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정부에 의한 개발주도형 정책의 집행으로 개인과 개인, 정부와 개인 사이에 다양한 갈등과 분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민선자치시대를 거치면서 분쟁 건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환경과 관련된 분쟁이 많았다. 분쟁은 대부분 당사자들의 합의를 통해 해결이 됐지만 합의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 간혹 법정공방으로 까지 치닫기도 했다. 그러나 변론주의를 기초로 하는 민사소송에서 주장, 입증은 당사자의 책임과 부담이기 때문에 많은 비용과 시간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가해기업이 가지고 있는 정보의 입수가 곤란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정부는 국민들이 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크고 작은 환경 분쟁을 복잡한 소송절차를 통하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도록 환경분쟁조정 제도를 만들었다. 전문성을 가진 행정기관이 사안을 신속히 해결해주는 제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환경분쟁조정 제도의 신뢰성에 의구심을 품는 목소리가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SK그룹 화학계열사인 SKC 측과 환경분쟁조정 중인 경기도 수원SK스카이뷰아파트 입주민들 또한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SKC 수원공장을 둘러싼 환경분쟁 실상과 이해당사자들의 반응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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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 화학계열사 SKC가 거대 자본을 앞세워 환경 피해를 호소하는 서민들의 입막음을 시도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SKC는 거대 로펌을 앞세워 소음·악취 피해로 환경피해 구제를 신청한 주민들 중 대표자를 콕 짚어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들은 거대 자본을 앞세운 대기업의 ‘재갈 물리기’나 다름없다며 원망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비판의 화살은 SKC수장인 이완재 사장을 향하는 분위기다.
2조6000억 매출 SKC, 공장 소음·악취 피해 주민 상대 ‘재갈 물리기’ ‘겁주기’ 논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위치한 수원SK스카이뷰 입주민들에 따르면 SKC 측은 지난 5일 법률대리인을 앞세워 수원SK스카이뷰 입주민 두 명에게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이란 채무자가 지급할 채무가 없음을 확인 받기 위해 제기하는 (민사)소송을 말한다. 쉽게 말해, 돈을 갚아야 할 사람이 채권자를 상대로 이미 돈을 갚았으니 빚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해달라는 소송을 말한다.
이는 앞서 입주민들이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재정신청을 한 것에 따른 SKC 측의 대응이었다. ‘환경분쟁조정위원회’는 환경부 산하기관으로 환경공해로 인한 시민들의 재산·정신적 피해를 신속하고 객관적으로 구제하기 위해 운영 중인 갈등 중재 행정기관이다. 환경분쟁 신청방법에는 알선신청, 조정신청, 재정신청이 있다. 재정(裁定)은 사실조사 후 재정위원회가 인과관계의 유무 및 피해액을 판단해 결정하는 재판에 준하는 절차다. 쉽게 말해,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적정한 금액을 산정해주는 과정을 말한다.
입주민들은 SKC의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이 일반적인 경우와 사뭇 다르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일반적으로 환경분쟁조정위원회 재정위원회의 결과가 도출된 뒤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거는 게 반해 SKC 측은 재정결정이 나기 직전에 소송을 걸었기 때문이다. 채무금액을 확인도 하기 전에 채무가 없음을 확인하는 소송부터 제기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게 입주민들의 주장이다.
게다가 SKC가 소송을 건 대상이 수원SK스카이뷰아파트 입주민 2100여명이 아닌 대표자 2인을 대상이라는 점은 논란을 더욱 부추기는 요소로 꼽히고 있다. SKC의 소송 대상은 제1대표자 김상수, 제2대표자 유상호 등에 국한돼 있다. 주민들은 단체를 상대로 법정공방을 벌일 경우 사태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하고 개인에게 변호사비용 등 법리다툼 부담을 지게 하는 방식으로 ‘재갈 물리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해 매출액만 2조5000억원이 넘는 재벌기업 계열사 SKC가 일개 개인을 상대로 소송전을 벌이는 배경에는 공장에서 발생하는 악취·소음 등으로 환경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들과의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수원SK스카이뷰 입주민들은 환경분쟁 조정을 위한 TF팀을 꾸렸다. 아파트 단지 바로 옆 SKC 공장에서 발생되는 소음·악취 때문이었다. 악취의 경우 증거자료를 취합하기 힘들기 때문에 입주민들은 객관적인 데이터를 모을 수 있는 소음공해에 집중키로 했다.
