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고객 카드사용 “여성을 위해”」지난 2001년 12월 국내 한 매체 보도기사의 제목이다. 한 백화점에서 남성고객의 카드 사용처에 대한 통계를 냈는데 남성들이 주로 지출한 브랜드는 에스티로더, 샤넬, 랑콤, 시슬리, 아베다 등이라는 것이다. 이들 브랜드들은 주로 여성용 화장품 및 패션잡화 등을 판매하는 곳이다. 남자는 계산에 집중하고 여자는 쇼핑에 집중한다는 풍토가 그대로 녹아있는 데이터였다. 15년 남짓 지난 오늘의 유통가에서도 이와 유사한 트렌드로 남심(男心)을 잡기 위한 바람이 불고 있다. 빅3 유통공룡을 중심으로 남성들을 위한 다양한 ‘유인장치’가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백화점·대형쇼핑몰·아울렛 등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다. 이 같은 추세는 신세계를 필두로 롯데·현대백화점 등 유통대기업들이 주도하고 있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신세계의 경우 ‘일렉트로마트’가 속속 점포를 늘리고 있다. 이곳은 남성을 위한 전용매장이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8월 개장한 판교점 남성복 판매라인을 보다 다채롭게 꾸미고 남성 고객들을 불러 모으는데 남다른 노력을 하고 있다. 롯데도 최근 롯데 이천 프리미엄아울렛에 BMW모터사이클 카페 문을 여는 등 ‘남심 사로잡기’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이들 점포들은 남성들의 지갑을 열기 위한 목적 보다는 남성의 호기심을 적극 자극해 방문을 유인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를 통해 여성들의 소비를 늘리겠다는 복안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실제 매장을 취재한 결과 남성전문매장들의 경우 ‘남자들이 놀기 좋은 공간이다’는 분위기는 맞지만 소비는 거의 저조했다. 스카이데일리가 지난 주말 남성고객 유치에 적극 나선 유통 3사의 매장들을 찾아 남성을 유혹하는 트렌드가 불고 있는 현장의 상황과 반응 등을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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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유통가에서 남성 고객들의 발길을 모으기 위해 경쟁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업계 등에 따르면 이번 경쟁의 출발선은 지난해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이마트타운과 함께 선보인 ‘일렉트로마트’(사진·타임스퀘어점)다. 이후 현대백화점과 롯데 등도 남성 고객을 유인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최근 유통가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과거 쇼핑하는 여성들의 ‘동행자’ 혹은 ‘들러리’로 인식됐던 남성고객들을 향한 구애의 바람이 유통 전반에 불불고 있다.
이 같은 바람의 근원지는 유통 대기업 빅3다. 지난해 문을 연 이마트타운의 ‘일렉트로마트’가 시작이다. 이 바람을 타고 경쟁업체인 현대백화점과 롯데 등도 경쟁적으로 남성들을 위한 공간마련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이들은 대형쇼핑몰, 대형마트, 백화점, 아울렛 등에 이 같은 공간을 마련하고 남심을 사로잡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이런 트렌드는 남성마저 쇼핑하러 가고 싶게 만들어 매출을 끌어올리겠다는 복안으로 분석된다.
남성고객 취향 저격… 신세계 ‘일렉트로마트’, 현대百 ‘남성매장’ 등 인기
경방의 공장자리에 지난 2009년 세워진 쇼핑몰 타임스퀘어의 운영사는 신세계다. 경방이 신세계에 위탁경영을 맡긴 것이다.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등 신세계그룹의 유통사들이 다수 입점한 상태다.
지난 10일 퇴근시간대 이곳을 찾았다. 건물 내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아트리움’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서서히 눈에 들어오는 큰 매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신세계가 본격적으로 ‘남심’을 자극하겠다며 선보인 ‘일렉트로마트’다.
일렉트로마트는 지난해 6월 일산 이마트타운에 1호점을 선보인 이래 부산 센텀시티, 영등포 타임스퀘어, 판교 등에 차례로 2~4호점을 잇따라 출점했다. 이곳 매장은 지난 4월 26일 오픈한 3호점이다. 4호점 판교점보다 규모가 크다는 것이 특징이다.
