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서울에 사는 한 50대 남성이 자신의 노모를 살해하는 끔찍한 일이 있었다. 노모와 단둘이 살던 남성은 어느 날 갑자기 베개를 이용해 얼굴을 짓누르며 노모를 숨지게 했다. 이후 아들은 시신을 천으로 감싸고 세 들어 살고 있던 건물 계단 아래에 벽돌과 시멘트를 이용해 매장했다. 하지만 그는 죄책감에 못 이겨 끝내 경찰에 자수했다. 그의 살해 동기는 치매에 걸린 노모를 모시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노모와 단둘이 살며 대소변을 직접 받는 등 병수발을 해 오다 심신이 지쳐 끝내 극단의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치매환자는 가정에서 돌봐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편이다. 치매에 걸린 부모를 시설이나 타인의 손에 맞기는 행위를 불효로 여기는 시각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금전적인 문제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으로 거론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치매 국가책임제’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치매 환자는 가정에서만 돌보지 않고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하는 사회 문제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문 대통령 취임 후 이 사안은 우선시 되는 과제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찬성 보다는 아직까지 시기상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욱 많다. 사후 처리 보다는 선제적 차원의 예방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재원 마련 역시 걸림돌로 지적됐다. 스카이데일리가 문재인 대통령의 ‘치매 국가책임제’에 대한 여론의 반응을 현장 취재를 통해 직접 확인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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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후 ‘치매 국가책임제’ 공약을 이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치매 환자들은 공약 이행을 반기는 분위기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강한 우려감을 내비치고 있다. 막대한 재원 마련 문제가 우선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쉬고 있는 노인 모습 ⓒ스카이데일리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내세웠던 공약인 ‘치매 국가책임제’ 이행 문제를 두고 우려감을 나타내는 여론이 높게 일고 있다.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복지공약의 일부인 만큼 재원 마련 문제를 이유로 관심과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우선 공약 자체로만 놓고 보면 수긍할 만한 공약이라는 시각이 주를 이룬다.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필요로 하는 치매 환자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에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시행 시점과 방식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쪽으로 크게 기울어져 있다.
특히 막대한 재원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복지 보다는 예방에 초점을 맞추는 등 단계적 시행을 촉구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만난 대다수의 시민들은 “해외에서는 치매 예방에 초점을 맞춰 유병률을 줄이고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치매에 걸린 환자에 대한 조치만 고민하고 있다”며 우려 섞인 반응을 보였다.
치매환자 가족 고통 몸소 겪은 文대통령…치매 국가책임제 이행 ‘의지 굳건’
30일 정치권 및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놓은 ‘치매 국가책임제’는 △치매지원센터 확대 △치매안심병원 설립 △노인 장기 요양 보험 본인 부담 상한제 도입 △치매 의료비 90% 건강보험 적용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치매지원센터는 지방에 우선 신설하도록 할 방침이다. 현재는 전국 29곳의 치매지원센터 가운데 대부분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지방은 4곳에 불과하다. 지역 불균형 해소 차원에서라도 지방에 치매지원센터 신설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전체 요양 시설 중 5%에 불과한 국·공립 치매요양시설을 확대해 누구나 저렴한 비용으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환자 가족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본인부담 상한제를 도입하고, 경증 치매환자에게도 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할 계획이다.

▲ 자료 : 중앙치매센터 ⓒ스카이데일리
문 대통령의 ‘치매 국가책임제 도입’ 결정은 개인적인 가정사로 인해 의지가 더욱 분명한 공약으로 알려져 있다. 문 대통령은 장모가 치매를 앓고 있어 치매환자 가족의 고통을 몸소 느껴봤기 때문이다. 이 공약은 경선 후보 시절부터 틀을 잡은 뒤 대선 후보 때 내세우게 됐다는 게 대선 캠프 당시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치매 국가책임제’라는 이름도 문 대통령이 직접 지은 것으로 전해졌다.
공약은 내용 자체만으로는 치매 환자나 가족들, 의학계로부터 공감을 얻고 있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치매 환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여전히 가족이 돌봐야 하는 점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17년 현재 전국 치매환자는 72만4000여명이다. 고령화 현황이 심화됨에 따라 2024년에는 치매 환자가 1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 2015년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기웅·한지원 교수팀이 낸 치매 발병률 자료에 따르면 노인 인구 1000명당 7.9명이 치매에 걸린다. 이는 서유럽 국가들의 치매 발병률(1000명당 5~6명)보다 높은 수준이다.
