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KBS ‘우리사는세상’이란 시청자 고발프로그램에 한 남성이 나와 자신의 사연을 하소연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토지가 있는데, 지구단위계획으로 인해 ‘병원용도’로만 활용할 수 있어 무려 16년간 마음대로 땅을 팔지도 건물을 짓지도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처럼 ‘공익’과 ‘사익’이 충돌하는 일은 빈번하다. 두 이익 간 경중을 따질만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다. 최근 서울시 곳곳에서도 이 같은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서울시에서 야심차게 추진하는 역사도심 재생사업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주민들은 원치 않은 지구단위계획으로 재산상 손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서울시는 더 나은 도시환경이라는 공익을 앞세워 양보하지 않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서울 중구 필동에서도 최근 이 같은 갈등국면이 포착됐다. 스카이데일리가 지구단위계획을 둘러싼 필동의 분위기를 현장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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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남산자락의 중구 필동지역이 최근 지구단위계획으로 서울시 측과 갈등을 빚고 있다. 서울시는 역사도심 재생업의 일환으로 필동을 비롯한 도심지역들을 지구단위계획범위에 포함시켰다. 사진은 ‘필동 주민 다 죽이는 지구단위계획 박살내자’ 등의 강력한 반대구호가 적힌 대형 현수막이 여기저기 걸려 있는 모습 ⓒ스카이데일리
조용했던 서울 남산자락의 중구 필동이 시끄럽다. 지난해 말 이곳이 지구단위계획에 포함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부터다.
서울시는 역사도심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필동구역을 비롯해 북촌·대학로·세종대로·세운상가 주변지역을 포함시켰다. 지난해 9월 혜화·명륜동은 역사도심계획 후속의 첫 번째로 지구단위계획이 수립됐다.
지구단위계획은 도시계획을 수립하는 지역 가운데 일부지역의 토지이용을 보다 합리화하고 그 기능을 증진시키며 미관의 개선 및 양호한 환경을 확보하는 등 당해 지역을 체계적·계획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수립하는 도시관리계획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이다.
하지만 한 번 묶이게 되면 해당 용도에 따라 건축물 설립이나 토지이용 등 재산권을 행사하는 데 제한이 생긴다는 점에서 토지소유주들은 반기지 않는 정책이다. 지난해 1월부터 오는 10월까지 필동 지구단위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용역이 한창이다. 규모는 42만㎡로 약 1만27050평이다.
이곳 주민들과 사업체 운영주들은 벌써부터 강경하게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수가 원치 않는 사업을 서울시가 주민들과의 제대로 된 소통 없이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서울시 “더 좋은 동네 만들기 위함”…필동 비대위 “대다수 주민 원치 않는다”
필동이 지구단위계획에 묶인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이곳 주민들과 필동에서 인쇄업체를 운영하는 이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비대위는 필동이 주거지역이라기보다 사업체 등이 다수임을 강조하며 “서울시의 계획 목적과 맞지 않다”고 강경한 반대 목소리를 내고 나섰다.
또한 생존권과도 직결된 문제라고 강조했다. 지구단위계획으로 묶이면 사업체들이 들어있는 건축물은 허용되는 용도로만 사용할 수밖에 없어 용도변경이 쉽지 않아 세를 놓기도 어렵고 세입자 입장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사업을 맘껏 할 수 없어 임대 또한 어렵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이들은 사업장 폐쇄도 우려된다고 입을 모았다. 이 경우 이곳에서 종사하는 직원들의 일자리마저 위태로운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필동 관내에는 1000여개의 사업체가 있으며 근무자만 8000여명에 달한다.
이성권 비대위원장은 “처음에 서울시 측이 전통문화주거단지로 변경한다는 설명에 주민들이 반발하자 이제 와 그런적 없다고 하더니 이제는 역사도심재생사업을 추진한다고 하며 말을 바꾸고 있다”면서 “사실 필동에는 단 한 개의 문화재도 없을뿐더러 인근의 남산골 한옥마을 외에는 한옥이 단 한 채도 없는 곳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협의를 위해 TF팀(서울시·용역업체·주민·비대위·중구청)을 만들겠다고 해놓고선 우리가 뽑은 주민대표를 거부했다”며 “서울시가 원하는 주민대표를 앉혀놓자고 요구해 협상조차 개시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비대위 정승재 총무는 “차라리 이곳을 관광지처럼 개발하고 싶으면 기존 주민·상인 등의 이주대책을 마련해주고 한옥마을주거단지든 뭐든 해야 할 것 아니겠느냐”며 “재개발은 비용이 많이 드니 규제를 통해 서울시장이 치적을 쌓기 위한 탁상행정을 밀어 붙이고 있다”고 분개했다.