▲ 일렉트로마트는 단순한 가전 및 전자제품 매장이 아니다. 이를 중심으로 남성들이 관심 가질만한 다수의 제품군을 판매 중이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일렉트로마트 타임스퀘어점 의류코너, 게임코너, RC자동차코너, 스포츠용품 및 다양한 연장 등이 진열돼 있는 모습 ⓒ스카이데일리
입구에 들어서자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마이크로소프트, LG전자, 삼성전자, 애플 등의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제조사 코너인 셈이다. 일렉트로마트 이름의 뜻과 매장을 들어선 첫 느낌 등을 종합해 보면 분명 전자제품을 파는 곳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지만 막상 매장을 둘러보면 이는 전체 상품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곳에서 파는 상품은 IT기기 및 생활가전 등 이름에 걸맞은 상품들을 비롯해 음향기기, 웨어러블·차량기기, 카메라, 프린터, 스마트토이, 드론 등 다양하다. 여기에 캠핑·자전거·스포츠용품, 패션, 화장품, 바버샵까지 비 전자제품도 가득하다.
사실상 남성들의 취향을 ‘저격’한 셈이다. 남성들을 위한 제품들과 남성들이 꿈꾸는 제품들 그리고 남성들이 즐기는 모든 것을 한 데 모아둔 것이다. 실제 퇴근 무렵임에도 이곳을 찾은 남성들은 다양한 상품들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지난 12일 현대백화점 판교점도 이와 비슷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해 개장한 이곳 백화점 6층에는 남성패션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하지만 여느 백화점 남성코너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단순히 패션브랜드만 입점한 것이 아니라 남성들이 ‘로망’하는 제품들을 다수 비치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 자연스럽게 왼쪽으로 발걸음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드론이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 5명 안팎의 남성들이 갖가지 드론들을 유심히 지켜보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 매장 직원은 ‘전동휠’을 타고 매장 곳곳을 돌며 방문한 고객들을 응대했다. 드론매장 뒤편으로는 각종 음향기기와 자전거, 생활·패션 소품 등이 판매됐다. 패션트렌드에 민감해진 남성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매장 한 곳에는 바버샵이 들어서 있었다. 한 남성이 머리를 자르고 또 면도를 했다. 일반 의류매장도 다른 백화점과 차별화된 모습이다. ‘닥스’ 매장에서는 고급 커피를 함께 판매하고 있었으며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브랜드 ‘갤럭시’에서는 IT라운지를 운영하며 다양한 IT기기를 함께 선보였다.
이런 곳들을 찾는 남성들은 즐겁다는 반응이다. 일렉트로마트에서 만난 한 직장인은 “블루투스스피커를 구매하기 위해 이곳을 처음 방문했는데 정말 재밌는 공간이다”며 “설치된 게임을 시연해 볼 수 있고 평소 접하기 힘들었던 제품들을 둘러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안내된 내용을 보니 드론과 RC카 등의 경우 특정 시간대에 시연을 하는 것 같았다”며 “다음번에는 해당 시간에 맞춰 한번 들러볼 생각이다. 타임스퀘어에 올 때마다 자주 올게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 만난 한 중년남성은 “아내와 함께 백화점에 나섰다가 구두 한 켤레를 구매하고자 이곳에 오게 됐다”며 “확실히 예전 백화점들에 비해 상품구성과 배치 등이 다채로워진 것 같다”고 느낀 그대로를 이야기했다.
