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팅술집이나 감성주점에서 테이블을 잡고 이성을 만나는 것을 ‘감주’라는 은어로 표현한다. 강남역 인근에는 여러 곳의 헌팅주점이 있다. 헌팅주점은 주말엔 한참 줄을 서서 들어가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스카이데일리
“헌팅 주점은 말 그대로 총성 없는 사냥터였고 본능이 지배하는 정글이었다”
지난해 신동아 2호에 실린 ‘性 해방구 헌팅술집’ 특집기사에 등장하는 문구다. 여자인 기자가 읽기에 더욱 불편한 대목도 많았다. 신동아측이 만난 어느 헌팅남은 “(헌팅시 여자를 볼 때)성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요새는 헌팅술집이나 감성주점에서 테이블을 잡고 이성을 만나는 것을 ‘감주’라는 은어로 표현한다. 원래 뜻인 ‘복고풍 감성주점’과 약간 다르다.
문득 궁금해졌다. 젊은이들이 감주에 나서는 이유. 감주는 그저 질펀한 성문화일 뿐인가?
▲ 네이버 카페 클럽매니아에는 감주(감성주점) 갈 사람을 구하는 글이 하루에도 수십 건 올라왔다가 바로바로 지워진다. [출처=클럽매니아 페이지]
기자는 먼저 온라인 클럽 ‘네이버 클럽매니아’에 접속했다. 밤문화를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회원수는 무려 36만 명에 즐겨찾기도 7만 회에 달한다.
문란하게 돌아가는 모임은 아니었다. “헌팅, 작업, 픽업 관련 글은 전부 제재한다”는 운영진의 공지도 있었다. 클럽과 감성·헌팅주점 스텝들의 매장 광고글은 종종 보였다. 그러나 대놓고 이성을 꼬시려 들거나 희롱하는 글은 없었다.
젊은이들은 여기서 ‘조각 짜기’를 시도한다. 조각이란 온라인에서 나이트, 클럽, 감성·헌팅주점에서 공동으로 테이블을 잡을 인원을 구한다는 뜻의 은어다. 보통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조각을 모은다. 기자도 감주하고 싶다는 여자 두 명을 구할 수 있었다.
밤 10시, 감주의 메카라고 불리는 강남역 10번 출구 지오다노 뒷골목. 기자는 첫 번째 ‘조각녀’를 애타게 기다렸다.
이윽고 검은 미니원피스를 맵시있게 차려입은 김은혜씨(23, 가명)가 기자에게 말을 걸었다. 꼼꼼이 바른 레드립에 고데기로 곱게 손질한 긴 머리가 돋보였다. 은혜씨는 메이크업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자타공인 감주 핫플레이스라 불리는 ‘썸ing’ 헌팅술집에 입성했다.
100석 넘는 테이블엔 남녀가 빼곡히 앉아있었다. 좁은 테이블이 죽 늘어선 풍경은 마치 닭장 같았다. 기자는 은혜씨와 자리로 들어가면서 남자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의외는 그 때였다. 부킹주점에 남녀가 부킹하는 테이블이 생각보다 적었다는 점. 남녀가 함께한 테이블은 백여 테이블 중 10%정도로 보였다. 남녀는 서로를 구경만 할뿐 적극적으로 다가서지 않았다. 부킹주점을 문란하게 묘사한 신동아 르포와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그날 우리 일행은 한 건도 부킹을 하지 못했다.
기자와 은혜씨는 소맥을 말아먹었다. 그때 은혜씨가 새초롬하게 말했다.
“언니, 우리 담배 약한 거 하나 사서 나눠 피워요.”
그렇게 우리는 가게 흡연실에 끽연을 시작했다. 은혜씨는 연기를 후-불더니 하소연을 시작했다. 그녀는 이제 갓 병장이 된 군인 남자친구를 1년 반이나 기다려왔다고 했다. 은혜씨가 보여준 스마트폰 화면엔 “병장 달고 자기가 좀 이상해졌다”며 미안하다는 메시지가 있었다. “실컷 놀고 떠난 사람 잊겠다”며 웃던 은혜씨는 참 예뻤다.
▲ 강남역 인근에 위치한 감성주점인 ‘토토가’는 오후 10시반 경부터 오전 2시 사이에는 스테이지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사진은 토토가 내부 전경 ⓒ스카이데일리
밤 11시쯤 기자에게 카카오톡 메시지가 하나 왔다. 하루 전 같은 거리를 사전취재했을 때 만난 헌팅남 이정훈(35, 가명)씨였다. 기자는 은혜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정훈씨를 카페에서 잠깐 만났다. 이씨는 “흑역사까지 전부 공개하겠다”며 웃었다.
정훈씨는 처음 봤을 때도 그랬지만 참 무난한 인상이었다. 옷도 깔끔하고 인상도 서글서글해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 정훈씨는 “헌팅만 300번쯤 해봤다”고 털어놨다. 왜 헌팅을 하냐는 질문에 “솔직히 그젯밤은 여자가 고파서 나왔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그에게 헌팅은 하룻밤 사랑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수년 전 정말 사랑하는 여자를 헌팅으로 만나 2년간 사귀기도 했다. 그 여자친구가 자기보다 지적인 남자에게 떠나자 정훈씨는 충격에 공부에 매진했다. 그 결과 회계사 자격을 땄다고 했다.
그는 사랑은 찾고 싶지만 그 과정이 너무나 고비용이라고 꼬집었다. 남자가 소개팅 한 번 하려면 주말 황금시간을 비우고 돈도 써야 한다. 상대 구하기도 쉽지 않다. “비용은 큰 데 비해 맘에 드는 상대를 만나긴 별따기”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에게 더 큰 환멸을 안겼던 것은 결혼정보회사였다. 결혼적령기인 그는 ㄷ정보회사에 가입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전문직 할인’을 받아 120만원에 여성 5명을 소개받았다. 불행히도 맘에 드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일단 사진부터 실물과 너무 달랐다”고 토로했다.
