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이 한반도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복합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1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제47차 회의에서 북한 측이 신청한 금강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복합유산으로 확정했다.
복합유산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특징을 모두 가진 유산으로 세계적으로도 중국 태산과 터키 카파도키아 바위 유적을 포함해 40곳밖에 되지 않는다.
북한은 금강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유네스코에 신청했고, 세계유산위원회의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지난 5월 금강산에 대해 등재를 권고한 바 있다.
위원회는 평가 결과를 토대로 금강산이 독특한 지형과 경관, 불교의 역사와 전통, 순례 등이 얽혀 있는 복합문화 경관으로서 가치가 크다고 봤다.
금강산은 백두산과 함께 한반도를 대표하는 명산으로 여겨져 왔다. 비로봉(1638m)을 중심으로 수많은 봉우리와 기암괴석, 폭포와 연못이 어우러지며 태백산맥 북부, 강원도 회양군과 통천군, 고성군에 걸쳐 있다.
위치에 따라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으로 나뉘며 다양한 식물종이 서식해 생태·자연 자원의 보고(寶庫)로도 꼽힌다.
금강산은 예부터 사대부 양반과 문인들의 버킷 리스트였다. 이에 현재까지 전해지는 여러 문학 작품과 예술품에는 금강산의 숨결이 곳곳에 남아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고려 후기 문인인 이곡(1298∼1351)이 1349년 금강산과 동해안 지역을 유람하고 남긴 ‘동유기(東遊記)’다.
동유기에 의하면 1349년(충정 1) 8월14일 강원도 고성군 송도를 출발한 이곡은 21일 천마령을 넘어 금강산을 유람했다. 23일 장안사에서 천마서령을 넘었고 24일 회양부에 이르러 하루를 묵었다. 26일에는 철령을 넘어 복령현에서 묵고 27일 등주에 이르러 이틀을 머물고 30일 일찍 화주를 떠나 배를 타고 강안을 유람했다. 9월4일 고성군 삼일포(해금강)에 이르기까지 이곡은 20일가량 금강산을 둘러보았다.
조선시대 학자 율곡 이이(1536∼1584)도 19세 때 금강산을 돌아본 뒤 ‘풍악행(楓岳行)’을 남겼다. 풍악행은 600구 3000자 분량의 기행시로 금강산의 아름다운 경치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성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1676∼1759)은 우뚝 솟은 비로봉을 중심으로 만폭동 계곡, 기암괴석 등의 절경을 여러 점의 금강전도로 남겼다. 만 58세 때인 1734년(영조 10) 겨울 만폭동을 중심으로 금강내산 전체를 그린 ‘금강전도’(59×130.7㎝)는 삼성미술관 리움이 소장하고 있으며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왜관수도원이 소장하고 있는 금강내산전도(54.5×33.0㎝)는 나무가 우거진 선명한 녹색 산과 붉은색 사찰이 대비를 이루는 작품으로 화첩 현태로 만들어졌다. 1925년 독일인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가 한국을 방문했다가 구입한 작품으로 2005년 왜관수도원에 영구 대여 형식으로 반환되었다.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한 금강산사대찰전도(金剛山四大刹全圖)는 목판본으로 제작된 후 채색을 가한 회화식 지도로 제작자는 명확하지 않다. 지도에는 금강산의 수려한 경관과 더불어 장안사·표훈사·유점사 등 주요 사찰이 묘사돼 있다.
경관 고고학 전문가인 최종희 배재대 조경학과 교수는 “금강산은 과거 유럽 귀족들의 그랜드 투어처럼 사대부나 문인이 꼭 다녀와야 할 필수 코스였다”고 설명했다.
금강산은 등재를 신청한 지 약 4년 만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유네스코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북한 측은 2021년 금강산의 등재 신청서를 냈으나 당시 코로나19 방역 상황으로 평가가 이뤄지지 못했고 올해 대상에 포함됐다.
이번 등재로 북한의 세계유산은 3건으로 늘어났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북한은 ‘고구려 고분군’(2004년)과 ‘개성역사유적지구’(2013년) 등 세계유산 2건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금강산은 북한령으로 우리가 찾아가기 힘든 곳이다. 햇볕정책의 일환으로 1998년 말~2008년 남한 사람들도 방문하여 일부 구역을 관광했지만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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