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는 서울에서도 외국인 거주 비율이 높은 곳으로 꼽힌다. 자유당 시절 이승만 대통령이 한남동에 미국의 경제조정관실(OEC) 직원을 위한 서양식 사옥을 지으면서 이곳에는 외국인 거주촌이 생겼다. 이후 해외 각국의 공관들이 들어서며 외국인 거주지역이 확장됐고, 미군 주둔지로 사용돼 미군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남산 기슭의 외국공관을 중심으로 이태원로 북쪽과 한남동 일대에는 부유한 외국인이, 이태원로 남쪽의 이태원동과 보광동 일대에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저소득층 주민이 주로 살고 있다. 이태원에는 100억원대 대기업 총수의 자택부터 월세 15만원의 단칸방까지 있다. 덕분에 이태원동은 부자와 서민, 동양과 서양이 혼재된 독특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런 이태원만의 자유분방하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찾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이태원상권은 확장됐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경리단길 인기에 힘입은 이태원상권 2분기 임대료는 전분기보다 19.3% 상승하며 서울에서 가장 높은 상승세를 보였다. 1년 전과 비교하면 임대료는 35%가량 상승했다. 이태원은 ‘꼼데가르송길’, ‘경리단길’ 등으로 상권이 커지자 이곳에 투자하는 기업과 연예인이 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의 어제와 오늘을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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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원동은 이태원로를 기점으로 남과 북이 확실히 구분된다. 이태원로 북쪽은 외국 공관과 고급 빌라들이 밀집해있는 반면 남쪽은 재개발 단지로 노후된 주택들이 많다. 이태원에 본격적으로 고급주택이 지어진 시기는 1960년대부터 시작됐다. 사진은 이태원로 일대 전경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 ⓒ스카이데일리
외국인 유동인구 비율이 높은 이태원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조선 시대 여행자들의 숙소인 원(院)이 있었던 이 지역은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세계적인 동네로 변했다.
이태원은 여러 가지 지명 유래 설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 지역에는 비구니들이 수도하는 사찰인 ‘운종사’가 있었는데, 왜군은 이곳 여승들을 겁탈했다. 왜군들은 물러나며 운종사에 불을 질렀고, 갈 곳이 없어진 여승들과 왜적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 포로로 붙잡혔던 왜인들이 운종사터 인근으로 모여들어 마을을 형성했다.
이 마을은 이방인(異)의 아이를 잉태(胎)했다고 해 이태원(異胎院)이 됐다는 설이 있다. 이태원(異胎院)의 지명이 현재와 같은 이태원(梨泰院)으로 바뀐 것은 효종 때부터다. 배나무(梨)가 많이(泰)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운종사 여승들의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는 이태원이 속한 용산은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외국군 주둔지로 사용됐다. 용산은 수도 서울의 관문으로서 육로와 수로 모두로 접근이 용이한 지리적 이점이 있어 우리 민족이 수난을 겪을 때마다 외국 군대가 주둔했다.
풍수적으로는 배산임수의 명당이지만 한강을 통해 상륙한 뒤 남산과 북한산을 점령하면 서울을 쉽게 함락시킬 수 있는 데다, 한강으로 물자 운송이 편리하고, 퇴로가 항상 확보되는 전략적인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고려 때는 몽고가, 임진왜란 때는 일본이, 병자호란 때는 청나라가, 일제 때는 다시 일본이, 해방 후에는 미군이 자리를 이 터에 잡고 있다. 미군은 평택으로 기지 이전을 앞두고 있으나 여전히 미8군사령부, 한미연합사령부, 유엔사 등이 주둔 중이다.

▲ 이태원동은 전통적으로 미군 부대를 상대로 한 유흥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이태원로 이면 도로에는 클럽과 유흥주점, 퓨전 레스토랑, 대형 고급레스토랑들이 들어서 있다. ⓒ스카이데일리
현대사에서 이태원동은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미군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특히 이태원 상권은 미군에 크게 의존했다. 6·25 전쟁 후 미군이 용산 일대에 주둔하자 미군들을 상대로 하는 가게와 유흥주점들이 생겨났다.