▲ 필동이 지구단위계획으로 묶인다는 소식에 주민들과 소규모 영세 사업체를 운영하는 업자들은 이에 강력히 대응하기 위한 일환으로 비상대책위를 만들었다. 이들은 서울시 측이 소통없이 지구단위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며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30년째 인쇄업을 운영하고 있는 김기중 씨는 “아직 계획이 수립되기도 전이지만 구청에서는 벌써부터 인쇄업을 하겠다고 하면 건축물 허가를 안내주고 있는 상황이다”면서 “그래놓고선 병원건물은 허가를 내주니 결국 지구단위계획을 미리 염두에 두고 인쇄업종에만 제재를 가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건물을 짓기 위해 대출을 껴서 땅을 산 인쇄업자 권 모씨와 허 모씨는 인쇄업을 하겠다고 하니 건물허가를 내주지 않아 해당 부지를 활용하지 못한 채 대출이자만 근근히 갚는 상황을 맞았다.
인근 S부동산 관계자 역시 “도로를 좁히고 보행자도로를 넓히는 사업이 진행된 뒤 이미 업체들은 타격을 받고 있다”며 “거주민보다는 근린생활시설이 더 많기 때문에 지구단위계획에 묶이면 집값도 문제지만 지역경제에도 타격이 있을 것이다”고 우려감을 강하게 피력했다.
필동에서 10년간 거주하고 있다는 한 주민은 “보도가 넓어지면서 오토바이를 타고 오가던 근로자들이 단속에 걸리는 모습을 숱하게 본다”면서 “예전 같으면 떼지 않아도 됐을 딱지를 떼는 것 아니겠느냐”며 생계형 노동자들의 처지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 그는 “주민들이 해달라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예산을 들여가며 추진하겠다는 것인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비대위 깊어지는 오해의 골…“반대집회 관철 안 되면 법적 소송 불사”
▲ 필동은 주거민들보다 인쇄업종과 관련된 사업체들이 많다는 것이 필동지구단위계획을 반대하는 비대위 측의 설명이다. 이들은 지구단위계획에 포함되면 향후 어떤 규제가 가해질 지 모르기 때문에 심각한 재산권침해가 예상되며, 이는 곧 수천명의 사업자 및 직원들의 생존권 문제와 직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이 같은 비대위 측의 주장에 대해 서울시는 “오해다”는 입장을 보였다. 지구단위계획은 도시를 더 좋게 만들기 위한 사업이지 지구단위계획으로 지정된다고 해서 인쇄업을 운영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TF팀의 경우 주민대표로 선출된 분이 인쇄업을 운영하시는 분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을 듣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서울시에서는 비대위 측에서 주장하는 한옥마을주거단지가 조성된다고 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그는 “필동은 남산골 한옥마을과 노인정터, 옛길·옛물길 등 다양한 역사문화자원이 분포하고 있으며 종묘에서 남산까지 이어지는 남북 보행축의 중요한 결절점이다”며 “역사적가치와 장소성을 회복하고 안전한 보행환경 개선 지역의 가치와 활력을 증진하기 위해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며 지역 코디네이터를 활용해 주민들과 개별 면담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비대위 측의 생각은 달랐다. 필동 일대를 관광지화 하기 위해 지구단위계획에 포함시킨다는 것이었다. 또한 지구단위계획의 경우 장기적으로 심각하게 재산권을 침해함에도 마땅한 보상대책 조차 전무한 실정이라 꼬집었다.
이성권 비대위원장은 “필동의 재조업소 및 연관 산업은 타 지역으로 이전이 불가피한데 1만여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야기하고 있다”며 “결국 북촌처럼 이곳을 관광지화 하겠다는 것이 서울시의 계획이겠지만 이곳은 관광지가 아닌 인쇄촌이나 다름없는 곳이라 전혀 사업의 성격과 맞지 않는 전시성 행정이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들은 5년 전 중구청과도 한 번 갈등을 빚은 바 있다. 그 때 역시 구청에서 필동을 지구단위계획을 통해 전통문화 주거지역 사업을 추진한다고 했다가 주민들의 반대로 결국 무산된 바 있다. 당시에도 비대위가 구성됐으며 중구청을 찾아 시위하다 몸싸움이 일어날 만큼 격렬한 반대가 있었다.
비대위 관계자는 “생계가 걸려있기 때문에 처절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은 대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준비를 하고 있지 않지만 향후 반대집회를 연다든지 정 안될 경우에는 소송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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