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은 국내 카드사들에게 신용카드 빅뱅이 이뤄진 축복의 해였다. 2000년은 1999년 개정된 세법에 따라 신용카드 사용금액 세액공제가 적용된 해였다. 정부의 의도대로 신용카드 사용은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나 무분별한 카드 발급으로 2003년에는 한 해 동안 신용 불량자 108만명이 늘어났다. 결국 그해 카드대란이 터졌고 삼성카드와 LG카드를 포함한 다수의 카드사들이 파산 위기에 몰렸다. 정부가 수십조원의 혈세를 투입하고 나서야 카드대란은 일단락됐다. 재무구조가 튼튼해진 카드사는 영업이익을 내기 시작했고 다시 호황을 맞았다. 그러나 매년 2조원이 넘는 당기순이익을 내던 카드사에서 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주요 수익원인 여신사업에서 전과 같은 수익성을 기대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정부의 수수료 인하 정책으로 올해 카드업계는 6700억원의 수익 감소가 예상된다. 카드사들은 고유업무를 벗어나 휴대폰 할부, 부동산 대출 등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거나 해외 시장 진출을 적극 노리고 있다. 그러나 무분별한 신규 사업 진출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만만치 않다. 스카이데일리가 위기에 처한 국내 카드사의 신규 사업 및 해외 진출 등에 대해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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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안정적인 수익을 내던 카드사에서 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주요 수익원인 여신사업의 부진과 정부의 수수료 인하 정책 등으로 카드사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이에 국내 카드사는 사업다각화의 일환으로 다양한 신사업 진출과 잇단 해외시장 진출로 위기 탈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전문성이 결여된 무분별한 사업 진출과 무리한 해외 진출은 카드사의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카이데일리
수익성이 악화된 카드사들이 신사업 발굴과 해외시장 진출로 위기 탈출에 나섰다. 그러나 재대로 된 준비없이 떠밀리듯 하는 신사업과 해외진출은 오히려 카드사들에게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수수료 강제 인하, 체크카드 활성화, 소액결제 붐…실적 부진의 늪에 빠진 카드사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카드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8개 신용카드사들의 전체 매출액은 증가한 반면 당기순이익은 전년대비 7.5% 줄어든 2조158억원을 기록했다. 카드사 당기순이익이 감소한 것은 2012년 이후 3년 만이다.
당기순이익 하락은 올해 1분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삼성카드와 하나카드를 제외한 카드사들에서 1분기 순이익이 전년 대비 하락했다. 업계 1위인 신한카드는 올 1분기 당기순이익 1489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 1545억원보다 3.7% 감소하고, KB국민카드는 같은 기간 982억원에서 952억원으로 3% 감소했다.
현대카드는 13.8%, 롯데카드는 22%, 우리카드는 32% 감소했다. 1분기 실적이 좋은 삼성카드와 하나카드 역시 외부적 요인 때문에 실적 호전이 있었던 것일 뿐 신용카드 관련 실적은 부진했다.
올해 카드사들은 가맹점 수수료 인하, 대부업 최고금리 인하, 금융권 환경 변화 등으로 여신에서 더 이상 많은 수익을 내기 힘들어졌다.
카드사는 정부의 방침대로 올 1월 30일부터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대폭 인하했다. 연매출 2억원 이하 영세가맹점에서 0.8%로, 연매출 2억∼3억원인 중소가맹점에서 1.3%로 낮췄다. 카드사는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인해 올해 6700억원의 수익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1분기 카드사의 현금서비스 및 카드론 수입비율 역시 낮아지는 추세다. 카드사는 지금도 금리가 높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다가 최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상황에서 현금서비스 금리 등을 인상하기도 어렵다. 금리를 더 올릴 경우 여론의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체크카드 활성화도 카드사 수익 악화의 요인이다. 체크카드 발급매수는 지난 2010년 이후 매년 평균 6~7%씩 증가해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4.5% 증가한 1억527만장를 기록했다. 구매실적 역시 전년 대비 16.2% 늘어난 131조원을 나타냈다.