1957년 미군의 외박과 외출이 허용되면서 기지촌이 생겼다. 당시는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여성들은 호구지책으로 스스로 양공주가 되던 시절이었다. 1960년대 말까지 미군 대상 매춘업소가 해방촌과 삼각지 파출소 뒷골목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이태원이 도시화가 진행된 것은 1960년대다. 외국 공관과 외국인 아파트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1960년대 들어서면서 이태원동에는 또 다른 상권이 형성됐다. 용산기지에 주둔하던 미군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 내놓은 가구를 취급하는 가게가 늘어나면서 보광로 가구거리가 형성됐다.
1970년대 초반 121후송병원이 부평에서 미8군 영내로 이전했다. 미군이 1만명으로 늘어난 당시 이태원에는 군수물품 등을 싸게 살 수 있는 보세 쇼핑거리가 형성됐다. 1980년대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위해 방한한 외국인들은 이태원동을 많이 찾았다. 이곳은 외국 관광객들이 쇼핑과 유흥을 즐길 수 있는 서울의 관광명소로 발돋움했다.
이태원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자 정부는 1997년 9월 이태원동 38만3000㎡ 부지를 이태원관광특구로 지정했다. 이태원관광특구에서는 매년 10월 이태원지구촌축제를 열고 있다. 이태원역은 지하철 6호선 중 이용객 수가 가장 많으며, 특히 외국인들의 이용률이 높다.
기업과 연예인 투자 러시 이태원동, 지가 상승으로 상권 확산
외국인 거주자 비중이 높은 이곳은 서울에서 외국 문화가 가장 빨리 들어오는 지역이 됐다. 관광특구로 지정된 이태원1동은 용산구에서 가장 상권이 발달한 동이지만 올해 9월 기준 거주인구 7572명으로 용산구 내 16개 행정동 중에서 인구수가 가장 작은 동이다.
용산구청 관계자에 따르면 용산구 인구는 전체 23만4347명 중 이태원1동 거주 인구 비중은 3.2%에 불과해 상업적 성격이 강한 곳이다.
이태원 상권이 발달하며 상가 임대료는 최근 크게 올랐다. 최근 4년 동안 이태원 상가 임대료는 66%나 상승했다. 특히 경리단길 상권은 서울에서도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이태원 음식거리와 경기단길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최근에는 해방촌길과 우사단길에 있는 주택들이 상가로 리모델링중이다.
▲ 이태원 상권은 최근 서울에서 가장 뜨거운 곳이다. 이곳의 임대료는 1년 만에 35%가량 수직 상승했다. 이태원 ‘꼼데가르송길’, ‘경리단길’ 등 상권이 커지자 이곳에 투자하는 기업과 연예인이 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이태원과 인근 한남동에 외인 주택이 들어온 시기는 1950년대다. 1952년 체결한 ‘한미 경제 조정에 관한 협정’으로 대한 경제 원조를 위해 파견된 미국의 경제조정관실(OEC) 직원들을 위해 지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이들이 호텔에서 불편하게 생활한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지시해 지금의 유엔 빌리지 자리에 서구식 저택 25채를 지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고급주택이 지어진 시기는 1960년대부터다. 각국의 대사관이 이태원 지역에 자리를 잡았고, 대사관의 영향으로 1970년대까지 고급주택 단지가 조성됐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한남동의 유엔빌리지다.
이태원동에는 국내 30대 재벌 총수 가운데 가장 비싼 집을 갖고 있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자택이 있다. 지난 6월 재벌닷컴에 따르면 현재 이 회장이 사는 이태원 주택 공시가격은 작년 149억원에서 올해 156억원으로 4.7% 올랐다.
이태원의 만남의 장소로 주로 사용되는 할리스커피 이태원점이 있는 이태원동 123-13의 공시지가는 지난 1990년 1㎡당 720만원에서 2000년 1150만원으로 올해에는 1470만원으로 2배 이상 올랐다. 그러나 이곳의 부동산 전문가들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경우 실거래가는 공시지가보다 3배 가량 높은 가격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스카이데일리 취재 결과 최근 이곳은 기업들의 투자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미 제일기획, 세코그룹 등의 사옥이 자리 잡고 있으며, 기업들의 문화 시설 투자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삼성카드의 ‘블루스퀘어’ 인근에 현대카드가 문화공간 ‘뮤직 라이브러리’를 만들었다.
연예인의 이태원 사랑도 이어지고 있다. 조인성, 싸이, 장동건, 공효진, 홍석천, 길용우, 태진아는 이태원에 부동산을 보유한 스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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