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장기 채무자의 빚을 탕감하거나 소멸시켜주는 정책에 환호와 우려가 교차한 바 있다. 빚과 관련해 기자에게도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는 걸 기억이 소환해냈다.
타인의 돈을 빌리는 일을 웬만하면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직 갚지 않은 빚이 하나 있다. 처음이자 마지막 빚인 셈인데, 빌려준 사람이 극구 돌려받기를 사양하고 있다. 지금도 그 돈을 갚고 싶다, 하니 고개를 가로젓는다.
모스크바 유학 시절 막바지 2000년대 초, 지인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않는 방식으로 일종의 사기 피해를 입었었다. 수중에는 학비조차 남지 않았다. 통역 아르바이트 등으로 겨우 마지막 학기 학비를 마련했다. 그런데 한가지 착오로 문제가 생겼다. 당시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 중이라, 납부 당일 환율로 200달러가 부족했던 것.
어디서 200달러를 구하나. 납기 내 내려면, 그날 중 해결해야 하는 상황. 그래야 기숙사 등록도 연장할 수 있었다. 결국 시내 은행 근처에 아는 선배가 한국 모 언론사 특파원으로 근무 중인 걸 기억해냈다. 전화로 사정을 이야기하니 흔쾌히 빌려주겠다고 한다. 안도의 한숨과 형언할 수 없는 감사의 마음. 그의 사무실에서 돈을 건네 받고 은행 영업 끝나기 전 겨우 학비를 내고 기숙사 등록을 연장했다.
그러면 본론으로 돌아가보자. 빚을 대신 갚아주면, 그 사람은 그 이후 빚 걱정 없이 정상적 일상으로 복귀해 잘 살 수 있을까. 이에 관해서는 여전히 논란 중이다. 그런데 최근 이와 관련한 연구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의 딘 카란 교수 연구팀이 2018년 발표한 논문을 통해 소개된, 인도 체나이 지방 코얌베두 시장 상인들 대상의 사회실험은 예상 밖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연구팀은 2007년 이 시장 상인 2500명의 노점상 대부분이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은 1000루피(당시 20달러 상당)를 빌려 새벽 도매상에서 물건을 사다가 팔고, 그날 장사를 마치고 이자를 갚는 식이었다. 하루 5% 고리의 일수 이자였다. 아침에 1000루피를 빌리면 매일 50루피를 이자로 내야 했다. 1000루피로 100루피 어치를 팔아 이자를 갚고 남은 50루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삶이었다. 카란 교수팀은 상인 1000명을 선정해 그 중 절반의 상인을 대상으로 빚을 갚아주고 이후 어떻게 되는지 변화를 주기적으로 확인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론적으로 이들은 이후 큰 부를 이룰 수 있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상인들은 6주 후 다시 빚을 지기 시작했고, 1~2년 후에는 이전과 동일한 상태로 돌아갔다.
국가와 대상을 달리해 필리핀에서도 같은 실험을 진행했다. 카가얀 지역 상인들 수백 명도 빚을 탕감받았지만, 몇 주 후 다시 빚을 지기 시작했고, 1~2년 후 이전 상태로 돌아갔다. 동일한 결과가 나온 것은 다소 충격적이다. 진짜로 돈은 습관일까.
지금은 모바일 뱅킹이 대중화된 시대니 그 선배가 사양하더라도 돌려줄 방법은 많다. 조만간 빚을 청산하고, 맥주 한잔 기울이러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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