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보존가치가 높은 문화유산의 방치, 훼손 등의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등록문화재의 경우 지정문화재와 달리 보존, 관리에 대한 법적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지정되더라도 훼손·방치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우려감이 더해지고 있다. 사진은 등록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된 성북구 석관동의 의릉 구 중앙정보부 강당(사진 위)과 등록문화재 제300호로 지정된 구 화랑대역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 ⓒ 스카이데일리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고 하더라도 보존, 관리에 대한 법적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훼손·방치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부는 아예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보존 가치가 충분하지만 등록문화재로 등록조차 되지 않은 경우도 상당하다. 많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역사·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민족유산의 훼손을 우려하는 여론이 불거져 나오는 배경이다.
지난해 6월 서울시는 등록문화재로 등록돼 있지 않지만 보존가치가 충분한 근대건축물 100개를 전문가들의 추천을 받아서 선정했다. 대부분은 1970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들이었다. 그런데 스카이데일리 취재 결과, 보존가치가 충분하다고 평가된 이들 건축물 중 상당수는 무분별하게 훼손·방치되거나 일부는 철거되기까지 한 것으로 나타났다.
100년 넘는 세월의 흔적 담은 건축물들, 철거·리모델링 등 제 모습 사라진지 오래
지하철 1호선 종각역 3번 출구에서 조계사 방면으로 걷다가 농협중앙회 종로지점방면으로 방향을 들면 ‘이문설농탕’이라는 간판이 적힌 건물이 우뚝 서 있다. 이 건물은 지난 1914년에 지어졌다. 지난해 서울시가 보존가지가 충분하다고 선정한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이 건축물은 지난 1922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노동운동 단체로 손꼽히는 조선노동연맹회와 조선노농총연맹회 등의 사무실로 사용됐던 건물이다. 지난 2011년 종로구 공평동에 있던 ‘이문설농탕’이 이 건물로 옮겨왔다.
건물은 단층 구조의 양옥으로 지어져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직접 확인 결과, 현재 건물은 오래된 역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많이 개조된 모습을 띄고 있었다. 식당 내부 역시 오래된 흔적을 찾긴 힘든 편이었다.
견지동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익선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익선동은 재개발 사업 실패의 영향으로 오래된 한옥들이 많이 보존돼 있는 지역이다. 이 일대의 한옥들은 대부분 1920년대에서 1930년대 사이에 지어졌다. 종로구 낙원동과 장사동 일대에도 1920년대에서 1930년대 사이에 지어진 한옥들이 다수 존재한다.
특히 익선동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부동산업자로 추앙받는 고 정세권이 계획적으로 설계한 도시로 익히 유명하다.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는 “이 일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옥집단지구다”며 “20세기 도시형 한옥의 본모습을 가지고 있어 건축학적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이 지역에 위치한 한옥 중 상당수는 방치나 훼손, 심지어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지난 1917년 지어진 종로구 낙원동 285번지의 건물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현재 그 부지에는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 서울시 종로구 익선동 159번지(사진 위) 등 익선동·견지동·낙원동 등에 위치한 한옥 건물들은 대부분 1910년~193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다. 전문가들은 이 건물들이 20세기 도시형 한옥의 본모습을 가지고 있어 건축학적 가치가 높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 건물들은 매우 위험한 상태다. 낙원동 285번지의 경우 지난 1917년에 건축된 건물이었지만 스카이데일리가 찾았을 때는 이미 파괴돼 신축 공사가 진행 중인 상태였다. ⓒ스카이데일리
유명인사 거주, 역사적 사건의 현장 등 보존가치 높은 건축물들도 훼손·방치·철거
과거 유명인사들이 거주해 보존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건축물들 역시 훼손이 우려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철저한 관리가 아닌 개인의 주택 용도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등록문화재 91호로 지정된 돈암장과 89호로 지정된 서울 평창동 박종화 가옥 등이 대표적이었다. 이들 두 곳 모두 개인이 거주하는 주택 용도로 쓰이고 있다.
돈암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45년 미국에서 환국해 처음 기거했던 집이었다. 평창종 박종화 가옥의 주인이었던 박종화는 시인이자 소설가로 ‘자고 가는 저 구름아’, ‘세종대왕’ 등 역사소설을 쓴 작가로 유명하다.
박종화의 사돈이자 ‘운수좋은 날’ 등의 소설을 쓴 소설가 현진건이 살았던 가옥 역시 보존가치가 높게 평가됐지만 현재는 아예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2003년 토지주가 건물을 철거해 버렸기 때문이다. 현진건 가옥 부지는 현재까지도 공터로 방치돼 있다.
