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대구광역시 소재 한 중학교에 다니던 권모 군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경찰 조사 결과, 자살한 권 군은 같은 반 친구인 서모 군과 우모 군 등으로부터 상습적으로 괴롭힘을 당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두 사람은 권 군에게 물고문·구타·금품 갈취 등을 일삼았다. 권 군이 자살 직전 학교폭력을 당한 후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럽게 우는 장면이 CCTV에 녹화됐는데, 이 영상이 대중에게 공개된 후 상당한 파장이 일었다. 결국 서 군과 우 군은 경찰에 구속됐다. 두 사람은 3년~4년형의 징역형을 받았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지난 4월 서울 숭의초등학교 수련회에서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해 여론이 들썩였다. 피해자는 폭력을 당한 뒤 근육세포가 파괴돼 녹아버리는 ‘횡문근 융해증’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피해 학생의 학부모가 학교폭력을 문제 삼자 학교 측이 가해 학생에 대해 봐주기식 조사를 진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학교폭력 근절 대책과 함께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스카이데일리가 학교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진단하고 이에 대한 전문가와 일반 시민들의 반응을 직접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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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시흥시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6학년 김아람(13·가명) 양은 지난해 조퇴가 잦았다. 김 양은 커터칼로 손등과 손목을 긋는 등 자해를 시도하기도 했다. 교실에서 친구들이 많이 모여 시끄럽게 떠들고 있으면 답답하다고 호소하는 일도 잦았다.
김 양의 이 같은 증상은 학교폭력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의 결과로 밝혀졌다. 김 양 부모의 주장에 따르면 김 양은 같은 반 친구 A양 등에게 상습적으로 괴롭힘을 당해왔다. A양 등은 김 양에게 소금을 억지로 먹이는가 하면 꽃 등을 입에 쑤셔 넣은 적도 있었다. 심지어 지우개, 종이 등도 삼키도록 강요했다. 김 양은 A양 등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기도 했다. 치마를 강제로 올렸고, 속옷을 벗기기도 했다.
사건이 알려진 뒤 학교 측은 부랴부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학폭위)를 열어 사태 수습에 나섰다. 학폭위는 피해 학생 학부모가 주장한 10여 가지 폭력 사안 가운데 7가지만 선별하는 데 그쳤다. 심지어 가해학생에게는 피해 학생에 대한 서면 사과 및 접촉·협박·보복행위 금지, 특별 교육 이수 5시간, 학급 교체 등 솜방망이 수준의 처벌만이 가해졌다.
최근 학교폭력 수위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지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는 일이 비일비재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학교폭력 사태를 악화시키는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과거에 비해 연령대도 점차 낮아져 문제의 심각성은 더해지고 있다. 중·고등학교에 국한돼 있던 학교폭력이 초등학교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불안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얼마 전 숭의초등학교 내에서 발생한 학교폭력 사태를 접한 뒤로는 불안감을 나타내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는 실정이다. ‘숭의초등학교 학교폭력 사태’란 여러 학생이 같은반 학생 한 명을 괴롭혀 병원 진단까지 받게 만들었으나 학교 측에서는 이를 알고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했던 사건을 말한다.
사건 이후 학교폭력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에 그쳐선 안 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특히 학교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학폭위가 문제라는 지적도 상당하다. 제 식구 감싸기식 처벌과 전문성 부족 등이 문제점으로 꼽혔다. 학폭위는 지난 2012년 학교폭력 피해자·가해자가 법적 분쟁으로 번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된 제도다.
