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임현범 팀장, 이기욱·김민아·조성우 기자] 국내 기업들의 조직문화에 적신호가 켜졌다. 상명하복에 위주의 경직된 조직문화로 인한 부작용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조직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직원들이 하나 둘 떠나는 현상은 기업 발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대기업을 중심으로 조직문화 개선 작업에 한창이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는 신년 목표로 조직문화 개선을 공통적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기업 대다수는 후진적인 조직문화가 만연해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아직까지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분파 상사 눈치 보느라 업무는 뒷전…퇴근 후 협박문자도 비일비재
상대적으로 남성이 많은 업종인 석유화학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이진수(28·남·가명) 씨는 최근 군대식 상명하복 조직문화로 인해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 상사의 강압적인 태도는 업무시간에 이어 퇴근 이후로까지 이어진다는 게 이 씨의 주장이다.
이 씨에 따르면 퇴근 이후 상사의 개인적인 술자리에 불려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혹시나 상사의 전화를 받지 않으면 상사는 여러통의 문자를 보내는데 ‘죽을래’, ‘미쳤냐’ 등 협박성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심지어 회식할 때 상사의 차를 대신 운전해야 하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못할 때도 있다.
상명하복식 조직문화로 이직을 고민하는 이는 비단 이 씨뿐이 아니었다. 배승민(28·남·가명) 씨가 근무하는 기업은 업무 대부분이 상사에 맞춰져 있다.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 ‘안 된다’는 말은 입밖에 내서도 안되는 경직된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배 씨는 “회식할 때도 상사가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한다”며 “특히 상사가 술을 마시고 여자도우미들과 함께 노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면 그게 좋든 싫든 무조건 따라가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술을 마시기 싫어 한다고 해도 억지로 마시라고 강요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덧붙였다.
배 씨는 이러한 후진적인 조직문화 탓에 자신이 회사가 아닌 군대에 입대한 느낌마저 든다고 털어놨다. 아무리 불합리한 경우라도 상사의 말을 무조건 따라야 하다 보니 흡사 군대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회사를 다니다 보면 군대에 재입대했다는 느낌이 자주 든다”며 “상사는 부하 직원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고 부하 직원은 지시에 불평 한마디 없이 무조건 따르는 것은 사실상 영락없는 군대다”고 꼬집었다. 이어 “엄밀히 따지면 돈을 더 많이 주는 군대다”고 못을 박았다.
지난해 대기업 계열사의 마케팅업체에서 인턴사원으로 근무한 유은지(26·여·가명) 씨는 정규직 전환 기회가 있었는데도 스스로 회사를 나왔다. 취업난을 뚫고 대기업 계열사에 입사할 꿈의 기회를 걷어찬 이유는 경직된 조직문화 때문이었다.
유 씨는 기분파인 상사의 눈치를 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똑같은 결과를 내도 상사의 기분에 따라 칭찬을 받기도, 혼이 나기도 했다. 왜 혼나는지 이유도 모른 체 꾸중을 들었던 적도 비일비재 했다. 상사 눈치를 보다가 그날 보고해야 할 일을 마치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유 씨는 “팀장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팀의 그날 분위기가 결정됐다”며 “그 날 팀장 기분이 안 좋으면 모두 눈치를 보기 바빴는데 평소엔 그냥 가볍게 넘어 갈일도 기분이 안좋으면 엄청 크게 혼이 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팀의 막내였던 유 씨는 온갖 허드렛일도 도맡았다. 입사 초기에는 팀원들과 같이 점심을 먹었는데 단지 막내란 이유로 메뉴를 선정하고 주변 맛집을 검색하는 일까지 해야했다. 주어진 업무보다 맛집을 찾는데 허비하는 시간이 더 많았을 정도였다.
유 씨는 “한 번은 밥 생각이 나질 않아 ‘오늘은 밥 생각이 없어서 쉬고 싶다’고 말했다가 크게 혼이 난 적이 있다”며 “신입은 기분이 안 좋아도 상사들에게 티내지 말고 항상 싹싹하게 굴어야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점심을 먹으러 가면 테이블 물 따르고 숟가락·젓가락 놓고 부족한 반찬은 없는지 확인하는 등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차라리 굶고 싶을 때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유 씨는 이처럼 경직된 조직문화가 회사 발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처음에는 일을 열심히 하던 직원들도 상사의 기분에 따라 일의 방향이 바뀌고 무시 받는 일이 많아지다 보면 일 보다 적당히 윗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것에 몰두해 결국은 업무는 소홀히 할 수 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국내기업 조직건강도 세계 하위 수준…“CEO 인식 및 의지 중요”
국내 기업들의 전근대적인 조직문화는 업무 효율성 저하, 이직·퇴사 고민 등 각종 부작용을 낳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기업의 발전은 물론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선 조직문화 개선이 필수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채용정보 검색엔진 잡서치가 직장인 64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기업문화와 직장생활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문화가 업무능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답한 비율은 68.3%다. 기업문화가 이직이나 퇴사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친다고 답한 비중 역시 53.4%에 달했다.
일반 직원들이 평가한 국내 기업문화 평가수치도 글로벌 평균치를 한참 밑돌았다. 지난 2016년 3월 대한상공회의소와 맥킨지는 2015년 6월부터 9개월간 국내기업 100개사 임직원 4만9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기업의 조직건강도와 기업문화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국내기업 100곳 가운데 77곳이 조직건강도 진단에서 세계 하위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경영진과 일반직원 간에 조직을 바라보는 시각이 큰 차이를 보였다는 점이 주목됐다. CEO 및 임원 등이 포함된 경영진은 기업의 방향설정, 리더십, 조직문화, 책임소재, 혁신 등을 높게 평가했다. 종합점수는 71점이나 됐다. 반면 일반직원은 대부분의 항목에서 낮은 점수를 줘 종합점수는 53점에 머물렀다.
대한상의는 한국의 전근대적 기업문화의 원인을 찾기 위한 입체적 근인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 ▲비과학적 업무프로세스 ▲비합리적 평가보상시스템 ▲리더십역량 부족과 기업가치관의 공유부재 등이 원인으로 지적했다.
대한상의 측은 “기업문화 혁신을 위해서는 CEO의 인식과 의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며 “대한상의는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인 기업문화 개선을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해 노력할 것이다”고 말했다.
[김민아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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