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수백만 농민들을 대표하는 농협은 중앙회를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가 확고히 구축돼 있다. 농협은 중앙회가 금융 사업을 책임지는 농협금융지주와 경제 사업을 책임지는 농협경제지주를 지배하는 가운데 이들 두 지주회사가 나머지 계열사를 순차적으로 지배하는 수직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다. 사실상 농협중앙회장이 농협 전반에 걸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이 같은 지배구조는 지난 2012년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하는 ‘신경분리정책’을 통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지주 간의 관계가 수직관계에서 수평관계로 변하는 중이라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최근 8년 동안 ‘농협의 수장’으로 권한을 행사해 온 최원병 전 회장의 임기 종료 후 신임 김병원 회장이 취임하는 과정에서 농협중앙회장 지배력에 공백이 발생했는데, 그 사이 김용환 금융지주회장이 농협금융지주에 대한 지배력을 공고히 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김병원 회장은 취임 이후 본격적인 개혁을 시행하기도 전에 ‘불법선거 논란’에 휩싸이는 등 활동 영역에 제약을 받아 이 같은 주장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 농협 안팎에서는 김병원 회장의 농협중앙회 내부 지배력도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카이데일리가 ‘창간 5주년 특집Ⅲ-5대 금융기업 지배구조’ 세 번째로 최근의 농협중앙회 내부 움직임과 농협중앙회, 농협금융지주 사이의 관계를 취재했다.
|
▲ 올 1월 8년만에 새로운 농협중앙회장 당선이 결정됐다. ‘최초 호남출신 중앙회장’ 타이틀을 쥔 신임 김병원 회장은 농협경제지주 해체를 비롯한 전방위적 개혁을 예고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불법선거’ 논란과 곳곳의 요직에 포진한 ‘직전 회장의 사람들’로 인해 중앙회 지배력이 미약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개혁행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사진은 농협금융지주 ⓒ스카이데일리
최근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의 행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최초 호남출신 중앙회장’ 타이틀을 달고 ‘김병원표 개혁’을 예고한 김병원 체제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6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김 회장은 지난 1월 이른바 ‘호남의 기적’을 이루며 당당히 농협중앙회장에 당선되고 취임후부터는 개혁 드라이브 깃발을 들어올려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농협중앙회장은 자산 규모만 300조원(단위농협 포함)이 넘는 농협 권력의 최정점으로 평가되는 자리다. 일각에서는 농협회장을 향해 ‘농민들의 왕’이라는 호칭을 쓰기까지 할 정도다.
그러나 영광도 잠시, 김 회장은 취임 후 줄곧 구설수로 곤욕을 치렀다. 취임 초 ‘불법선거’ 논란에 휩싸이는가 하면 내부 지배력이 미약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특히 최근에는 최원병 전 회장의 측근들이 여전히 농협 곳곳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김병원 체제 구축에 사실상 실패한 것과 다름없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호남출신 첫 농협수장 김병원 회장, 취임 초부터 ‘불법 선거’ 논란에 활동 주춤
금융권 및 농협 등에 따르면 농협중앙회는 지난 6월 기준 전국 1132개 농·축협이 가입한 연합조직이다. 조합원수만 230만명에 달한다. 그 자산 규모는 300조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협중앙회장은 계열사 31곳 8만여 명의 임직원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또 직접 지배력 밖에 있는 각 조합들에게도 일정 수준 이상의 영향력을 과시한다. 291명의 조합장 대의원들이 농협중앙회장에게 줄을 서는 현상이 벌어질 정도다. 중앙회에서 각 조합에 무이자로 지원할 수 있는 자금이 8조원 규모에 달하기 때문이다.
지난 8년 동안 농협중앙회의 주인은 최원병 전 회장이었다. 최 전 회장은 지난 2007년 12월 21대 농협중앙회장으로 취임한 후, 2011년 재선에 성공해 22대 회장까지 역임했다. 8년간 최 전회장이 발휘했던 강력한 영향력 때문에 23대 중앙회장도 최 전회장의 측근인 이성희 전 중앙회 감사위원장이 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경쟁자인 김병원 회장이 23대 농협중앙회장 자리를 차지했다. 김 회장은 지난 1월 12일 2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이성희 후보를 물리쳤다. 1978년 농협에 입사해 나주 남평농협에서 3선 조합장을 지낸 김 회장은 선거 승리로 최초의 ‘호남출신 농협중앙회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금융업계 전문가들은 김 회장이 첫 호남출신 중앙회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로 이성희 후보 및 최 전 회장의 지지지역인 경북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과의 연대를 꼽았다. 특히 1차 투표에서 3위를 기록하며 탈락했던 최덕규 전 후보(합천·가야 조합장)의 경남표를 가져온 것이 승리의 주요인이 됐다는 분석을 내놨다.
당선 이후 김 회장은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던 ‘농협체제개편’, ‘회장 선거 직선제 전환’ 등을 실현시키기 위한 전 방위적 개혁을 예고했다. 특히 김 회장은 경제지주 때문에 발생하는 단위 농협 간 불필요한 업무경합을 없애고, 수익성 개선을 위해 경제지주해체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를 두고 당시 농협 안팎에서는 “직전 회장인 최원병 회장이 직접 주도한 신경분리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 다는 의미다”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김병원식 개혁’은 시작도 전에 위기를 맞았다. 당선 후 취임도 하기 전에 ‘불법선거’논란이 불거져 나왔기 때문이다. 1차 투표 결과 3위로 탈락했던 최덕규 전 후보가 김 회장과 연대를 결성한 후 선거운동 제한규정에 해당하는 지지유도 행위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김 회장에게도 불똥이 튄 것이다.