종로6가에 위치한 김수영 가옥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김수영 가옥 부지 역시 공터로 방치돼 있다. 김수영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풀’, ‘눈’ 등의 시를 쓴 유명한 시인이다. 그가 거주했던 가옥은 지난 2004년 폭설로 붕괴됐다.
김홍남 혜곡최순우기념관 관장은 “역사적 인물의 가옥은 시대적 가치, 사회적 가치, 건축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으로 봐야한다”며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불행히도 역사적 인물의 흔적이 남은 거리와 건물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역사적인 상징성을 담고 있어 보존가치가 높게 평가되는 건축물들 역시 방치·훼손·철거 등의 수모를 겪고 있다. 등록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된 서울 의릉 ‘구 중앙정보부 강당’과 등록문화재 제300호로 지정된 ‘구 화랑대역’ 등이 대표적이다.
‘구 중앙정보부 강당’은 지난 1972년 7월 4일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역사적인 장소다. 현재 이 건물은 어떤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덩그러니 방치돼 있는 상태였다. 외벽의 문은 잠겨 있었고, 창문 안쪽으로 보이는 내부는 곳곳에 먼지만 쌓여 있었다. 1939년에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구 화랑대역’ 역시 방치돼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역사적인 상징성을 담은 건축물 중 일부는 사실상 파괴된 것과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구 서울특별시청과 구 대법원청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두 건축물은 현재 서울도서관과 서울시립미술관 등으로 각각 이용되고 있다.
두 건물 모두 이른바 ‘파사드 보존’이라는 방식으로 보존이 결정됐다. ‘파사드 보존’이란 건축물의 정면 외벽을 뜻하는 말로 건물 외벽만 남겨두고 모든 건물을 파괴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서울도서관과 서울시립미술관 등의 내부는 건물 외벽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 지어진 건물이나 다름이 없는 모습을 띄고 있다.
문화유산연대 관계자는 “파사드 보존 방식이란 규모와 시각적 효과만을 노리고 파괴만을 불러오는 재개발 정책일 뿐이다”며 “이런 식의 정책으로 인해 서울의 근현대역사유적은 오히려 파괴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 문래동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지금까지 산업의 중심지로 유서가 깊은 곳으로 평가된다. 현재도 문래동 일대에는 지어진지 오래된 공장들이 남아있지만 그 중에는 철거되거나 철거 위기에 놓인 공장들도 더러 존재했다. 사진은 1944년 지어진 롯데삼강 냉동창고(사진 위)과 1958년 지어진 영화장유공장 부지의 모습 ⓒ스카이데일리
대한민국 경제발전사 흔적 담은 옛 산업·금융 등의 중심지, 신축빌딩으로 재탄생
한국 근현대사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산업시설 역시 보존가치가 높게 평가되지만 방치·훼손·철거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영화장유공장과 롯데삼강 냉동창고 등은 보존가치가 높은 건축물로 평가된다. 이들 건축물과 같은 산업시설의 경우 대부분 사라지고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에서 보존가치가 더욱 크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지난 1958년 지어진 영화장유공장은 ‘사자표’라는 브랜드로 유명한 영화식품이 춘장 등을 만들던 공장이다. 하지만 지난 2007년 공장 건물은 철거됐으며, 현재는 공장부지만 덩그러니 방치돼 있는 상태다.
1944년 지어진 ‘롯데삼강 냉동창고’는 영화장유공장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현재 이 건물은 보존돼 있긴 하지만 공장 가동은 중단된 상태다. 인근 부동산에 따르면 해당 건물은 조만간 철거 예정이다. 건물이 철거된 뒤 부지에는 정부 차원의 뉴스테이가 들어설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랜드마크로 불렸던 건물들도 보존가치가 높게 평가되지만 그들 중 일부는 개발논리에 밀려 완전히 철거되고 새로운 건물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도 더러 있다. 옛 증권거래소와 화신백화점 등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해 있던 옛 증권거래소 건축물은 지난 1922년 ‘조선주식현물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상에 등장했다. 이 건축물은 해방 이후에는 대한증권거래소로 사용되다가 지난 1979년 여의도로 증권거래소가 이전한 뒤에는 일반 빌딩처럼 사용됐다.
해당 건축물은 우리나라 주식거래의 역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큰 건물로 평가돼 왔다. 하지만 지난 2005년 10월 건물주가 재개발을 목적으로 철거했고, 현재는 명동아르누보센텀이 들어서 있다.
우리나라 유통의 역사를 상징하는 건물 중 하나였던 화신백화점 역시 경제논리를 이기지 못하고 철거된 건물 중 하나다. 지난 1937년 11월 건설된 백화점으로 당시 조선에서 가장 큰 백화점으로 손꼽혔다. 하지만 1987년 삼성그룹에 의해 철거됐고 그 자리에는 종로타워가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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