30%의 소득공제 해택이 있는 체크가드는 이미 신용카드 발급매수를 크게 앞질렀다. 신용카드는 2011년 1억2000만장으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로 전환해 지난해 9314만장을 발급했다. 체크카드는 연회비가 없지만 일반 신용카드와 비슷한 수준의 쇼핑 할인, 항공 마일리지 적립, 수수료 면제, 캐시백 등을 제공하고 있다.
카드 대중화로 인한 소액 결제도 카드사에게는 골칫거리다. 매년 건당 결제금액이 낮아지고 있다. 그러나 카드사는 건당 결제금액과는 상관없이 밴사에 동일한 수수료를 낸다. 결재 1건당 110원~120원가량의 수수료가 발생하는데 소액 결제가 지속되면서 역마진의 우려도 있는 상황이다.
▲ 자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스카이데일리
규제 완화 신사업 진출…PB상품 사업, 유학알선업, 대리운전, O2O(Online to Offline) ‘활발’
카드사를 둘러싼 상황이 악화되자 금융당국은 지난해부터 규제완화를 통해 카드사 달래기에 나섰다.
KB국민카드 사장 출신의 김덕수 여신금융협회장은 “지속적인 규제 완화와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지난해 금융당국의 규제 개선 노력으로 그림자 규제가 상당 부분 완화돼 다양한 신규사업 발굴이 가능해졌지만 카드사 정보 유출 사태 이후 한층 강화된 소비자 보호 관련 규제가 여전히 남아 있어 이를 위해 금융당국과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지난해 10월 카드사 부수업무에 대한 규제가 10년만에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완화됐다. 과거 카드사들은 금융당국으로부터 부대업무 인가를 받아 통신판매, 여행업, 보험대리점 등 한정된 업무를 해왔다. 포지티브 방식은 목록에 나열된 일만 할 수 있어 새로운 업무영역을 개발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규제 완화로 음식점이나 카페, 인쇄업 등 중소기업 적합 업종 등을 제외한 다양한 업종으로의 진출이 가능해졌다.
이후 카드사가 각종 신사업에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PB상품 사업, 유학알선업, 대리운전, 중고휴대폰 매매 등 다양하다.
업계 1위의 신한카드는 지난 22일 국토교통부와 업무협약(MOU)을 통해 부동산 전자계약시스템을 이용하는 주택 거래 당사자 매수·매도인과 임대·임차인은 물론 계약을 중개하는 공인중개사 등 전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 상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또한 신한카드는 대리운전 서비스를 출시할 계획이다. 신한 앱카드를 이용해 대리 운전기사를 부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롯데카드는 ‘유학알선업’에 나선다. 롯데카드는 유학닷컴과 제휴해 롯데계열사 오프라인 매장 등에 유학 설명 부스를 마련해 고객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BC카드는 온라인채널 ‘BC커머셜’(가칭)을 오픈, 중소기업과 손잡고 PB(Private Brand) 상품 판매에 나섰다. 브랜드력이 약해 판매가 부진한 중소기업 상품을 BC카드 브랜드로 유통시킨다는 계획이다. BC카드는 올 상반기 사업에 진출할 예정으로 유통업체와 협의 중에 있다.
삼성카드는 중고휴대폰 매매사업에 나섰다. 삼성카드는 삼성전자와 손잡고 갤럭시S7, 갤럭시S7엣지 등 신규스마트폰을 삼성카드 24개월 할부로 구매한 뒤 삼성카드에 반납하면 새로운 스마트폰으로 바꿔주기로 했다.
하나카드는 스타트업 기업인 다모여컴퍼니, 라이클, 비유에스크리에이티브, 저니앤조이트래블, 플라이앤컴퍼니와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 제공 관련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KB국민카드는 한국 상품을 해외에 온라인으로 직접 판매하는 역직구 사이트를 미래먹거리로 추진했다. 현대카드의 경우 오피스 빌딩 일부 층을 작게 나눠 재임대하는 ‘서비스드 오피스(Serviced Office)’ 사업 진출까지 고려하고 있다. 우리카드는 핀테크와 자동차금융 등을 신사업으로 육성할 계획을 밝혔다.
