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태동(59) 강릉원주대학교 환경조경학과 교수는 우리 국민들에게 ‘허브’라는 개념을 심어준 장본인이다. 과거 우리나라에 ‘허브’라는 개념이 도입되기 이전에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식물은 단순히 민간요법 혹은 약용식물로만 인식됐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건강과 아름다움은 동서고금,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누구나 추구하는 가치예요. 허브는 바로 우리 인간들에게 건강과 아름다움을 줄 수 있죠. 이런 점 때문에 저는 허브 전도사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조태동(59) 강릉원주대학교 환경조경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 ‘허브’라는 개념을 도입한 장본인이다. 그가 허브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알리기 전까지는 인간에게 유익한 식물은 그저 민간요법 재료나 약용식물 용도로만 인식됐었다. 이를 통틀어 지칭하는 ‘허브’라는 개념이 없었다.
“허브란 인간에게 유익한 식물을 모두 이르는 단어에요. 여기서 유익하다는 것은 건강, 미용, 향기 등 모든 용도를 뜻해요. 깨, 고추, 도라지, 더덕, 인삼, 냉이 등 일반적으로 허브라고 생각하기 힘든 식물들도 모두 허브의 범주에 들어가지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허브는 약 3000종으로 추정돼요”
조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허브만 해도 300종이 넘는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대표적인 허브로는 박하, 백리향, 산사나무, 구기자, 부자 등이 꼽힌다. 특히 인삼의 경우 ‘허브의 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력한 향과 영양소를 갖고 있다.
일본 가와구치호 인근 라벤더 페스티벌 참석 후 허브 매력에 흠뻑 빠져
“제가 식물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중학교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때 읽었던 소설에서 짝사랑의 상징으로 라벤더 꽃이 나왔어요. 지금은 그 소설의 제목을 잊어버렸지만 그때부터 저는 라벤더 꽃에 대해 동경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는 1989년 일본 도쿄 인근 치바현에 위치한 치바대학으로 유학을 갔다가 1995년 귀국했다. 그는 일본으로 유학을 갈 때까지만 해도 ‘허브 전도사’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제 원래 전공은 자연환경 보전정책이에요. 국립공원 같은 곳에서 자연환경 보전이라는 공익과 토지 소유주의 사유재산권이 충돌할 때 이를 완화시키는 것을 말하죠. 무조건적인 보전이 능사가 아니라 자연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적절히 활용하는 지혜를 찾아보자는 학문이에요”
그가 허브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시기는 일본으로 유학을 간지 1년이 지난 1996년이었다. 그는 우연찮은 기회에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후지산 북쪽 가와구치호 인근에서 열린 ‘라벤더 페스티벌’을 보러 가게 됐다.
“중학생 때부터 라벤더 꽃에 대한 동경이 있던 터라 라벤더 페스티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꼭 가고 싶었어요.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라벤더 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됐을 때의 그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호숫가에 쭉 펼쳐진 라벤더 밭의 풍경과 향기가 저를 황홀경에 빠지게 했죠”
그때 이후로 라벤더에 빠지기 시작한 그는 라벤더를 포괄하는 개념인 허브에도 눈을 뜨게 됐다. 라벤더는 가장 대표적인 허브 중 하나다. 덕분에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허브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허브에 대해서 공부하면 할수록 점점 빠져들게 됐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허브라는 개념이 전혀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지요. 허브는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이익을 주는 식물이기 때문에 높은 부가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향기 등을 통해 사람들의 호기심을 유발하죠”
꽃양귀비 수입하다 마약상으로 오해…주변 지인 줄줄이 병원행도
▲ 허브란 사람에게 유익한 식물을 총칭하는 단어다. 라벤더, 로즈메리, 박하 등 일반적으로 ‘허브’라고 하면 생각나는 식물들 이외에도 깨, 고추, 더덕 등도 모두 허브라는 개념에 포함된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허브는 약 300여종으로 알려져 있다. ⓒ스카이데일리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그의 머릿속에는 허브를 하루빨리 우리나라에 전파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일본에서 귀국한 이듬해인 1996년 그는 충청남도와 함께 ‘허브를 이용한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향기로운 충북 만들기’라는 주제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우리나라에서 ‘허브’라는 단어가 관공서에 쓰인 최초의 사례로 주목받기도 했다.