▲ 현대백화점도 지난해 판교점을 오픈하면서 남성복 코너를 대폭 강화했다. 이곳은 여느 남성복 매장과 다르다. IT라운지·남성전용 케이블TV 라운지 등이 자리했으며 바버샵도 입점한 상태다. 매장 중앙부에는 드론·음향기기·취미용품 등을 진열해 남성들의 눈길을 끌었다. ⓒ스카이데일리
방문객 대비 구매율 저조, 롯데 아울렛 ‘모터사이클 카페’ 썰렁…“유치하다” 목소리도
하지만 이 남성은 백화점의 이 같은 정책이 다소 ‘유치하다’는 반응도 보였다. 백화점이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감이 다소 희석됐다는 지적이다. 그는 “고급스러움은 간직했으나 어울리지 않는 상품구성으로 백화점이 주는 신뢰감은 다소 하락한 것 같다”고 평했다.
남자들의 구매를 노리기보다 ‘유인책’일 뿐이라는 시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해당 매장들의 경우 일반인들이 접하기 힘든 제품들을 전면에 비치함으로써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며 “실제 구매로 이어지기는 힘들 것 같다”고 예상했다.
일렉트로마트 매장 직원도 이와 궤를 같이하는 증언을 했다. 방문객에 비해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비율이 극히 저조하다는 것이다. 그는 “계획 여부와 관계없이 방문을 하는 주목적은 ‘호기심’이며 구매를 목적으로 하는 방문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유통가에서는 이 같은 남심을 겨냥한 유통사들의 경쟁이 결국 여성들을 끌어내기 위한 유도장치로 보고 있다. 결국 매출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고객은 여성이라는 것이다.
예년과 같으면 동행한 여성들의 쇼핑시간 동안 엘리베이터 앞 소파 등에 장시간 앉아있던 남성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함으로써 덩달아 여성들의 쇼핑시간 등을 확보하고 이런 것들이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복안으로 속속 남성전문 매장들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실제 일렉트로마트의 경우 4호점 판교점을 제외한 전 매장이 백화점·대형마트 등과 함께 입점해 있다. 기자가 방문했던 타임스퀘어 매장의 경우도 이마트매장과 이웃했으며 쇼핑몰 등이 즐비한 매장과도 지근거리에 위치해 있다.
판교점 역시 유사했다. 지하 2층부터 지하 6층까지의 전 주차장이 ‘만차’라 인근의 교통체증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로 많은 인파가 방문했음에도 유독 6층의 분위기는 다소 ‘썰렁’한 모습이었다.
▲ 경기도 이천 롯데프리미엄아울렛도 지난달 27일 ‘BMW모터사이클’을 전시한 카페를 오픈하며 남심 잡기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대대적인 홍보가 있었지만 막상 기자가 찾았을 때 이곳에는 직원 2명을 제외한 손님은 없었다. 쇼핑 중인 고객들 중 다수도 현장에서 대형 현수막을 통해 해당 카페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스카이데일리
최근 롯데 이천 프리미엄아울렛에도 남성을 유혹하기 위한 공간이 마련됐다. 지난달 27일 오픈한 카페 ‘모터래드’가 그것이다. 이곳에는 BMW오토바이가 매장 내·외부에 전시돼 있다. 롯데는 해당 카페의 개점소식을 보도자료를 통해 홍보했을 정도로 열을 올린 바 있다.
롯데의 이곳 매장 출점은 인근 여주 첼시 프리미엄아울렛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됐다. 서울과 직접적인 거리는 가까우나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인근에 위치한 여주 프리미엄아울렛에 비해 접근성에서 떨어진다는 평가를 ‘오토바이’로 만회하겠다는 뜻으로 비춰졌다.
19일 정오를 넘긴 시간대에 기자가 찾았을 때 해당 커피숍 매장에는 두 사람의 점원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점원은 “바이크동호회 사람들의 반응이 좋은 편이며 모르던 고객들도 자주 매장을 찾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자가 상당시간 해당 매장을 지켜봤을 때 해당 가게를 드나드는 이는 커녕 가게 인근을 지나다니는 이들도 전무했을 정도였다.
쇼핑을 즐기는 이들 대다수도 해당 카페의 존재를 모르는 눈치였다. 한 고객은 “들어올 때 대형 현수막이 있어 카페가 있는지 알았지 정확히 어디있는지는 몰랐었다”며 “굳이 오토바이만 있는 카페에 갈 필요가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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