▲ ⓒ스카이데일리
동남아 시장 무차별 진출하는 카드사들…잇단 현지법인 설립·증자 및 영업 ‘드라이브’
카드사들은 국내 시장에서 다양한 사업을 벌이는 한편 해외 시장 진출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해외 진출이 당장 수입으로 직결되지는 않지만 국내 카드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든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외진출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주로 카드 결제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은 동남아시아 국가가 타깃이다. 이들은 결제 시스템 수출 및 마이크로 파이낸스(소액대출) 사업을 위해 현지 법인을 강화하고 있다.
신한카드는 지난해 7월 카드업계 최초로 카자흐스탄에 단독 법인을 세웠다. 지난해 말에는 인도모빌과 함께 신한 인도파이낸스를 설립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신한카드는 최근 인도네시아 법인에 54억원, 미얀마 법인에 35억원 증자를 결정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신한인도파이낸스의 신용카드 및 할부시스템 구축을 위해, 마얀마는 마이크로 파이낸싱 사업 인가를 위해 증자한다. 신한카드는 해외 진출에 가장 적극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KB국민카드는 지난 2월 KB캐피탈과 함께 라오스에 합작 리스회사를 설립해 올해 하반기부터 자동차할부금융 시장에 진출한다. KB국민카드는 지난해 11월 베트남의 GNC텔레콤과 핀테크 서비스 개발 협약을 맺기도 했다.
우리은행은 해외지점 카드 사업부 형태로 해외 진출한다. 베트남-라오스-미얀마 등 동남아시장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첫 출전지는 베트남이다. 삼성카드 역시 베트남 법인 설립을 논의중이다.
하나카드는 지난해 11월 중국 및 동남아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베트남, 라오스 등 동남아 시장으로 매입 대행 업무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지난해 베트남 시장 진출에 실패한 롯데카드는 중국과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해외진출을 계획 중이다.
BC카드는 올 1월 인도네시아 법무부로부터 합작법인 미뜨라뜨란작시 인도네시아(MitraTransaksi Indonesia)의 설립을 공식 승인받았다.
현대카드는 계열사인 현대캐피탈이 진출해 있는 미국, 중국, 영국, 캐나다 등 10개국이 진출을 노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미국과 중국이 가장 유력하다.
▲ 자료: 각 사 및 금융결제원 ⓒ스카이데일리
업계·전문가들 “무분별한 장밋빛 전망 및 전문성 없는 신사업 진출 오히려 위험해” 우려감
한국의 신용카드 기술이나 운영 능력은 이미 최고 수준에 이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류 열풍으로 동남아에서 한국 제품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진 점 또한 긍정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카드사들이 공을 들이고 있는 신사업 진출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도 있다.
국내 카드사들이 해외진출에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약점으로 꼽힌다. 해외진출을 위해서는 비자를 포함한 마스터, 아멕스 등 글로벌 카드사와의 경쟁을 피할 수 없는데, 이 부분 역시 국내 카드사에게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카드사의 한 관계자는 “소위 수수료와 고리채 장사로 편안히 영업해 온데다 해외 진출 경험이 미천한 카드사들이 장밋빛 전망만 갖고 너도 나도 진출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며 “테스트 시장에 우선 진출해 예상치 못한 변수를 충분히 고려한 뒤 다양한 현지화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국내시장 사업다각화와 관련, 금융소비자 단체 관계자도 “카드사들이 본업 경쟁력을 강화하거나 서비스 제고를 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무차별적으로 ‘NO 본업’을 외치는 분위기다”며 “이는 사면초가 환경에 닥치고 있는 카드사들이 경쟁력 없이 영업을 해온 체질을 반증한다. 한마디로 생각은 있는지 묻고 싶을 정도로 경험도 없는 다른 비즈니스 정글에서 위험한 전쟁을 하려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카드업계 한 금융전문가 역시 카드사들의 다양한 신사업 진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신사업이라고 해도 기존 부대사업에 비해 특별한 것이 없고 수익성이 명확하게 보이는 사업도 없다”며 “오히려 전문성이 없어 부실하다고 평가를 받거나 관리가 안 돼 사건·사고가 발생할 경우 카드사의 이미지만 치명적으로 실추될 위험이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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