입주민들은 365일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의 소음 때문에 “창문을 열어놓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고층에 사는 세대일수록 소음의 강도는 더욱 심했다. 수년간의 민원제기에도 별다른 개선이 없자 환경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문제해결에 나선 것이다. TF팀은 지난해 9월 입주민 2100여명의 동의를 받아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재정신청 동의서를 제출했다. 현지조사까지 실시해 이달 당사자심문 후 재정위원회의 결정만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SKC 측이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걸면서 재정신청 절차는 중지된 상태다. 민사소송이 제기될 경우 재정신청이 중지된다는 법조항 때문이다. 재정위의 결정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입주민들은 날벼락을 맞았다고 토로하고 있다. 게다가 소송이 장기전 양상을 띌 것으로 전망돼 입주민들의 시름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SKC 측의 법률대리인은 우리나라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 5명이다. 현재 서울시 환경분쟁조정위원회 조정위원으로 활동 중이거나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판사 출신 등 거물급 변호인들이 포함돼 있다.
“거대자본 앞세운 SKC 갑질 횡포 두려워…서민대통령님 서민을 살려주세요”
SKC 측의 소송제기 소식을 접한 입주민들은 크게 분노하고 있다.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제기하자 2000여명의 시민들의 권리구제가 답보상태에 빠지게 될 확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재벌기업 계열사가 일개 개인을 상대로 법정공방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거대 자본을 앞세운 겁주기 혹은 재갈 물기기나 다름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SKC측이 제기한 민사소송의 피고인 유상호 씨는 “2100명(569세대)이 넘는 주민들이 환경피해를 호소해서 재정신청을 했는데 2명의 대표자만 대상으로 민사소송을 건 것은 협박 내지 주민들을 와해하려는 의도로 보여져 무섭기까지 하다”며 “정당한 피해 보상금을 요구하는 주민들을 상대로 환경부(환경분쟁조정위) 출신 대형 로펌 변호사를 앞세워 공격하니 대기업이 일반인들을 상대로 이래도 되는 건지 싶다”고 토로했다.
입주민 김창희 씨는 법망의 허점과 분쟁조정위 측의 대응을 지적했다. 김 씨는 “재정신청까지 기간이 9개월이나 걸리는데 중지는 단 하루 만에 신속하게 이뤄졌다”며 “재정결정이 나지 않았으니 채무가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데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걸 수 있는 게 가능한 일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입주민은 “이번 SKC의 소송은 명백한 재벌자본의 횡포다”며 “거대 자본이 가난한 서민들을 상대로 겁주기 소송을 진행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서민을 위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같은 서민들의 부당한 압박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구제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입주민 강현규 씨는 “손해배상을 청구하긴 했지만 정말 주민들이 돈이 아쉬워서 이렇게까지 했겠냐”며 “끊임없는 소음과 이따금씩 나는 악취 때문에 창문조차 맘 편히 열지 못한 게 벌써 수년째라 참다못해 재정신청을 한 것이다”고 성토했다.
또 다른 피고인 김상수 씨도 “상생을 모색해야할 이웃기업이 법망을 피해 주민들을 괴롭힐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사실에 치가 떨린다”며 “정작 시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기구인 환경분쟁조정위원회 조차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이젠 정부조차 신뢰할 수 없게 됐다”고 토로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SKC의 민사소송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환경분쟁 전문 한 변호사는 “(2명에게만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건 것은)다분히 고의성이 있어 보인다”며 “2000여명의 권리구제를 한 번에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로 보여진다”는 견해를 보였다.
또 다른 환경분쟁 전문 변호사도 “단 2명을 대상으로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제기하고 이로 인해 재정신청이 중지되는 것은 (법리상)가능은 하다”며 “그러나 SKC 측에서 손해가 예상된다는 판단 하에 재정결정에 앞서 소를 제기하고 대형로펌 변호사들을 선임해 선제적인 방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환경분쟁조정위 측은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환경분쟁조정위 관계자는 “환경분쟁조정법 45조 2항과 3항에 따라 재절결정 절차를 일시 중지한 상태다”며 “소송이 끝나면 재정신청은 다시 재개된다”고 답했다.
SKC 측은 소송제기에 대한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논지와 다른 답변만을 내놓고 있다. 앞으로도 소음저감 등 환경개선을 위해 필요한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SKC 관계자는 “입주민들 전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경우 오히려 전체 입주민이 시간과 비용 등이 커지고 소장 송달 등에도 시간이 걸려 신속한 분쟁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아 입주민을 대표하는 2명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며 “통상적으로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의 재정결정이 나와도 이에 불복하는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아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통해 신속하게 법적 책임 유무를 확정하는 것이 서로에게 더 좋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당사는 입주자 분들의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입주 이전부터 수백억원을 투자해 방음벽 설치, 소음원 240곳 방음박스 시공, 고소음 설비 교체 등 소음저감 노력을 기울였고 2015년 이래 53dB 이내를 유지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유은주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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