“사건 덮기 급급한 유명무실 학폭위…제대로 된 대응책 마련 절실”
최근 숭의초등학교 사태 이후 학교폭력에 대한 관리를 더 객관적이고 엄중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숭의초등학교 사태 당시 논란의 쟁점으로 꼽혔던 학폭위 운영 실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내부적으로 형식적인 조사만 진행한 채 봐주기 처벌에 그치는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전문성이 결여돼 있어 가해학생과 그 학부모가 마땅한 처벌을 받기는커녕 사안의 심각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졌다. 힘 있는 학부모 측에 유리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실제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학폭위는 5명에서 10명 이내로 구성된다. 위원 과반수는 학부모 전체회의에서 선출된 학부모 대표가 채우고 있다. 경찰이나 변호사 등도 참여할 수 있지만 의무사항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은 학부모나 학교 내부 인사들로 채워진다.
학교폭력을 저지른 가해학생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이유로는 학교와 학부모들의 안일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학폭위 운영이 우선적으로 꼽힌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한 관계자는 “일선 학교에서는 학폭위 구성도 매뉴얼대로 제대로 하기 힘들다고 말하고 있다”며 “학폭위에 위촉된 학부모들도 ‘애들 장난인데’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학폭위가 열릴 때 학교 측이 경찰 쪽에 연락하면 바빠서 못 간다고 하기 일쑤고 변호사들은 최소한의 비용을 요구하는 실정이다”며 “일선 교사들은 법적인 부분을 잘 모른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등 상당히 안일하게 학폭위가 운영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교육청에서 학교폭력 관련 변호 업무를 맡고 있는 정현실 변호사는 “원칙적으로 학교폭력예방법상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학교 내부에서 먼저 검토를 해보라고 하기 때문에 전문성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며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학폭위가 말 그대로 ‘자치위원회’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고 꼬집었다.
정 변호사에 따르면 학폭위에 의해 처벌 수위가 결정될 경우 대부분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기 일쑤다. 하지만 학폭위 진행이나 결정에 따르지 않고 민사사건으로 진행하면 오히려 학교폭력 근절에 도움 될 가능성이 크다. 처벌 수위가 높기 때문이다. 우선 보호·감독의 의무가 있는 가해 학생의 학부모에게는 배상 책임이 있다. 가해 학생 교사에게도 같은 처벌이 내려질 수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만난 학부모들 중 상당수도 학폭위를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학교폭력 사건 만큼은 경찰 등 제3자에 의해 조사돼야 한다는 주장도 피력했다.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두고 있는 김현진(38) 씨는 “최근 숭의초 학교폭력에 대해 학부모들 사이에서 우리 아이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오가고 있다”며 “학교폭력 사건이 벌어지면 곧장 경찰에게 넘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씨는 “가해학생 학부모의 손해 배상 선에서 끝내는 것도 문제다”며 “자칫 ‘돈 이면 다 된다’는 인식을 갖게 될 수 있으니 학교폭력 가해 학생, 혹은 부모에 대한 강력한 처벌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키우는 정광열(32) 씨는 “요즘은 어린 초등학생 간에 학교폭력 문제가 더욱 끔찍한 것 같다”며 “학교폭력 문제는 단순히 학생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경찰·변호사 등이 사건을 중재하거나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학교폭력 심각…중·고등학생 피해사례 합한 것보다 많아
교육청이 발표한 ‘2017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폭위의 심의 건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초등학생들은 중·고등학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피해율을 보이고 있다. 이번 조사는 지난 3월 20일부터 4월 28일까지 6주 동안 실시됐으며 전국 초등학교 3년학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총 419만명이 참여했다.
조사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응답한 학생은 약 3만7000명(0.9%)에 달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초등학생의 피해 사례가 중·고등학생 피해사례를 합한 것보다 많았다. 학교폭력을 저지르는 연령이 점차 어려지고 있는 셈이다.
피해 응답률을 살펴보면 △초등학교 약 2만6400명(2.1%) △중학교 약 6300명(0.5%) △고등학교 약 4500명(0.3%) 등이었다. 학교에서 폭력을 목격한 비율도 초등학교가 가장 높았다. 학교별 피해 목격 응답률은 △초등학교 5.3% △중학교 1.7% △고등학교 1.1%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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