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SH공사·한국철도공사·두산건설 등 정부·지자체 소유의 공기업과 대기업 계열 건설사가 역사적으로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 혹은 등록문화재 등을 훼손·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SH공사가 추진하는 마곡도시개발지구 공사현장 내부에 방치된 강서구 마곡동 구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사진 위)과 용산역 인근에 방치되고 있는 구 용산철도병원 본관 내부 모습 ⓒ스카이데일리
▲ ⓒ 스카이데일리
현재 문화재 관련 전문가는 물론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보존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은 우리 민족의 얼과 혼, 역사적 가치 등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공공성을 망각한 무책임한 태도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특히 SH공사·한국철도공사 등 정부·지자체 소유 공기업에 대해서는 비판의 강도가 남다르다.
SH공사 소유 일제강점기 배수펌프장 및 1000년 유적 청담사지 등 사실상 흉물 방치
서울시 강서구 마곡동 소재 ‘구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이하·양천 배수펌프장)’은 서울시 산하 공기업인 SH공사 소유다. 양천 배수펌프장은 1926년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져 줄곧 농업 배수펌프장으로 이용됐다. 토지규모 329.74㎡(약 99.7평)의 이 시설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대형 목조 구조물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농업 관련 배수펌프장으로는 유일하게 건물이 온전한 형태로 전해지는 건축물이다.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서울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농사를 짓던 마곡동 배수펌프장은 서울지역 농업의 마지막 순간을 담고 있어 그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지난 2007년 서울시에 의해 등록문화재 제363호로 지정됐다.
하지만 이 시설은 소유주인 SH공사의 무책임한 태도로 인해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로 방치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카이데일리는 양천 배수펌프장의 현 상황을 직접 확인해 보기 위해 현장을 직접 찾았다.
현장은 그야말로 참담함 그 자체였다. 양천 배수펌프장은 SH공사가 추진하는 마곡도시개발지구의 공사 현장 내부에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목조로 된 건축물은 곧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심지어 공사장 인부들이 오가는 길목에 변변한 차단막 하나 없이 그대로 방치돼 있어 담배꽁초 등으로 인한 화재 위험도 큰 상황이었다.
내부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1층 벽에는 페인트 등으로 쓰인 음산한 낙서들로 가득 메우져 있었다. 2층은 곧 무너질 것처럼 군데군데 뜯어져 있었다. 바닥은 상당히 낡은 상태로 방치돼 있어 발을 살짝만 잘못 디뎌도 곧장 부서져 버릴 것 같았다.
공사장에서 만난 한 인부는 문화재를 보러 왔다는 기자의 말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돼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는데, 문화재라기엔 너무 흉물스럽다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직접 와서 보고 갈 만한 가치가 있느냐”고 말했다.
SH공사의 무책임한 태도로 무분별하게 방치된 문화유산은 이뿐 만이 아니었다. 역사적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유적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SH공사는 지난 2008년 서울시 은평구 은평뉴타운 사업을 위해 발굴조사를 시행했다. 당시 은평구 진관내동 429번지 일대 토지에서 904년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담사 사찰터(이하·청담사지)’가 발견됐다.
‘청담사지’는 통일신라시대 때 학자 최치원이 쓴 ‘법장화상점’에 언급된 화엄10찰 가운데 한 곳으로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로 평가되는 곳이다. 특히 청담사지에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각종 기와 및 자기 등이 함께 출토돼 역사적 가치를 높게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3월 SH공사는 청담사지를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복토(원형 그대로 해당 지역의 흙으로 다시 덮어놓는 것) 원형 보존을 실시하려 했지만 당시 불교계와 은평구의 반발로 보류됐다. 청담사지를 흙으로 덮은 채 공사를 강행하려 하자 추가 발굴 조사를 요구한 것이다.
현재 SH공사는 해당 유적지의 훼손 가능성 지적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방치하는 태도를 보여 여론의 눈총을 사고 있다. 소유주로써 보존 방법이 결정되기 직전까지는 철저한 관리·감독을 실시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재 청담사지는 흙을 걷어낸 상태로 방치된 상태다. 공사장에서 흔히 쓰는 차단막을 이용해 주변과 분리시켜 놓긴 했지만 특별히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관리가 허술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문화재 유실 및 훼손 가능성이 우려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문화재적 가치 알고도 방치·훼손, 심지어 철거까지 단행한 한국철도공사
▲ 스카이데일리 취재 결과 SH공사와 한국철도공사가 방치·훼손하고 있는 건물 내·외부 모두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사진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구 양천수리조합 내부 낙서된 벽, 심하게 뜯어진 2층 내부 벽, 구 용산철도병원 본관 내 방치된 쓰레기, 서울 청량리역 검수차고의 부식된 외부 모습 ⓒ스카이데일리
1938년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서울 청량리역 검수차고(이하·검수차고)’는 한국철도공사 소유다. 검수차고는 우리나라 철도건축사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철도차량 정비시설로 근대사적·건축사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건축물로 평가된다. 서울시는 지난 2006년에 검수차고를 등록문화재 제269호로 지정했다.
