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된 지 반 년 쯤 됐을 때 판교에 위치한 IT 기업의 노동 환경을 취재하러 간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어떻게 취재해야 할지 노하우도, 그쪽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한테 무작정 명함을 내밀며 어느 회사 직원인지 물어보고 들은 것이 있는지, 그 회사 근무 환경은 어떤지 물어보는 방식으로 취재했다.
오래 된 일이라 어느 회사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당시 IT 기업 근로자들의 생각이 일반적인 기업과 달랐다는 것은 기억난다. 다른 기업이라면 난리가 날 수 있는 사안이지만 ‘우리 업계 분위기가 그렇다’ 또는 ‘불만이 있으면 이직하면 된다’ 같은 대답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서 IT 기업의 노동 운동에도 변화가 생겼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IT 위원회 소속 지회만 해도 10여 개가 됐다. 그 당시 노조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느껴진다.
이전에 카카오 노조와 엔씨 노조의 물적 분할 반대 사례를 살펴보면 우리는 원래 이직이 잦다고 말하던 사람들이 ‘고용 안정’을 외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재는 노사 합의가 이뤄졌지만 카카오 노조는 창사 처음으로 부분 파업을 진행했고 카카오뱅크 또한 부분 파업을 예고했다. 카카오 노조 파업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는 네이버 노조가 통합 교섭을 추진하고 있다.
화섬식품노조는 네이버의 통합 교섭 요구가 IT 업계에 표준이 되는 ‘판교 모델’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IT 기업의 양대 산맥인 카카오와 네이버에서 노조가 결성되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다른 업체에게 영향을 주겠지만 직접적으로 업계 전체에 통용되는 기준을 만들겠다는 발언이 나온 것이다.
한편 매일경제 보도에 따르면 네이버는 지난해 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가 노무 관계에 초점을 맞춘 경제단체인 경총에 가입했다는 것은 본격적으로 노사 관계와 관련해 위기감을 느끼는 것으로 해석된다.
비교적 신생 기업에 속하는 네이버가 노조 대응 관련 경험이 없는 만큼 경험이 많은 선배 기업의 도움을 받으려는 행보로도 보인다.
경험이 없고 노사 관계에 어색한 것은 노조 측도 마찬가지다. 오세윤 네이버지회 위원장의 인터뷰를 찾아봐도 노조 활동을 처음 하기 때문에 생소했고 여러 곳에서 도움을 받았다는 발언을 찾아볼 수 있다. 노사 양측이 노사 관계에 있어 초보자인 셈이다.
한국의 노사 관계는 서로에게 적대적인 느낌이 강하다. 회사는 노조를 리스크로 보고 노조 또한 ‘기업의 횡포’를 기본으로 두고 투쟁해서 쟁취해야 한다는 기조를 띠는 경우가 많다.
다들 많이 해봤으니 어떻게든 합의는 하지만 오랜 시간 협상한 경험이 쌓이면서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처음 시작하는 IT 업계에서 첫 단추를 잘 끼운다면 더 협조적이고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자유롭고 혁신적인 분위기를 지향해 온 IT 기업이라면 새로운 분위기의 노사 관계도 시도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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