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미술사학자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의 ‘세계조형분석학회’ 정기 발표회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21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열린다.
이번 세미나의 주제는 ‘만병과 보주’다. 앞서 진행됐던 △종교 건축(불교 법당, 그리스 신전, 유럽 성당, 이슬람 모스크 등의 교차관계) △성덕대왕 신종 △괘불 △고려청자에 이은 다섯 번째 주제다.
강 원장이 이번 세미나에서 주목하는 것은 ‘가득 찬 항아리’로 풀이되는 만병(滿甁)의 개념이다. 여기서 가득하다는 것은 한자 찰 만(滿)에서 알 수 있듯 물이 가득하다는 의미다. 물은 생명의 근원으로 우리 신체의 최대 구성성분일 뿐 아니라 지구 생태계와 인류 문명을 떠받치는 핵심이다.
만병은 전 세계 문양에 보편적으로 등장하지만 지금까지 누구도 알아보는 이가 없었다. 그리스에서부터 시작하여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인도, 중국, 한국, 일본 등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만병을 모두 꽃병이라 잘못 부르고 있다. 이번 발표회에서는 세계 처음으로 만병의 진짜 개념과 그 엄청난 상징의 비밀이 밝혀진다.
‘만병’은 선생의 독창적인 학문적 업적이라 할 수 있는, 조형언어의 출발점인 ‘보주(寶珠)’와 상응한다. 보주는 조형언어의 기본 틀을 이루는 단위로 한자로는 보배로운 구슬라는 뜻이지만 사실 무엇으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모든 문양은 조형언어로 보주, 제1영기싹, 제2영기싹, 제3영기싹의 4가지 형태소로 귀결된다.
선생은 “조형언어는 문자언어처럼 형태소를 지니고 있지만 발화하지 않으므로 ‘침묵의 언어’다. 조형언어의 음소는 단 4개. 인류가 남긴 어떤 미술품도 이 공식을 비껴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선생이 조형언어를 연구하는 데 바친 20년 세월은 선생이 세계의 조각·건축·회화·도자기 등 미술품 5만여 점을 ‘채색분석’하며 얻은 성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문자언어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차원인 조형언어의 세계다.
채색분석이란 조형언어의 4가지 형태소인 ‘보주’ ‘제1영기싹’ ‘제2영기싹’ ‘제3영기싹’을 색깔로 분석해서 영기문의 전개 원리를 추출해 내는 방법이다. 그가 주창한 영기화생론(靈氣化生論)은 바로 이 조형언어로 표현된 예술 세계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이번 발표회는 ‘만병이 곧 보주’임을 증명해 나가는 시간이다. 이를 통해 도자기 표면의 문양이 단지 장식이 아니라 도자기 안의 물이 가시화(可視化)되어 도자기 표면에 나타나는 것을 입증하게 돤다.
조형언어의 눈으로 불화나 불상, 도자기, 금속기 등을 바라보면 부처의 머리는 영락없는 보주요, 둥글게 말려 있는 머리카락은 보주에서 뻗어나가는 영기싹이다. 강 원장은 우리나라 달항아리 역시 물항아리(만병) 즉 보주라고 설명한다.
“서울의 호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청자철화수박문호’를 보면 물이 흘러넘치는 형상의 검은 줄이 만병을 감싸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물로 형상화된, 바로 4개의 형태소로 이루어진 조형언어인 것이죠.”
강 원장에 의하면 옛사람들은 현대인보다 훨씬 영적인 존재여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기운’을 보거나 느껴 왔다고 한다. 달리 말하면 인류의 역사는 ‘영성을 잃어가는 역사’라 할 것이다.
강 원장은 “고대 예술은 단순한 신앙심의 발로가 아니다. 고대인들은 조형언어를 통해 절대적 진리의 세계를 표현했다”고 말한다.
강 원장은 2005년경 고구려벽화를 계기로 이 문양의 세계에 눈을 뜨면서 20년간 전 세계 유적과 박물관을 누비며 건축·회화·도자기·금속기·목기·복식에 새겨진 조형언어를 탐구해 왔다.
이번에 개최되는 학회는 선생의 지난한 학문 여정의 결정판으로, 매일 발견하고 연구하고 깨달아 온 ‘조형언어’의 세계를 정리하는 시간이다.
강 원장은 “오류로 점철된 현 미술품 해석을 바로 잡는 데 사명감을 갖고 있다. 이야말로 인류의 역사와 문화, 예술을 올바로 알아가는 여정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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