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영 자유한국당 의원(사진)은 ‘세월호 참사’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서울고등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당시 가정 성폭력 사건으로 인구에 회자된 ‘김보은 사건’의 담당 판사이기도 했다. 비교적 무거운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이 의원이지만 가치관이나 신념은 자유로움 속에 진중함이 묻어났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대담=조문식 부장|정리=서예진 기자] 스카이데일리는 국회의원회관에서 이주영(65) 자유한국당 의원을 만났다. 이 의원은 경남 마산(현재 통합 창원시) 출신으로 서울고법 판사, 부산지법 부장판사 등을 지낸 인물이다. 제16대부터 현재까지 내리 당선된 5선 국회의원이다.
우리 국민 중에는 이 의원을 ‘세월호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그는 세월호 참사 직후 200여일 동안 수염도 깎지 않고 현장을 지켜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전남 진도 팽목항에 머물며 가장 오랫동안 유가족들과 함께한 모습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울림을 줬다.
앞서 이 의원은 서울고법 판사 시절 ‘김보은 사건’을 담당하며 한 차례 얼굴을 알린 바 있다. 당시 사건은 의붓아버지에게 9살부터 성폭행을 당한 의붓딸이 그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시 남자친구와 공모해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사실로 대중들에게 충격을 줬다. 대중들의 여론은 김 양의 정당방위 쪽으로 무게가 쏠렸다.
1심에서 김보은 씨는 징역 5년을 받았다. 하지만 이 의원은 자신이 판결을 맡았던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당시 판결에 대해 이 의원은 “해당 사건을 계기로 가정폭력방지특별법과 성폭력방지특별법이 논의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회상했다.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해외여행…큰 꿈 이루고자 정치입문 결심
비교적 무거운 주제를 지닌 굵직한 사건의 중심에 서 있던 이 의원이지만 인터뷰 내내 그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많이 던졌다. 대표적인 메시지는 ‘여행을 많이 다니라’는 조언이었다. 이 의원은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 중 하나로 ‘세계를 간다’ 시리즈를 꼽았다.
이 책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행안내서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의원은 다양한 나라의 역사, 지리, 자연환경, 풍물, 민족 정서, 음식 등의 정보가 담긴 책 덕분에 세계를 좀 더 폭넓게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해외에 나가기 전엔 ‘우리 민족’, ‘우리 국가’ 등만 머리에 두고 있다가 넓은 세계로 나가 더 통시적으로 변화무쌍한 역사를 몸소 체험하며 시야가 많이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여행을 많이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이주영 의원은 판사로 재직하던 1990년 1년간 영국 런던대학 킹스칼리지에 교육파견을 나갔다. 당시 이 의원은 시간 날 때 마다 틈틈이 가족들을 데리고 여행을 다녔다. 그 후 유럽 전역과 미국, 일본 등지를 여행하며 견문을 넓혔다. 그는 여행을 거치며 주어진 사건 해결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창조적이고 활동적으로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정치에 입문할 결심을 했다고 한다. 사진은 이 의원(사진 왼쪽)의 인터뷰 진행 모습 ⓒ스카이데일리
이 의원도 예전에 해외여행을 즐겼다. 그가 처음 해외여행의 즐거움을 느꼈던 시기는 판사로 재직 중이던 지난 1990년이다. 당시 이 의원은 영국 런던대학 킹스칼리지에 교육파견을 나가 있었다. 이 의원은 “처음 해외에 가면서 견문을 넓히는 게 자산이 되겠다는 생각에 틈 날 때 마다 시간을 내서 여행다니려고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영국에서 몰고 다니던 중고차를 배에 싣고 도버해협을 건너 운전하며 서유럽을 누볐다. 이때 영국차를 몰던 탓에 서유럽과 자동차 핸들 방향이 달라 애를 먹었던 기억도 갖고 있다. 가족과 함께한 당시 여행을 회상하며 이 의원은 “서유럽은 직접 운전해 다니고, 동유럽은 기차여행을 했다”며 잠시나마 추억에 젖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과 일본까지 돌아본 이 의원은 판사라는 직업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더 큰 꿈을 꿔야겠다고 느꼈다. 이 의원은 “여행을 다니면서 그동안 판사로 지내며 너무 우물 안 개구리 모양으로 주어진 사건을 해결하는 것에 안주하는 것 아닌지, 넓은 세계를 바라보며 우리 조국 한국의 위상이 어때야 할지, 그리고 좀 더 창조적이고 활동적으로 내가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정치에 입문할 결심을 했다”고 밝혔다.
해수부장관 임명 한 달여 만에 세월호 참사 발생…“죄인 된 심정 가지고 있어”
최근 들어 세월호 수색작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수색의 성과도 상당한 편이다. 휴대전화가 발견되고, 이를 복구했다는 소식도 그 중 하나다. 해당 전화에서는 ‘죽으면 안 된다’는 문자가 읽지 못한 채로 남아 있어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있다.
이 의원은 세월호 참사 당시 해수부 장관을 지냈다. 유독 구설이 많았던 윤진숙 당시 해수부 장관이 물러나고 그 후임으로 전격 발탁된 이 의원은 장관 자리에 앉은 지 한 달여 만에 세월호 참사를 마주하게 됐다.
