에도 고등학교 1학년과 2학년 때까지는 내신 수업에 집중하고, 고등학교 3학년부터 수능 수업에 집중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현재까지는 큰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영어강사들 떠나고 영어학원 문닫아”…국어·수학 몰리는 풍선효과 전망
대형학원과 달리 일부 중소형 영어 전문 학원과 강사들은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특히 학원가 전문가들은 올해 수능 이후 재수종합반을 가르치는 영어 강사들이 자리를 떠날 것으로 전망됐다.
대치역에서 중소형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K원장은 “몇몇 소형 영어학원들이 학원을 비웠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며 “우리 학원은 수능에서 내신 위주로 수업 내용을 바꾼 지 오래돼 아직 타격은 없다”고 전했다.
이어 “작년에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뀐다고 발표가 나자마자 재수종합반에서 영어 선생님들이 쫓겨났다는 소문이 있다”며 “학원 입장에서는 영어가 빠진 빈자리에 다른 과목을 채워 넣으면 되기 때문에 영어 강좌 수강생만 줄 뿐 전체 수강생은 크게 줄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C영어학원의 박 원장은 제도 변화가 체감되는 내년부터 중·고학생 대상 내신 수업반이나 토익 등 다른 과목으로 전향하는 강사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이미 미리 상황을 반영해 올해부터 내신 비중을 늘린 학원도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같은 영어 수업이라도 내신과 수능의 커리큘럼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미리 선제 대응을 한 것으로 풀이됐다.
박 원장은 “독해문제가 대부분인 수능은 학습과정에서 영어 책 읽기를 강조하지만 내신은 문법 위주로 진도를 나가기 때문에 중점적으로 공부할 사항이 달라진다”며 “이미 초등학생과 중학생 사이에서는 영어 동화책 대신에 영문법 책을 읽히는 학부모가 늘었다”고 말했다.
▲ 대치동 학원가(사진)는 각 학원별 특색있는 시스템을 통해 전국 최고의 학원가를 형성했다. 대치동 학원가는 불황을 모르며 사교육 불패 신화를 써내려간 곳이다. 방학이면 이곳에는 유명 강사의 수업을 듣기 위해 전국에서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동영상 강의가 발달하면서 지방에서 올라오던 학생들이 과거에 비해 줄었다. ⓒ스카이데일리
학원가 입시 전문가는 수능 교육 시장에서 영어 비중이 줄어든 만큼 국어와 수학 과목으로 풍선효과가 일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수학을 가르치는 K학원 관계자는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된 이후부터 수학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며 “하지만 수학 과목은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하는 과목 특성상 단기간에 하기엔 무리가 있다. 따라서 수강을 희망하는 학년이 밑으로 내려가는 중이다”고 말했다.
국어를 가르치는 J학원 관계자 역시 “우리 학원은 소수정예가 원칙이라 일정 숫자 이상의 학생을 받지 않기 때문에 수강생이 증가하지는 않았다”며 “하지만 예전에 비해 문의가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대형학원, 인기 강사 초빙 우수자료 배포…중소형학원, 소수정예 맞춤 학습
대치동 학원가는 콘텐츠가 우수한 유명 강사를 중심으로 학생이 몰리거나 소수정예로 수업이 진행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은마아파트입구 사거리에는 대형학원의 경우 강사 중심의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반면 스타강사를 영입하기 힘든 대치역 인근 중소형학원은 소수정예시스템으로 학생 맞춤형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대치동에서 5년간 행정직원으로 근무한 김은지(가명·30)씨는 “강사 파워가 막강한 대치동 학원가는 학생을 끌어들이는 ‘유명강사 모시기’에 혈안이다. 오라는 곳이 많다보니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강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며 “국어 김동욱·박광일, 수학 현우진, 사탐 최진기 등이 가장 유명하다”고 전했다.
▲ 강사들이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유행을 타면서 점점 더 강남 학생들에게 쉽게 볼 수 있는 자료가 배포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필기를 하지 않아도 되도록 미리 필기가 돼 있는 학습자료를 배포는 것이 유행이다. 사진은 대치동의 한 학원에서 배부한 수업자료 [출처=고창영 영어연구소]
대치동 인기 강사들은 경쟁력 있는 학습 자료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자료에 대한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최근에는 아예 필기까지 된 학습 자료를 제공하는 학원도 생겨났다.
대치동에서 13년째 거주중인 연세대학교 임가연(21·가명) 학생은 “대치동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강사가 제공하는 강의와 자료의 질을 까다롭게 따진다”며 “이곳 강사들 대부분은 직접 개발한 문제로 수업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답과 해설이 들어간 자료를 구하기 위해서는 그 선생님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례로 지난 2014학년도 수능 당시 한 국어 강사의 자료가 수능시험에서 적중률이 높았던 적이 있었다. 학원 관계자에 따르면 다음해 해당 강사의 수업에는 수강생들이 너무 많이 몰려 조기 마감됐고 수업을 듣지 못한 학생들은 어떻게든 자료를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됐다.
인기 강사를 끌어들이지 못하는 중소형 학원들은 철저한 소수정예 시스템을 구축했다. 학생 밀착관리와 자신만의 고유한 특징을 살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대치역 인근 중소형 국어학원 J학원은 10년 전 개원할 때부터 소수정예 전문 학원을 지향한 곳이다.
J학원 관계자는 “이곳 대치동의 학원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학원들이기 때문에 저마다 특징이 있다”며 “자신만의 특징이 없이 교육정책에 따라 흔들려 프로그램을 바꾸거나 경기 불황을 이유로 가격을 올리면 학부모와 학생들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고 말했다. J학원의 수강료는 주 1회 3시간 수업, 월 4회 기준 30만원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학원비는 몇 년째 동결중이었다.
중소형 수학 전문 K학원은 1:1 강의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K학원 원장은 대치동 학생들을 유난히 자존심이 세고 대부분 소심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 평가했다. K학원은 다른 학생들이 있는 곳에서 강사에게 질문하기를 꺼려하는 특성을 고려해 학생들이 편하게 질문할 수 있도록 1:1 강의를 진행했다. K학원장에 따르면 수업은 주 2회로 운영하지만 수강료는 수업소요 시간이나 학생에 따라 달랐다.
대치역 인근에 위치한 B영어학원의 전략은 대형 학원의 강의 시스템과 1:1 과외를 통합한 복합 시스템으로 운영됐다. 방민(가명·28) 원장은 “과외 형태인 약점 클리닉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이 취약한 부분을 확인하고 그에 따른 커리큘럼과 교재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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