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1400년 역사를 지닌 있는 국보 제31호 첨성대에 기어 올라가 기념사진을 찍던 여대생 3명이 경찰에 붙잡히는 황당한 일이 있었다. 이들의 어이없는 행태는 시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저지되긴 했지만 자칫 ‘국가의 보물’이 훼손될만한 아찔한 사고였다. 당시 그들은 술에 취한 상태였던 것으로 경찰 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그들은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출입금지구역을 출입한 이들의 혐의사실이 입증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 처해진다. 그런데 최근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된 문화재보호법이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인위적인 문화재 훼손 문제가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처벌 수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실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거나 등재가 추진 중인 문화재 곳곳에서는 이 같은 목소리가 불거져 나온 이유가 여실히 드러나 있는 상태였다. 사람에 의한 훼손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스카이데일리가 문화재 관리 실태를 점검하고 인위적인 훼손 문제와 이를 둘러싼 주변의 반응 등에 대해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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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만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우리 문화유산이 부족한 시민의식으로 훼손되는 등의 사례가 이어지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문화재의 경우 한 번 훼손되면 원상복귀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유로 적극적인 계몽활동과 더불어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쓰레기 투기는 기본, 밟고 올라서고 낙서하기도…문화재의 고충
오는 2020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추진 중인 사적 10호 한양도성은 도심에 위치한 탓에 많은 시민들이 찾는 서울의 명소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하지만 시민들에 개방된 도성 곳곳에서는 볼썽사납고 위험한 광경이 어렵지 않게 목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관광객들이 성벽에 올라서 뛰는 등 위험한 행위가 이어지고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늦은 시간이 되면 성벽에 걸터앉아 도심 야경을 안주삼아 맥주 한 캔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 또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거주하는 김베드로(68)씨는 “낮보다는 야경을 보기 위해 밤에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편인데 성곽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자주 목격된다”며 “심지어 젊은이들 여러 명이 성곽 위에 걸터 앉아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볼 때도 있다”고 말했다.
낙산공원 한양도성에는 ‘성곽 위에 올라가지 마십시오’라 적힌 현수막과 ‘한양도성을 아껴주세요’라는 안내 표지판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그동안 이들 경고문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음을 방증하는 결과물이라고 일대 주민들과 낙산공원을 찾는 이용객들은 입을 모았다.
일부 경고문에는 ‘낙서·훼손 등 문화재를 손상하는 행위가 적발될 경우 문화재보호법에 의거 3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1억50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문구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평일 낮 시간대에도 이를 어기는 시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낙산공원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문제발생 시 즉각적으로 주의를 주지만 실제적으로 처벌을 할 순 없다”고 토로했다. 서울시 한양도성도감과 관계자 역시 규정의 한계점을 인정했다. 그는 “CCTV로 24시간 모니터링 하면서 경고방송을 주기적으로 하고 있지만 사각지대가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이들을 법적으로 제제하려 해도 고의성 입증이 쉽지가 않다”고 토로했다.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화성…낙서·쓰레기 몸살 “노력하고 있지만 한계 있어”
스카이데일리는 직접 2014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남한산성을 찾았다. 한양도성보다 규모가 큰 경기 수원시 ‘화성’과 광주시 ‘남한산성’의 경우 관광객 통제가 더욱 허술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주 출입문인 지화문(남문)을 비롯해 우익문(서문)과 전승문(북문) 기왓장·기둥 곳곳에는 낙서가 새겨져 있었다. 특히 지화문의 경우 손이 닿는 거의 모든 곳에 낙서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방문객들은 혀를 내둘렀다. 남문에서 만난 최상규(54·남)씨는 “당연히 보기 좋지 않다”며 “주의 문구 하나 표시돼 있지 않으니 아무 거리낌 없이 낙서를 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처벌규정을 강화해 외국처럼 벌금을 많이 받아내서 그 돈으로 문화재를 보수하거나 관리하는 데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다.
평소 남한산성을 자주 찾는다는 김성규(64·남·가명)씨는 “보수를 한다하더라도 시민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또 다시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게 분명하다”며 “홍보활동을 통해 문화재를 소중히 여기도록 정부가 노력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남한산성도립공원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2000년대 이전 낙서가 대부분이다”며 “CCTV를 설치해 관리한 이후에는 낙서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안내 문구를 설치하는 것은 예방차원에서 효과적이긴 하겠지만 세계문화유산이기 때문에 절차가 복잡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스카이데일리가 직접 지화문부터 우익문을 거쳐 전승문까지의 실태를 점검한 결과, 200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낙서들도 상당수 발견됐다. 총안(총포를 사격할 수 있도록 내놓은 구멍)에는 관광객들이 무심코 버리고 간 쓰레기가 절묘하게 끼어 있었으며 길목 곳곳에는 등산객이 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사탕껍질이 눈에 띄었다.
‘수원화성’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성벽 곳곳에는 낙서가 가득했다. 낙서의 내용 또한 가지각색이었다. 연인들 간에 사랑의 흔적부터 이름과 다녀간 날짜, 앞으로의 희망 등이 적혀 있었다.
강정자(58·여·가명)씨는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낙서를 하는 것도 이곳을 자주 찾는 수원시민들이 은근히 더 많이 하는 것 같다”며 “화성이 은근 넓어 사람이 드문드문 다니다 보니 관리가 더 안 되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수원시화성사업소 관계자는 “순찰을 돌고 CCTV로 감시를 하고 있지만 이미 낙서를 해버렸으면 실제로 낙서한 사람을 찾아서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며 “범인을 잡더라도 그 중에는 아이들이 많아 처벌 보다는 훈방 조치로 마무리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문화재 낙서 벌금, 일본 310만원 중국 800만원…예산 부족·인력 부족 어려움 호소
취재 중 만난 각 명소의 방문객들은 처벌규정을 강화하는 것이 예방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입을 모았다. 시민의식 개선을 위한 계도 또한 병행돼야 하지만 단기간 내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이만한 것이 없다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해외의 경우 문화재 훼손에 대한 처벌 수위가 높은 편이다. 일본에서는 국가중요문화재에 낙서를 하면 문화재보호법위반으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0만엔(한화 약 310만원)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오랜 기간 만리장성의 낙서로 골머리를 앓아 온 중국 정부 역시 2006년 ‘장성보호조례’를 공포했다. 조례에 따르면 장성에 낙서를 하다 적발될 경우 1만위안(약 170만원)에서 최고 5만위안(약 800만원)의 벌금을 내야한다.
지난 2014년 이탈리아는 로마의 상징으로 불리던 콜로세움에 낙서를 새긴 관광객에게 이탈리아 사법당국은 2만유로(약 2700만원)에 달하는 벌금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우리 문화재보호법에도 3년 이상의 유기징역과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처벌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양희제 경주대학교 문화재보존학과 교수는 “문제는 문화재보호법이 제일 하위법위이라는 점이다”며 “대부분 나이가 어린 경우가 많다보니 훈방조치 되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양 교수는 “벌금 규정 강화하는 것도 좋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의식을 계도하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유은주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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