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제주시 이호동에는 붉은색과 흰색 말 등대가 있는 이호테우해변이 있다.
이곳을 무대로 매년 7월 말이면 이호테우축제가 개최된다. 지난 27일 막을 내인 이 축제를 계기로 제주도 테우 문화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테우는 뗏목 형태의 작은 배로 제주에서는 어로 작업에 주로 동원됐다. 통나무 여러 개를 연결해 만든 이런 형태의 배는 어디에나 있다. 타 지역에서는 떼배·뗏목·통나무배 등으로 불린다.
‘제주테우문화’는 2022년 9월29일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 고시됐다.
제주 사람들은 바다를 바당밭(바다밭)이라고 불렀다. 육지의 밭처럼 각종 먹거리가 나온다는 뜻이다. 돌밭이 많고 민물이 부족한 환경 탓에 제주 사람들은 바다를 육지의 밭처럼 경작의 대상으로 여겼다.
바다를 경작하는 데 통나무배 ‘테우’는 없어선 안 될 중요한 도구였다. 테우는 해조류와 생선 등 연안 어업 활동 또는 연근해 교통수단으로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활용됐다.
제주 테우의 크기는 다른 지역의 것과 비교해 큰 편이다. 일반적인 통나무배가 한두 명이 탈 수 있는 소형이라면 제주의 테우는 많게는 5∼6명까지 올라타 조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전체 길이가 5∼7m, 폭은 2∼3m에 달한다.
제주 사람들은 한라산에서 자라는 구상나무를 베어다 테우를 제작했다. 구상나무는 목질이 가볍고 단단해 물에 강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들어 한라산 구상나무 벌목이 금지된 이후에는 삼나무로 대체됐다.
어부와 해녀들은 테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자리돔(자리)을 잡거나 모자반·감태·미역 등 해조류를 채취했다. 도미과에 속하는 자리는 아열대 어종으로 얕은 바다 바위 골짜기에 무리 지어 산다.
자리라는 이름은 항상 같은 자리에 모여 있다고 해서 붙었다. 태우는 자리 서식지를 찾으면 암초 사이에 테우를 고정시키고 커다란 원형 그물을 놓았다. 자리는 간조와 만조 때 수직 이동을 하는 특징이 있다.
‘담배 한 대 필 시간’이면 테우가 휘청일 정도로 그물이 가득 차곤 했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은 자리를 ‘잡는다’고 하지 않고 ‘뜬다’ ‘거린다(거른다)’고 했다.
자리돔이 가장 맛있는 시기는 보리 수확기인 5월에서 7월이다.
민속학자인 고 진성기 전 제주민속박물관장은 자신의 저서 ‘제주민속의 아름다움’(제주민속연구소, 2003)에서 테우로 자리돔을 잡는 모습을 “남국 제주가 아니고서는 볼 수도 없는 평화스러운 정경”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산업화에 밀려 테우의 모습도 점차 사라져 갔다.
1986년 정공흔 전 제주대 교수의 논문 ‘고대제주해로 테우탐사 종합보고서’를 보면 1938년 제주도에만 테우가 541척이었으나 1986년 조사에서는 서귀포시 보목포구의 6척을 비롯해 32척에 불과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은 전시용과 행사용만 남았다.
그렇다면 테우는 얼마나 멀리 항해할 수 있을까. 기록에 의하면 제주도 어부가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태풍을 만나 표류한 뒤 중국을 거쳐 귀향했다는 이야기와 테우를 몰고 대마도까지 갔다가 일본 여성과 함께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20∼30년 전에는 이러한 이야기를 실제로 증명해보이기 위해 테우를 타고 망망대해로 탐사에 나선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테우는 연근해 고기잡이용 배이기 때문에 장거리 항해는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말한다.
테우는 개인 소유라기보다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만들어 함께 어로 활동을 했던 공동체문화의 산 증거다.
제주에는 태우와 관련해 △낭 싸는 소리(나무를 톱으로 켜면서 부르는 노래) △테우낭 내리는 소리(테우 만들 나무를 한라산에서 내리는 노래) △테우 만드는 소리 △새 테우 띄우는 소리 △그물 당기는 소리 등 테우와 관련한 다양한 노동요와 신앙의례가 제주 전역에서 두루 전해 내려오고 있다
발동선이 들어오면서 테우는 점차 자리를 감추기 시작했지만 해안마을에선 70∼80대 어르신들은 테우에 관한 기억을 여전히 갖고 있다.
테우문화는 제주 선인들의 슬기로움과 실용정신이 담긴 전통어업유산으로 제주해녀어업과 함께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하는 등 추가 조치가 필요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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