최덕규 전 후보와 그 측근들은 대포폰을 이용해 투표자인 대의원들에게 김 회장에 대한 지지유도 문자를 보낸 혐의를 받았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취임 이후 직위에 대한 거래는 없었으며, 자발적인 도움을 받은 것이다”고 적극 해명했다. 김 회장은 지난 9월 20일 3차 공판을 마친 상태다.
‘최원병 사람’에 김용환 농협금융 회장 등 측근·동향·동문 곳곳 ‘지배력 여전’ 시선
금융권 일각에서는 김 회장의 농협중앙회 장악력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여론이 많다. 시작과 동시에 암초를 만나 개혁동력이 흔들린 ‘김병원호’의 ‘최원병 지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농협 등에 따르면 현재 농협 내부에는 최 전 회장의 측근들이 자리 잡고 있다. 통상적으로 중앙회장이 교체될 시기에는 조직개편 편의를 위해 주요요직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 관례지만 최 전 회장은 임기 말인 지난 2015년 농협중앙회 부회장과 상호금융 대표이사 등 중추적 위치의 인물들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최 전 회장은 부회장 자리에 측근으로 알려진 김정식 전 상호금융대표이사를 앉혔다. 그리고 또다른 측근 이상욱 농협경제 대표이사는 그 자리를 유지했다. 김 부회장은 조합감사위원회 사무처장으로 근무할 당시 지역 조합장들을 대상으로 최 전 회장의 재선을 위한 활동을 펼친 바 있다. 이 대표는 농협중앙회 홍보실장으로 최 전 회장과 함께 일했다. 지난 2013년 최 전 회장의 재선 이후 농업경제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업계 안팎에서는 지난 6월과 7월에 이뤄진 채원봉 조합감사위원장과 홍병천 감사위원장 선출을 두고도 “최 전 회장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채 조합감사위원장은 대구출신으로 2013년까지 농협경북지역본부장을 역임한 경력을, 홍 감사위원장은 지난 2010년 한나라당으로 홍천군수에 출마했던 경력을 각각 갖고 있다. 최 전 회장은 경주 출신으로 경북지역이 주 지지기반이며 한나라당 소속으로 경상북도 의원을 역임했었다.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 역시 최 전 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두 사람 모두 MB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이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과거 MB정부 당시 수출입은행장을 역임했다. 최 전 회장과 이명박 전 대통령은 포항동지상고(현·동지고등학교) 선후배 관계로 MB정부 당시 각종 특혜 의혹에 휩싸였었다.
김용환 회장은 특히 김병원 회장이 취임하기 직전 농협중앙회의 영향력이 약해진 사이 측근들을 요직에 배치해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구축했다는 시선도 받고 있다. 김용환 회장은 농협은행장 자리에 금융회장 후보자 시절부터 함께 금융지주의 청사진을 논의했던 이경섭 금융지주 부사장을 앉혔다.
또 공석이 된 금융지주 부사장 자리는 오병관 재무관리 담당 상무로 채웠다. 오 부사장은 대전 출신으로 충남 보령 출신인 김용환 회장과 같은 충남권 동향이다. 오 부사장이 있었던 재무관리 담당 상무자리에는 허원웅 기획조정부장이 선임됐다. 허 상무는 김용환 회장과 같은 성균관대 출신이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취임초기 난항을 겪고 있는 김병원 농협중앙회장과 친정체제를 확립한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 사이의 관계 설정에 금융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신경분리를 통해 농협금융지주가 독립성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농협중앙회가 최대주주로 존재하는 만큼 농협금융이 그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과거 임종룡 전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중앙회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하는 실적을 올렸다. 반대로 신동규 전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농협중앙회에 모든 권한이 집중돼 있다. 농협 내 금융회장의 지위는 300위권 밖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사퇴하기도 했다. 이는 농협중앙회장과 농협금융지주회장, 두 사람의 복잡한 역학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금융권에 정통한 한 고위관계자는 “빅배스(big bath, 경영진 교체시기에 앞서 부실자산을 한 회계연도에 모두 반영함으로써 잠재부실이나 이익규모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회계기법) 같은 문제들이 당면해 있는 상황에서 농협금융지주회장과 신임 중앙회장의 호흡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김병원 회장의 개혁에 김용환 회장이 얼마나 따라줄지 여부에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별 연대 통해 당선해 측근·호남권 출신 기용 쉽지 않아 ‘개혁도 난관 예상’
최근 농협 안팎에서는 김병원 회장의 경제지주 조직개편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금융권 등에 따르면 김 회장이 취임 전 부터 ‘경제지주 폐지’를 주장했지만 신경분리 이후 농협경제지주 단독으로 주도하는 각종 사업들이 이미 상당수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농협법 개정이 복잡하다는 점, 신경분리 과정에서의 정부 공적자금이 투입됐다는 점 등도 걸림돌이 되는 요소로 거론되고 있다.
지금 당장 김 회장의 경제지주 계열사 대표들에 대한 인사를 실시하더라도 지배력을 강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농협중앙회장 선거과정에서 경북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과 연대를 이뤄 승리를 거둔 김 회장이지만 지역별·출신별 균등한 인사를 요구하는 여론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즉, 김 회장의 임의대로 측근·호남권 출신으로만 채울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실제로 김 회장이 당선된 이후 경제지주 자회사 16곳 중 11곳의 대표가 교체 됐지만 대부분이 내부 승진 방식으로 이뤄졌다. 신임대표들의 출신 지역도 충청, 경남, 경북 등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연대를 통해서 당선됐기 때문에 지금 당장 김병원 회장이 측근들을 요직에 앉히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며 “차차 시간을 두고 채워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