“지난 1998년 우리나라에서 허브에 관련된 책을 출간했어요. 출간하자마자 교보문고에서 건강·의학 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폭발적이었지요. 당시 TV 등 언론에도 자주 얼굴을 내비쳤어요”
그는 ‘허브’의 개념을 전파하면서 주변의 오해와 의심의 눈초리로 인해 마음고생을 겪기도 했다. 대표적인 오해는 바로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식물들이 있는데 왜 굳이 해외의 식물을 알리고 다니냐’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는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던 꽃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관세청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허브를 한국에 도입하면서 라벤더, 꽃양귀비 등 해외의 식물들을 들여오긴 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자생 식물들을 허브라는 범주에 집어넣고 효과 등 종류별로 분류하는 것이 더 많았죠”
“한 번은 일본에서 꽃양귀비 씨를 소포로 들여오던 때였어요. 갑자기 관세청에서 연락이 와서 저를 부르더군요. 무슨 문제가 있나 궁금해서 찾아갔더니 꽃양귀비의 ‘양귀비’라는 표현이 문제가 되더라고요”
아편의 원재료가 되는 일반적인 양귀비와는 달리 꽃양귀비는 환각 성분이 전혀 없다. 양귀비와는 다른 종의 식물인데 관세청 직원들이 이를 몰랐던 것이다. 다행히 오해를 풀어 집에 돌아올 수 있었지만, 그는 아직도 그 순간을 가장 아찔할 순간으로 기억했다.
그는 과거 겪었던 고초를 회상하며 라벤더 소주 사건도 추가로 언급했다. 허브의 경우 수 kg의 꽃잎에서 몇 mg의 기름을 짜내는 것이기 때문에 적정량을 먹으면 몸에 이롭지만 지나치게 과용하면 몸에 해롭다. 라벤더 소주의 경우 소주에 라벤더 기름을 한두 방울 넣어서 라벤더 향이 나는 소주로 만들어 먹는 것이 정석이다.
“제 친구들에게 레시피를 설명하고 한 방울씩 타서 만들어 먹으라고 원액을 줬어요. 그랬더니 이 친구들이 많이 먹으면 안 되는 줄도 모르고 기름 원액을 소주 반병만큼 넣어서 1대 1로 섞어서 마셔버렸죠. 결국 그 친구들은 줄줄이 병원 신세를 져야 했어요”
“인체에 유익한 허브 개념 제대로 알았다면 가습기살균제 피해 적었을 것”
▲ 일본에서 처음 허브라는 개념이 생겨난 시기는 지난 1940년대 말이다. 일본 홋카이도 중심부에 위치한 후라노시에서 최초로 라벤더를 심었다. 일본에서도 허브가 각 개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부터다. ⓒ스카이데일리
라벤더 흙을 털어내는 고생이나 관세청에 불려 가는 곤욕보다도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사람들의 무관심이었다. 처음 허브가 대중에 소개될 때는 반짝하고 인기가 있었지만 그것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허브에 대한 관심은 ‘허브가 뭐지’에서 끝났다고 자체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일본처럼 마니아 계층을 만들어내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죠. 하지만 일본 허브의 역사가 지난 1940년대 말부터 시작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 허브의 역사는 이제 20년이 막 넘었기 때문에 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몇 년 전 불거진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을 보면서 그는 허브가 한국사회 저변에 깔려 있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로즈메리’라는 허브의 향에는 살균효과가 있기 때문에 인공 화학제품을 이용하지 않고도 충분히 가습기 살균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허브는 다양한 제품으로 무궁무진하게 활용이 가능한 고부가가치의 사업이에요. 저는 허브를 이용해 비누, 립밤, 스킨로션, 향수 등을 제 스스로 만들어서 사용하죠. 최근 들어 청년창업이 강조되는 창업 열풍이 불고 있죠. 허브야말로 새로운 창업 아이템으로 활용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파인 오일을 들었다. 소나무에서 짜낸 진액인 파인 오일은 살균, 살충, 항염 성분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산지에 널린 것이 소나무인데 정작 파인 오일을 생산하는 시설이 없어서 외국에서 수입하는 신세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꽃 중에 하나인 금불초에서 추출되는 ‘이눌라오일’의 경우 현재 우리나라에서 10ml에 3만원에서 5만원 선에 거래돼요. 왜냐면 전부 수입산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국산 금불초를 이용해 우리나라에서 이눌라오일을 만들면 가격이 현재의 3분의 1 수준에 거래가 가능하죠. 상당히 괜찮은 창업 아이템이죠”
조 교수의 향후 목표는 강원도 강릉에 아름다운 허브정원을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이 감동받을 수 있는 치유공간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이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신이 내린 선물’로 불리는 ‘허브’를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하는 게 그의 최종 목표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