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자리한 ‘개미마을’은 6·25 전쟁 이후 갈 곳이 마땅치 않은 가난한 사람들이 인왕산 중턱에 모여 천막을 치거나 판자를 엮어 살기 시작하면서 처음 만들어졌다. 이후 1960년대 말부터 지방 이주민들이 몰려오면서 마을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곳은 과거 옹기종기 들어선 천막집들이 서부영화에 나오는 인디언 마을 같다고 해서 ‘인디언촌’으로 불렸었다. 1983년 ‘개미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는 의미로 ‘개미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달동네 가운데 한 곳인 개미마을은 좁고 구불구불한 아스팔트길 양 옆으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허름한 집들이 촘촘히 모여 있는 형태로 돼 있다. 과거 이곳은 명소로 조명 받으며 시민들의 관심을 받았던 적 있다.
지난 2009년 건국대·상명대·성균관대·한성대·추계여대 등 5개 대학의 미술전공 대학생 128명이 금호건설과 함께 진행한 ‘빛 그린 어울림 마을’ 프로젝트를 통해 개미마을 곳곳을 벽화거리로 바꾸어 놓은 덕분이다. 게다가 엄청난 흥행을 일으킨 영화 ‘7번방의 선물’에서 주인공이 살던 동네로 소개되면서 관광객의 발길은 더욱 늘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 어느 곳에도 생기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열악한 주거환경과 관할 지자체의 무관심, 연이은 재개발 사업 무산 등으로 주민들의 얼굴에는 근심만이 가득했다. 이곳 주민들은 “벽화에 가려져 겉은 그럴싸하지만 속은 곯아버린 마을이다”는 푸념 섞인 말을 내뱉었다.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지워진 벽화는 이곳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음을 고스란히 대변했다. 개미마을에서 15년째 거주하고 있는 박만수(58·남) 씨는 “벽화가 생기고 난 후 한동안은 사람들도 찾아오고 마을 분위기도 살아나는 듯 했는데 서울시나 관할구청이 사후 관리는커녕 유지, 보수도 안 해주니 벽화 칠이 다 벗겨져 이제는 흉물스러워 졌다”고 토로했다.
개미마을의 자랑 벽화, 관리 부실로 흉물 전락…재개발 무산에 주민들 ‘자포자기’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을을 오르내리는 ‘서대문07’ 버스 기사 변현주 씨는 “겉으로 보기에는 벽화도 그려져 있고 아스팔트도 깔려 있으니까 살기 좋은 동네처럼 보이는데 실상은 다르다”며 “외부에서는 마을 속이 썩은 걸 모르고 외관만 보고 판단해버리니까 도시재생이든 재개발이든 뛰어들 생각도 안 한다”고 설명했다.
홍제3동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여기 마을에 지어진 집들은 대개 60~70년 지난 노후한 주택들이이라 당장 올 겨울에 폭설이 오거나 내년 여름에 장마, 태풍이 오면 도미노처럼 집들이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며 “미관상 예뻐 보이게 벽화도 그려놓고 했지만 정작 주민들의 안전은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가스도 안 들어올 정도로 열악하고 일부 집에는 화장실도 없어서 공용화장실을 이용해야 할 정도로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며 “거주민 대부분이 독거노인이나 기초생활수급 대상자, 일용직 노동자들인데 이들은 집에서도 맘 놓고 쉴 수 없을 정도다”고 안타까워했다.
개미마을은 서울의 다른 달동네와 마찬가지로 재개발 문제로 수십 년 째 주민들 간에 갈등이 이어진 지역이다. 안정적인 주거생활 마련을 위해 재개발을 해야 한다는 입장과 개미마을 특유의 분위기를 보존하기 위해 문화특구로 지정해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왔다.
철근 구조물 없이 벽돌을 쌓아 만든 집들은 60~70년이 지난 현재, 외형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매번 선거철이 되면 후보자들은 개미마을을 찾아 재개발을 약속하고 돌아가지만 여전히 이곳은 모래위의 성처럼 위태로운 모습이다.
개미마을 재개발 장애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은 사업자 선정에도 애를 먹었다. 수익성 때문이었다. 앞서 개미마을은 2008년 12월 자연녹지지역(그린벨트)이 해제되면서 제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용도가 변경됐다. 제1종 일반주거지역의 경우 법적으로 4층 이하 단독주택·공동주택만 지을 수 있다.
2009년 2월 서울시 산하 도시건축공동위원회가 제1종 지구단위계획안을 통과시키면서 본격적인 재개발 사업에 착수했다.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됐던 재개발 사업은 ‘높은 언덕에 저층 주거단지를 마련하는 것만으로 수익을 낼 수 없다’며 개발 사업자가 나서지 않으면서 일이 꼬이지 시작했다.
개발 사업자들은 산을 깎아 대대적인 공사를 통해 새로운 연구단지 및 주택단지 건설을 원한 반면 주민들 일부는 자신들의 터전을 유지·보수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온전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재개발 사업은 무산됐다. 주민들도 역시 재개발을 포기했다.
비닐로 씌워진 물새는 지붕, 노인들의 마지막 보금자리 ‘흉물 방치’
3년 전 마을로 이사 온 이양임(가명·83·여) 씨는 “여기는 서울 중에서도 땅값이 가장 싼 곳으로 알려진 마을이다”며 “어쩔 수 없이 살고는 있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정말 살고 싶지 않은 동네다”고 말했다.
임 씨는 “현재 전세금 2000만원짜리 주택에 살고 있다”며 “올 여름 장마기간 동안 지붕에서 물이 샜지만 보수를 할 수 없어 임시방편으로 비닐을 지붕에 덧대서 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개발이 되서 몇 안남은 동네 노인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보금자리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마을에서 50여 년째 거주하고 있는 고석종(66·남) 씨는 “재개발에 대한 기대조차 없다”며 “아스팔트 깔아준 걸 되게 선심 쓴 것처럼 홍보하던데 이건 세금 냈으니까 당연히 해줘야 하는 부분이다”고 말했다. 고 씨는 “재개발을 하든 도시재생을 하든 여기를 살리겠다고 하면 파격적으로 뭔가를 단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가장 먼저 나서줘야 하는 지역이 개미마을 같은 달동네인데 도시재생사업에 서울 전체가 빠진 부분이 아이러니하다”며 “주민들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보면 정부도 잘못 판단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개미마을은 평당 공시지가가 460만원 정도로 책정돼 있는데 효용가치가 없다보니 실제는 더 낮게 거래되는 곳이다”며 “공익적 가치로 접근해 정부가 직접 나서든지, 아니면 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들 수 있게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주든지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서대문구청 도시관리과 관계자는 “주민들 간의 온전한 합의가 이뤄져야 재개발이든 도시재생이든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 있는데 마을 주민들 간에도 이견을 보이고 있어 구조적으로 재개발을 하기가 어렵다”며 “정부가 나서서 공용개발을 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개미마을을 살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배수람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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