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는 늘 새롭죠. 특히 기술은 끝이 없어요. 항상 배움의 연속이죠. 이게 바로 시계의 매력이에요”
국내 1호 시계수리 명장 장성원(65) 씨는 17살 때부터 시계를 수리해왔지만 지금도 배움의 역속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활용한 스마트워치가 나오는 요즘에도 배터리 없이 태엽으로만 움직이는 기계식 시계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어릴 적부터 기계와 시계에 관심이 많았던 장 씨는 제대로 된 스승 없이 일본 서적을 탐독하고 어깨너머로 공부해 시계수리 기술을 터득한 인물이다.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하고 지난 1997년에는 대한민국 시계수리 명장으로 인정받는 등 국내 시계수리 분야에서는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장 씨는 현재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자신의 이름을 딴 ‘장성원 시계’를 운영하고 있다. 못 고치는 시계가 없을 정도로 기술을 연마한 상태지만 지금도 여전히 초심을 지키며 배움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후배 양성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시계수리…인고의 시간 거치며 기술 습득
장 씨가 시계수리를 접한 계기는 사실 거의 우연에 가깝다. 그는 학창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여러 일을 전전하며 가장 노릇을 했다. 17살이 되던 해 우연히 아버지의 후배를 만나 중고시계 장사를 돕게 됐다. 제대로 된 급여도 받지 못할 정도로 열악했지만 장사를 도우면서 시계수리 기술을 익혀 나갔다.
“당시에는 시계수리 기술 학원이 몇 군데 있었는데 학원에 갈 만큼 경제력과 시간도 없었죠. 뭐라도 벌면서 배워야 했어요. 지인을 통해 학원에서 사용하는 교재나 일본·스위스 등의 시계 제조·수리 서적을 구해 공부했죠. 그것도 외국어를 모르니 그림을 보며 공부했어요. 일과 공부를 병행했지만 수입은 거의 없었죠. 식사 정도만 얻어먹으며 일했어요. 그래도 입 하나 덜어내는 것 자체가 집안 살림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꿋꿋하게 버텼죠”
배움에는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했다. 시계 생산·수리 공장에서 다른 작업자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술을 익혔다. 기본적인 시계 수리 등의 일은 종종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톱니바퀴 등의 부품 제작은 누구도 기술을 알려주려하지 않았다. 그저 눈으로 보고 익혀야 했다.
“시계 수리를 맡기기 위해 찾아간 공장에 가면 생산 공정을 모두 볼 수 있었어요. 작업자들이 각자 맡은 분야에서 자기 일을 묵묵히 하는 곳인데 단순한 수리 작업뿐 아니라 직접 시계 부품을 생산하는 공정을 시작부터 끝까지 보는 게 가능하죠. 하루 종일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기만 한 적도 부지기수죠.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었죠”
장 씨는 남대문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시계 수리 일을 하기 시작했다. 여러 수리공들이 함께 작업하는 공간에서 한 모퉁이 자리를 얻게 됐다. 그는 하루 종일 시계 부품을 들여다보고 복잡한 구조의 시계를 만나면 밤을 새워가며 분석에 매진했다. 이 같은 노력의 바탕에는 배운다는 즐거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시계는 늘 새로움의 도전이에요. 시계 브랜드나 제품마다 구조가 다르죠. 새로운 제품에는 또 다른 새 구조가 나오고 오래전 출시된 시계라도 처음 보는 제품이라면 새로 알아갈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워낙 고가의 시계가 많다 보니 구조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멋대로 뜯을 수는 없어요. 기회가 될 때 마다 뜯어서 분석하고, 그러면서 공부하는 거죠. 그 과정은 제게 크나 큰 행복이에요”
기술력 인정받으며 시련 극복…마침내 시계장인 반열 우뚝
장 씨는 오랜 기간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며 기술을 습득해 나갔다. 그 결과 지난 1997년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며 주변의 인정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시련도 있었다. 지난 1992년 당시 뉴코아백화점에 입점해 전국에 5개의 점포를 열며 성공가도를 달리는 듯했지만 1997년 백화점이 부도로 문을 닫은 이후 사업이 기울기 시작했다.
장 씨는 이런 시련에도 포기하지 않고 잘하는 일에 꾸준히 매진한 결과 장인 타이틀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는 2000년대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후배 양성에 나섰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는 동서울대학교 시계주얼리학과의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후배 양성에 힘을 쏟았다.
“최근 시계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모두가 명장이 될 수는 없겠지만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관련 산업은 분명 발전하게 돼 있죠. 많은 청년들이 공무원 등으로 안정적인 직장을 택하는 현실이 아쉽기도 해죠. 항상 도전하는 정신을 갖고 사회에 뛰어들어 줬으면 좋겠어요”
장 씨는 시계 기술자가 유망 직종 중 하나라며 시계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세계 유명 시계 브랜드를 보유한 국가는 선진국이라는 점을 들며 시계 기술과 같은 고정밀 기계 기술이 발전해야 국가 경쟁력도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시계 기술은 재료인 금속부터 연마, 표면·열처리, 가공 등이 필요하죠. 이 기술들이 기계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죠. 시계를 만드는 나라는 많지 않아요. 미국, 스위스, 프랑스, 영국, 독일, 중국, 일본 등 몇 되지 않죠. 시계 기술은 각 회사에서도 비밀이지만 국가에서도 외부 유출을 꺼리죠. 시계를 만드는 나라는 국가에서 기술을 관리해요. 시계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기술들이 고정밀 기술이기 때문이죠. 시계 기술이 향상된다면 다른 산업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죠”
“과거 시계를 만들기만 하면 팔릴 때가 있었죠. 황금기였어요. 그때 우리나라도 기계식 시계가 움직이는 동력인 무브먼트를 만드는 데 투자를 했어야 하는데 아쉬워요. 그런 일은 국가의 지원이 수반되야 하죠.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지금이라도 정부가 시계 산업 육성에 나서야 해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저는 최일선에서 뛸 생각이에요. 제 기술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수해 주고 싶어요. 저만 기술을 갖고 있다는 게 아까워요”
[이성은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