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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부터 심각했던 여야 간의 대립이 조국·윤미향 사면을 기점으로 극을 향해 치닫고 있다. 초당적 협력이라는 단어는 이제 눈을 씻고 봐도 뵈지 않는다.
정치적 분열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민주·공화 양당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상대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며 서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양당의 대립이 가장 격화됐던 것은 2024년 미국 대선 때다. ‘뉴욕타임스’가 그해 11월3일 발표한 7개 경합주 여론조사에 따르면 해리스 당시 부통령은 흑인 유권자(87%)와 30세 이하의 젊은 유권자(57%), 대학 학위를 가진 백인 유권자(55%) 사이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고, 트럼프 당시 전 대통령은 농촌 지역 유권자(75%)와 대학 학위가 없는 백인 유권자(64%) 사이에서 강력한 지지를 얻었다.
정치적 분열이 곧 인종 분열이었고 세대 분열이었으며 배운 자와 못 배운 자의 분리였다.
때맞춰 나온 소설이 더글라스 케네디의 ‘원더풀랜드’였다.
소설 속 미국은 현실 속 모습 그대로다. 지구방위대로 불릴 만큼 막강한 파워의 나라,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미국은 양당의 대립을 극복하지 못한 채 2036년 두 나라로 분리된다.
자유와 복지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연방공화국(민주당)’이 미연방을 탈퇴해 독자적인 국가를 설립한 것이다.
한편 청교도적 신권정치를 표방하는 ‘공화국연맹(공화당)’은 기독교 원리주의 국가로 회귀한다. 공화국연맹은 국경을 봉쇄하고 시민들에게 당분간 거주하는 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긴급조치를 발표한다.
미시건주, 일리노이주, 뉴멕시코주, 콜로라도주는 연방공화국에 포함되었고 애리조나주, 위스콘신주는 공화국연맹을 선택한다.
미네소타주는 주를 이등분할지를 두고 주민투표를 실시하는데 끝내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 만은 중립지대로 남게 된다. 그때부터 이 중립지대에서는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게임이 펼쳐진다. 스파이 행위가 횡행하고 감시와 하이테크 사보타주(의도적 파괴행위)가 판을 친다. 대립의 강도가 전보다 더 세진 것이다.
소설이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뜻이 맞는 사람끼리 뭉쳐 산다고 더 행복해지는 것도, 더 잘살게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
그러나 그냥 인내하며 자기 갈 길을 가기에 우리 사회는 너무나 위태로워 보인다. 한쪽에서는 입법 권력을 휘두르며 언론을 통제하고 정치 보복을 일삼는다. 다른 한쪽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아스팔트로 쏟아져 나와 집회를 연다.
통념에 따르면 인간은 원래 다른 집단에 대한 원초적 적대감을 갖고 있다. 나와 다른 것들은 그냥 싫다는 건데, 그렇게 반복적으로 싸웠다면 인류는 벌써 전멸하고 말았어야 맞다. 하지만 호모사피엔스는 20만 년 넘게 존속하고 있다.
문화심리학자 마이클 모리스 교수는 신간 ‘집단본능’에서 진화론적 과학에 근거해 호모사피엔스의 장수 이유를 찾는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처럼 척추가 곧았고 뇌 크기도 같았고 신체는 더 강했다. 하지만 호모사피엔스가 유럽에 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하고 만다.
네안데르탈인이 인근 씨족들과 싸우고 서로 잡아먹었다면 호모사피엔스는 그들과 거래하고 짝짓기를 했다. 개인 역량에서는 뒤졌지만 집단 역량에서는 더 뛰어났던 것이다.
모리스 교수는 호모사피엔스의 힘을 ‘부족 본능(tribal instinct)’으로 요약한다. 부족은 단순한 무리가 아니다. 부족이란 공동의 문화 지식을 바탕으로 연대감을 공유하는 사회조직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사회적 동물이 사실은 부족적 동물이라는 것.
책에서 부족 본능은 △동료들의 패턴에 나를 맞추려는 ‘동료 본능’ △유명인에 매혹되는 ‘영웅 본능’ △전통을 유지하려는 ‘조상 본능’의 세 층위로 구분된다.
사람이 내면에 △소속감을 추구하는 순응주의자 △존경과 찬사를 갈구하는 기여자 △연속성을 소중히 여기는 전통주의자의 세 가지 캐릭터를 갖추게 된 게 이 부족 본능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캐릭터가 인류 공동체의 공유 지식풀이 되어 인류는 지금과 같은 정교한 도구와 문화 예술을 가진 존재로 진화하게 됐다고 한다.
인간이 개인의 힘과 두뇌만 믿었다면 네안데르탈인처럼 벌써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여러 세대에 걸친, 고통스러울 만큼 느린 진화를 통해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그 바탕에 부족 단위의 학습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모리스 교수는 “통념과 달리 부족 본능은 우리를 분열과 혐오로 이끄는 버그나 약점이 아니다. 오히려 진화적 상승을 가능하게 만든 우리 종의 특징이며 여러 위대한 업적을 이루게 하는 원동력이고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를 창조하는 막강한 능력이다”고 말한다.
부족 본능은 인류를 증오와 적개심으로 모는 주범이 아니라 인류를 구할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결국 뜨거운 감자들처럼 한 냄비 안에서 부딪히며 갈등하는 게 우리의 정체성이고 우리의 할 일이라는 것이다. 일면 안심이 되는 말이기는 하다. 집단지성이 파국이 초래되는 것을 놔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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