개인이 치매와 관련해 지불한 진료비, 간호비, 노인장기요양보험료 등의 비용은 지난 2015년 13조2000억원으로 나타났다. 환자 1인당 2033만원에 달하는 액수다. 향후 연간 지출비용은 오는 2030년 34조3000억원, 2050년 106조5000억원 등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준비 부족하면 정책 이행 가능성↓…사후 복지보다 예방 초점 필요
하지만 공약의 취지와 달리 실제 실행에 있어서는 아직가지 기대 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편이다. 재원 마련 때문이다. 치매 예방보다 치매 환자들과 가족들의 지원에 초점이 맞춰진 탓에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문 대통령 후보 대선 캠프에서 복지 공약을 담당했던 관계자는 “일반회계 예산을 조정하고 오는 2022년까지 2600억원 정도를 투입해 증설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공약은 건강보험 재정에서 연 5000억원, 장기요양보험에서 연 300억원을 마련해 지원을 강화한다”고 덧붙였다.
▲ 문재인 대통령(사진)은 장모가 치매를 앓고 있는 개인적 가정사로 인해 ‘치매 국가책임제’를 더욱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공약 이행을 위해서는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현대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공약 이행을 위해서는 치료 보다는 예방이 우선시 되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지난 2013년 노재철 호서대 교수는 ‘주요 국가의 노인 보건의료보장에 대한 비교법적 검토와 시사점’ 논문을 통해 “치매는 무엇보다 조기검진의 필요성, 검진 결과에 따른 조기치료 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치매의 특성상 증상이 심해질수록 치료 효과가 적고 가족들의 부담도 급격히 증가한다”며 “조기 발견으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약 이행에 앞서 재원 마련 대책 등 충분한 준비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자칫 공약 이행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명박정부 시절 계획한 ‘국가치매관리종합대책’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꼽혔다.
전재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008년 치매 노인에 대해 국가가 직접 나서서 관리하는 ‘제1차 국가치매관리종합대책’을 내놨다. 2012년에는 ‘제2차 치매관리종합계획’을 추가로 발표했다. 당시 계획은 치매의 진단·치료 활성화, 정부의 치매 관리 및 치료 체계 구축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지난 2015년에는 ‘제3차 치매관리종합계획’도 선보였다. 하지만 당시 계획은 1·2차 종합계획에 대한 성과 지표가 포함되지 않아 대책이 실패한 것 아니냐는 의혹의 목소리가 상당했다. 의료계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보완돼야 한다”며 “예방보다 사후 복지에 맞춰져 요양병원이 난립하는 등의 문제점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가 치매 환자 책임지는 치매 국가책임제…“공약 자체는 좋지만 재원마련 어떻게”
일반시민들 역시 대체적으로 ‘치매 국가책임제’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재원 마련을 이유로 실제 이행에는 강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 시민들은 ‘치매 국가책임제’에 대해 좋은 정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사진은 서울의 한 종합병원 치매병동 ⓒ스카이데일리
서울 은평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최경란(58·여) 씨의 뇌졸중 휴유증에 따른 경미한 치매증상을 보이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하지만 최 씨는 아직 요양원이나 병원에 보내지 않고 직접 병수발을 들고 있다. 이유를 묻자 최 씨는 “증상이 경미한 데다 어머니가 워낙 고령이기도 하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사회적인 부정적 시선을 의식한 듯한 눈치였다. 최 씨는 “치매 국가책임제는 좋은 정책이고 , 당연히 찬성하는 입장이다”면서도 “하지만 복지 재원 마련은 어디서 하느냐. 결국 우리 세금에서 떼어가는 것 아니겠느냐”고 우려했다.
다른 시민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공약 이행 여부가 불투명 하다는 주장이었다. 김영숙(61·여) 씨는 “그동안 여러 대통령에게 투표해 왔지만 결국 믿을 만한 사람은 없었다”며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고 해도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도 문재인 대통령을 찍긴 했지만 그동안 대통령들을 지켜보면서 불신이 커질대로 커진 상태다”며 “이번에도 공약 자체에는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복지 예산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면 결국 아무것도 못 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시민들 역시 치매 예방 또한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마사지 업소에서 근무한다고 밝힌 이민정(68·여) 씨는 “평소 치매 걱정이 크다”며 “한의원에서 침을 맞으며 치매 걸리지 않도록 혈액순환이라도 잘 됐으면 하는 바람만 가질 뿐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세히 세어 보지 않았지만 내 주변에도 치매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며 “지금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성급하게 판단하긴 힘들지만 반드시 이행할 수 있을지는 반신반의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25일 청와대는 내달 초 치매 국가책임제를 도입한다며 적극적인 추진 의사를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르면 내달 둘째 주 중 치매 국가책임제와 관련해 구체적 방침과 실천 방안을 결재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문 대통령이 밝힌 관련 공약 이외에 구체적으로 드러난 세부 계획은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 역시 스카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현재 계획과 세부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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