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이 되면 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문이 다시 열린다. 평소 익숙지 않은 이름들이 신문 지면에 등장하고, 잊고 있던 사건들이 소환된다. 누군가는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닫아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최근 배우 하영의 가족사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출발점은 단순했다. 방송에서 자기 집안을 ‘4대째 의사 집안’이라고 소개하며, 증조부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행적이 논란이 됐고, 조부 안부호가 해방 이후 소록도병원에서 근무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여기서 먼저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조상의 잘못 때문에 후손을 벌주자는 것이 아니다. 하영이 증조부의 행적을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혈연은 도덕적 유무죄의 판결문이 될 수 없다.
문제는 기억이다. 그 기억을 어떻게 자신의 현재와 연결하느냐의 문제다. 조상의 명성과 업적을 자신의 사회적 이미지로 가져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말은 단순한 가족사 소개가 아니다. '의사'라는 직업이 가진 전문성과 교양, 성취를 현재의 자신에게 덧붙이는 사회적 자산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자산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빛을 보려면 그림자도 함께 봐야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친일 청산의 문제를 ‘누가 친일파였나’라는 문제로 생각해왔다. 누가 일제강점기에 관직과 훈장을 받았고, 누가 시대의 권력에 협력했는지 말이다.
교육과 직업, 인맥과 사회적 지위는 세대를 거쳐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친일'을 선택한 과거의 행적이 현재 우리 사회의 구조에 어떤 흔적으로 남아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은 필요하다.
1948년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이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얻었지만, 친일 세력의 방해로 반민특위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친일 청산은 좌절됐고, 친일 권력과 인적 네트워크는 해방 이후에도 살아남았다.
그 결과 우리는 해방 80년이 넘도록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다. "누가 친일을 했는가", "그 행위의 대가는 무엇인가", "그 대가는 누구에게 넘어갔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기록했는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있느냐 없느냐 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서도 안 되고, 반대로 어떤 의혹이 제기됐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가족을 죄인으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연좌제가 아니라 기억의 책임이며, 기억의 정직성이다. 그 기억이 있어야 독립운동가의 희생도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친일 협력의 대가로 축적된 부와 권력에 대해서도 제대로 질문할 수 있다.
하영은 본가에 냉장고가 5대 있다며 안 먹어서 매일 썩는다고 했다고 한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상당수 독립유공자 후손과 맞물리며 비판을 받았다.
냉장고 속 음식은 오래 넣어둔다고 영원히 보존되지 않는다. 언젠가는 썩고 냄새가 난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덮어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과거를 청산한다는 것은 다음 세대가 더 이상 같은 질문을 반복하지 않도록 만드는 일이다. 역사는 닫아둔다고 끝나지 않는다. 언젠가는 반드시 냉장고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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