돌고돌아 정훈씨는 다시 길거리 헌팅에 나섰다고 했다. 헌팅으로 여자를 만나는데 대해 “내가 진심이어도 여자가 날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며 씁쓸해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 다수의 감성주점이 곳곳에 위치한 강남역 인근 거리에서는 여성을 헌팅하려는 남자들과 섹시한 복장을 차려 입은 여성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사진은 강남역 일대 전경 ⓒ스카이데일리
정훈씨와 헤어지니 시간은 11시 반. 두 번째 조각녀가 강남역 지오다노 앞에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 임지연(25, 가명)씨를 처음 본 인상은 ‘청순하다’였다. 지연씨는 넉넉한 블라우스에 스키니진을 입고 하얀 운동화를 신었다. 앞머리 없는 생머리가 허리까지 왔다. 직업이 조향사라는 그녀는 담배연기가 너무 진해지면 힘들어했다.
지연씨는 어떤 마음으로 감주에 나왔을까.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지연씨는 “놀려는 목적도 있지만 동성친구를 사귀러 나왔다”고 했다. 지연씨는 카페 탐방, 산책 등 ‘낮 문화’도, 감주나 클럽 같은 ‘밤 문화’도 두루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나 지연씨 주변엔 밤낮 문화를 다같이 즐길 친구가 없다고 했다. 그녀는 “잘 맞는 동성친구를 사귀려고 여자끼리 커피 마시자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고 밝혔다.
기자가 본 지연씨는 그다지 남자를 밝히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잘생긴 남자가 지연씨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배시시 웃기만 했다. 번호를 따지 못한 남자는 멋쩍게 사라졌다. 오전 2시 반쯤 지연씨는 “친구가 인근에서 속상해하며 소주 한 잔 하자 한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 한 감성주점의 내부에서는 조용한 화장실 앞에 모여 헌팅 ‘작전회의’를 하는 남성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스카이데일리
새벽 1시 반 경. 감주 거리는 잔뜩 차려입은 여자들과 그녀들을 노리는 헌팅남들이 많았다. 기자와 일행은 썸ing에서 200여m 떨어진 일렉뮤직 클럽 ‘매스’에 도착했다. 은혜씨가 클럽매니아를 통해 스태프 연락처를 하나 알아뒀다고 했다.
그녀 덕에 우리 셋은 무료로 입장해 한 사람당 1만5000원을 아낄 수 있었다.연령층은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까지 다양했다. 음악이 세련된 데다 디제잉도 훌륭했다. 우리 셋은 디제이부스 앞에서 방방 뛰며 스트레스를 털어버렸다.
그 때 기자에게 부비부비를 시도하던 한 남자. 볼캡을 쓰고 티에 청바지를 입은 전형적인 대학생이었다. 부비부비남 박현호(23, 가명)씨와 기자는 클럽 밖에서 대화를 나눴다. 여자를 만난다면 소개팅과 감성주점, 헌팅주점 중 무엇을 택하겠냐는 질문에 현호씨는 망설임 없이 후자를 골랐다. “원래 말주변이 없을뿐더러 소개팅은 너무 절차가 복잡하다”는 이유다.
어느덧 클럽 앞에 싸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느 건물 처마 밑에 앉아 더 진솔한 얘기를 나눴다. 현호씨는 어렸을 때부터 외로웠다고 했다. 그 이유에 대해 “어릴 적부터 가족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외로움을 치부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독 밤에 나도는 사람들이 외로움이 많은 거 같아요, 누나” 빗속 클럽 앞에 줄 선 사람들을 보며 그가 읊조린 말이다.
감주에서 클럽으로 그녀들과 함께하는동안 경영학에서 말하는 ‘체리피킹(Cherry Picking)’ 현상이 떠올랐다. 이 아가씨들은 돈은 저렴한 감주·헌팅술집에서 쓰고, 분위기는 클럽에서 공짜로 즐겼다. 감주·헌팅술집은 싼 대신 분위기가 덜 멋지고, 클럽은 분위기는 좋아도 비싸기 때문이다. (강남·신사권 클럽에서 테이블 주대는 최소 40만원에서 200만원 가량이다.) 클럽의 마케팅 수단인 무료입장을 역으로 이용해 실속만 챙겨간 셈이다.
남자들도 똑똑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요새 젊은이들이 누군가. 옷은 SPA브랜드에서, 술은 스몰비어에서, 후식은 1500원짜리 프랜차이즈 주스를 마시는 세대 아닌가. 그렇게 ‘가성비’를 중시하는 이 시대 남자들이 감주를 택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3시 40분. 신나게 놀던 은혜씨가 집에 가겠다고 했다. 그 높은 하이힐을 신고도 그 정도 논 게 용했다. 힘들어보였지만 한편으론 후련해 보였다. 은혜씨는 택시를 잡더니 ‘카카오택시’ 어플리케이션으로 자기가 탄 택시정보도 알려줬다. 끝까지 숙녀다운 품위가 돋보였다.
기자도 집 쪽으로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20대 초반, 어떤 심정으로 잠도 못 자고 자취방을 박차고 나갔던가. 까닭없이 사람이 그리웠다. 그건 단순 성욕으로 보기엔 너무나 복잡미묘하고 아팠다.
이번 취재를 도와줬던 얼굴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그러자 새벽 귀갓길이 그다지 허허롭지 않았다. 그 순간 만큼은 기자가 아니라 날 닮은 그들을 꼭 안아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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