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에서 주로 나타났던 ‘팬덤(스타를 쫓는 팬들의 무리) 현상’이 최근 정치권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팬덤은 ‘광신자’를 뜻하는 영어의 ‘fanatic’의 앞글자 ‘fan’과 ‘영지(領地) 또는 나라’를 뜻하는 접미사 ‘dom’의 합성어다. 특정한 인물(특히 연예인)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거나 몰입해 그 속에 빠져드는 사람을 일컫는다.
정치권의 팬덤 현상은 일반적으로 특정 정치인의 활동을 지원·지지하는 방식으로 주로 나타난다. 해당 정치인의 이념과 목표 등에 무한한 추진 동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일례로 지난 2000년 등장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팬클럽인 ‘노사모’는 대중이 참여한 우리나라 최초의 정치 팬덤으로 인식된다. 노사모는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의 줄임말로 2002년 16대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의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해낸 것으로 평가 받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팬클럽인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는 팬덤 문화를 정치 영역으로 확장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단체로 꼽힌다. 박 전 대통령의 처음 취임 당시부터 국정농단 사태로 인한 탄핵정국 돌입, 탄핵 결정 이후까지 박사모의 활동은 꾸준하게 이어졌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팬덤 ‘홍준표 팬클럽’,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팬덤 ‘안사모’, 유시민 바른정당 의원의 팬덤 ‘유심초’,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의 팬덤 ‘심크러쉬’ 등도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는 정치 팬덤으로 꼽힌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문팬’이라는 거대한 팬덤을 거느리고 있다. 문팬은 문 대통령 최대의 팬덤으로 ‘문사모(문재인을 사랑하는 모임)’와 ‘문재인 변호사를 사랑하는 모임’이 합쳐져 탄생한 단체다. 문팬 역시 제19대 대선에서 문 대통령 당선에 큰 역할을 해낸 것으로 평가된다.
맹목적 지지, 비난 위험, 이분법적 논리 등 ‘위험한 정치 팬덤’
정치 팬덤은 특정 정치인에게 있어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해내지만 부작용도 상당해 최근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맹목적인 신뢰와 타 정치인에 대한 비판 그리고 ‘너 아니면 안 돼’라는 인식 등에서 발현하는 ‘흑백논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정치 팬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결정적 배경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19대 대선부터 문 대통령을 지지했다고 밝힌 신승현(여·23) 씨는 정치 팬덤에 대해 “정치인을 지지하며 정책 실현 추진에 힘을 보태는 존재다”고 말했다. 신 씨는 “정치인을 지지함으로써 해당 정치인의 인지도 상승을 돕는 역할이 크다”며 “해당 정치인의 신념적 진화를 돕고 그 세력을 확장해 정책 실현에 도움을 주는 것이 정치 팬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신 씨는 지금까지 정치 팬덤은 부정적인 모습을 더 많이 보였다고 지적했다. 신 씨는 “정치 팬덤에서는 지지하는 후보 이외에 타 정치인을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크다”며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위해 비도덕적인 행위를 조직적으로 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신 씨는 더불어민주당의 지난 대선 후보자 경선 당시 문재인 팬덤의 ‘안희정 팬덤 죽이기’와 국민의당의 ‘문준용 씨 취업 특혜 제보 조작 사건’ 등을 단적인 예로 제시했다. 그는 “정치 팬덤은 인물에 대한 정치적 판단을 더욱 심화시킨다”며 “새로운 정치인의 정계 진출에 걸림돌이 되고, 지역주의·연고주의와 같은 특정 인물·계파 문제를 더 강화하는 현상을 만든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많다고 밝힌 권오선(남·25) 씨는 정치 팬덤을 자발성·적극성을 가진 집단이라고 규정했다. 권 씨는 “각 정치인의 매력과 이념을 중심으로 뭉친 것이 정치 팬덤이다”며 “자신들의 지향성과 가치를 정치인을 통해 사회에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 정치 팬덤의 장점이다”고 설명했다.
권 씨 역시 맹목적인 지지와 성원이 정치 팬덤의 가장 큰 맹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 팬덤의 열정이 변질되면 해당 정치인이 하는 행위를 무비판적으로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며 “심지어 지지자 본인들에게 손해가 되는 정치적 결정을 하더라도 지지를 보내는 왜곡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맹목적인 지지가 자신과 성향이 다른 정치인 등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가하기도 한다”며 “정치 팬덤이 변질되면 다양성이 존중되고 적극적인 토론이 이뤄지지 못해 사회의 건전성까지 훼손된다”고 꼬집었다.
실명 밝히기를 거부한 ‘2030 박근혜 지지모임(가칭)’의 대표는 정치 팬덤을 통해 지지세력 규합이 가능하다는 점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상황이 좋지는 않지만 청년 조직을 창설해 우파 유명인들과 연계하고 있다”며 “이념교육, 현 상황 교육 등을 통해 지지세력을 규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기성 정치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것 역시 정치 팬덤의 장점이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정치 팬덤 활동을 통해 정계로 진출하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과 너무 많은 팬덤이 난립하는 것을 경계했다. 해당 단체 대표는 “정치 팬덤의 대표로 활동하거나 주요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기존 정치권이 스카우트를 제의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순수한 목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 사회의 당연한 현상 정치 팬덤…무분별한 활동은 규제 필요”
스카이데일리가 만난 정치 팬덤에서 활동하거나 이를 지켜보는 이들은 “자발적으로 모이는 정치 팬덤을 막을 수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정치 팬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현상으로 여겨진다”면서 “다만 정치 팬덤 활동에 있어서 자기성찰의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력 정치인의 지지단체 관계자는 “우리 스스로도 무분별한 비판, 이분법 논리 전개 등의 문제를 알고 있다”며 “아무래도 정치인을 중심으로 모인 단체이다 보니 맹목적인 팬심 위주의 활동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스스로도 자정적인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며 “앞으로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에 충실해 하겠다”고 말했다.
박주희 바른시민사회 실장은 팬덤 현상이 정치 영역까지 넓어진 것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박 실장은 “정치 팬덤 활동의 근원은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이 아닌 한 인간을 좋아한 것이다”며 “이에 맹목적인 지지가 표출되는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박 실장은 “이러한 정치 팬덤은 건전한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크다”며 “이는 갈등을 조장하고 여론을 분열시키는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 팬덤에도 자기성찰의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며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합리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해야한다”고 주문했다.
[조성우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