철도공사는 기관차사무소 증축을 위해 보전되던 검수차고 27칸 가운데 1칸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철거해 버렸다. 철거는 등록문화재 지정을 전후로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스카이데일리가 현장을 직접 확인해 본 결과,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검수차고 마저 흉측하게 방치돼 있었다. 건물 곳곳은 부식의 정도가 심각해 보였다. 천막으로 건물 앞부분을 가려놨지만 얼핏 보기에도 오랜 기간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듯 했다.
검수차고 맞은편에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진 않았지만 일제강점기에 건축돼 차량점검 사무실로 사용되던 기념비적인 근대건축물이 있다. 하지만 이 건축물 역시 창문 곳곳이 깨져있는 등 흉측한 몰골로 방치돼 있었다. 내부 역시 일반 창고처럼 아무렇게나 쓰여지고 있었다.
철도공사 소유의 용산역 인근 구 용산철도병원 본관 역시 무분별하게 방치돼 있긴 마찬가지였다.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용산철도병원은 1928년 일제강점기에 붉은 벽돌 마감재를 사용해 건축된 병원 건축물 중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유일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세운 병원건축물로 쓰였다는 사실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 문화유산이다. 지난 2008년 서울시에 의해 등록문화재 제428호로 지정됐다.
하지만 이 같은 역사·문화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정작 소유주인 철도공사는 해당 건축물을 흉물스러운 모습 그대로 방치해 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빨간 벽돌로 된 외관만 봐서는 큰 문제가 없어보였지만 내부는 달랐다. 사실상 참담 그 자체였다.
건물 내부는 쓰레기더미들로 가득 쌓여 있는 상태였다. 벽과 천장은 부서지거나 내려앉았고 창문 곳곳은 깨져 있었다. 심지어 최근에 누군가 들어와서 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커피컵·담배꽁초들이 사방에 널부러져 있었다.
용산철도병원에 대한 철도공사의 무분별한 방치에 대해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철도공사는 용산 국제업무지구 사업을 진행하면서 용산철도병원도 복원·활용할 계획이었지만 사업이 무산돼 그대로 방치해둔 상태다”며 “등록문화재의 경우 소유주가 훼손·방치를 해도 법적으로 처벌할 근거가 부족해 ‘도의적’인 책임 밖에 물을 수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고 말했다.
두산건설 공사 현장 바로 옆 유형문화재 봉국사…깨지고 금가고 불교계 시름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 위치한 봉국사는 약 1000년 역사를 간직한 유형문화재다. 하지만 사찰 스님들에 따르면 최근 바로 옆 부지에서 두산건설이 아파트 재건축을 하는 과정 중에 벽화 균열 및 기왓장 파괴 등 심각한 훼손을 당하고 있다. 사진은 두산건설의 발파 작업으로 균열 및 손상을 입은 봉국사 대광명전의 모습과 최근 설치한 진동 계측기(사진 왼쪽 아래) ⓒ스카이데일리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의 방치·훼손 행위는 민간기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두산건설은 아파트 시공 과정에서 공사 현장 주변에 위치한 문화재를 훼손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조계종 등에 따르면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 위치한 봉국사는 지난 1028년 고려 현종19년에 창건된 사찰이다. 특히 봉국사 내 ‘대광명전’은 연대가 분명한 조선 후기 건축물로 현재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1호로 지정돼 있다. 이런 대광명전은 현재 위기에 처해 있다. 바로 옆 두산건설의 아파트 공사 때문이다.
스카이데일리가 직접 봉국사에 방문한 결과, 스님들은 시름에 잠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산건설에서 실시하고 있는 발파작업으로 인한 진동 때문에 대광명전 벽화에는 균열이 생겨나고 기왓장이 부서졌다는 게 스님들의 주장이다.
조개종 관계자는 “두산건설이 시공을 따낸 후부터 계속 성남시와 문화재청에 민원을 내봤지만 특별한 조치는 없었다”며 “진동 피해로 인한 민원도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소음피해 민원으로 공사 중지 가처분신청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계 관계자는 “현재 두산건설측은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재건축 공사를 단행하기 위해 힘을 쥐어짜내고 있다”며 “민족의 얼과 혼이 남긴 문화유산의 보존은 등한시 한 채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위는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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