그는 “원래 그런 큰 사고가 나면 장관이 물러나는 것이 기존의 관례였다”며 “그래서 당장 물러나겠다고 사의 표명을 했지만, 일단 현장에서 사고대책본부를 구성해 본부장을 맡아 수습하라는 임무 때문에 바로 물러나지 못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이 의원은 당시 사고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유가족들과의 소통에 힘썼다. 그는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이걸 피하거나 도망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자세로 임했다”며 “유가족들이 거센 항의를 하러 온다 치면 해수부 실국장 참모들은 ‘좀 피해 계시라, 제가 나가서 대화하겠다’고 말했지만 장관이 책임자니까 한밤중이고 새벽이고 다 나가서 이야기를 듣고 설득했다”고 회고했다.
이 의원은 “세월호에 대해서는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죄인 된 심정으로 보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다”며 “세월호가 인양돼 미수습자 9명을 찾고 있는데, 조속히 9명 모두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수습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고 밝혔다.
대학원 재학 시절 만난 지금의 아내, 등산으로 애정 키워 마침내 결혼 골인
▲ 이주영 의원은 ‘세월호 참사’ 당시 해수부 장관에 임명된 지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나 막중함 책임감을 가지고 사태 수습에 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의원은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이걸 피하거나 도망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자세로 임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스카이데일리
이 의원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 법대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법관이 되기로 결심했지만 그렇다고 평생 한 직업을 갖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정치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학창시절 역사에 족적을 남긴 위대한 사람들의 전기를 많이 읽었다”며 “꼭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뭔가 인생에 의미를 남길 수 있는 그런 일들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정치인이 된 계기를 설명하며 과거를 회상하던 이 의원은 자신의 연애담도 들려줬다. 이 의원에 따르면 그는 지금의 아내를 친구의 소개로 만났다. 197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 의원은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시절 3선 개헌 반대 투쟁에 참여했다. 그 후로도 군사독재 저항 활동에 동참하다 보니 연애할 시간은 전혀 없었다.
지금의 아내는 대학원 시절 만났다. 그는 알고 지낸 지 3개월 가량 되던 시점에 고백을 결심했다. 친구들과 함께 설악산으로 등산을 갔던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 의원은 “함께 등산을 가면서 그때 아주 친밀해졌다”며 “주위 친구들도 ‘아 좋은 커플이네’하고 호응을 해줬고, 결국 연인이 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 의원은 등산을 좋아해 판사 시절에는 매 주말마다 등산을 갔다. 사법연수원 동기생 산악회에서 총무를 맡아 전국의 산을 누비고 다녔다. 예전 서울 중구 서소문동에 있었던 서울가정법원에서 근무할 때는 토요일 오전 근무만 끝나면 바로 시청 앞에서 버스를 타고 북한산에 갈 정도였다.
등산을 생활처럼 여겼던 이 의원이지만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제대로 즐기질 못했다. 시간이 없어서였다. 대신 이 의원은 새로운 방법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5선 의원인 이 의원의 건강 비결은 바로 ‘맨손체조’다. 그는 “젊었을 때는 등산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어 못 한다”며 “사실 이제 나이 먹고 시간도 없고 하다 보니 집에서 시간 날 때마다 맨손체조, 제자리 걷기 운동, 아령 등을 한다”고 말했다.
“젋은 사람들 Change(변화), Challenge(도전), Confidence(자신감) 등 3C정신 갖길 기대”
이 의원은 현재 국회 개헌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회 스카우트의원 연맹 회장직도 맡고 있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2023 세계잼버리’ 한국 유치를 위해 아프리카 주요 전략국가를 방문, 유치 홍보활동을 전개하고 귀국했다.
‘세계잼버리’란 전 세계 163개국 5만여명의 청소년이 참가하는 국제 야영대회다. 월드컵, 올림픽과 더불어 ‘빅 3 이벤트’로 꼽힌다. 오는 8월 개최지 결정을 앞두고 폴란드와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 의원의 최근 고민은 청년세대의 고충을 조금이라도 더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는 요즘 들어 빈번히 들리는 ‘3포세대’, ‘5포세대’ 등의 신조어에 대해 “젊은 세대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환경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3포세대’란 연애, 결혼, 출산 등 3가지를 포기한 세대를 의미한다. 여기에 대인관계, 내집마련 등까지 포기한 이들을 ‘5포세대’라 부른다.
이 의원은 “합계출산율이 1.2 수준으로 계속 이어지면 인구 절벽이 닥치면서 생산인구가 많이 줄어들고 경제력이 위축될 것이다”며 “젊은 세대들이 자포자기하는 일이 없이 비전을 세우고 그 설계에 맞게 자기가 목표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성들의 경우 결혼·출산·양육을 하면 경력 유지가 어려우니 그 문제도 풀어줘야 하고, 육아가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남편도 육아휴직 등을 통해 동참하도록 해야한다”며 “교육비 부담, 주거확보, 좋은 일자리 등에 대한 고민과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 기성 정치인들이 해야 하는 역할이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인터뷰 말미에 ‘3포 세대’로 불리는 젊은 사람들에게 한 가지 조언을 했다. 그는 “3C정신으로 살면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다”며 “여기서 ‘3C’는 Change(변화), Challenge(도전), Confidence(자신감) 등으로 이것은 그동안 나를 지탱해 온 정신이기도 하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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