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모든 어머니는 4개의 등급으로 구분된다는 말이 있어요. 1등급은 남편이 살아있는 어머니, 2등급은 남편과 사별한 어머니, 3등급은 남편과 이혼한 어머니, 4등급은 남편이 아예 없는 어머니죠. 미혼모가 어머니 중 가장 낮은 등급인 셈이죠”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지하철 1호선 대방역 인근에 위치한 카페 인트리에서 만난 최형숙(45·여) 대표는 변화된 미래를 만드는 미혼모협회 ‘인트리’를 이끌고 있다. 서울시에 등록된 비영리 민간단체인 인트리는 한자 ‘사람인(人)’과 나무를 뜻하는 영어 단어 ‘트리(tree)’를 합친 단어다. ‘한 사람이 한 아이를 큰 나무로 기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실직, 폐업 등 미혼모 낙인에 생계까지 위협…산 속 도피생활 결심도
미혼모를 위한 단체를 이끄는 최 대표 역시 미혼모다. 미용사로 일하면서 한창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그의 나이 34살이었다. 주변에서 극구 만류했지만 끝내 그녀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고, 임신 7개월 째에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최 대표는 출산 후 다른 미혼모들과 마찬가지로 모진 고초를 겪었다.
“제 아이가 태어난 2005년까지만 해도 국가의 미혼모를 위한 지원이나 시설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어요. 직장에 다니면서 벌어놓은 돈으로 아이가 첫돌이 될 때까지 살았어요. 하지만 1년이 지나자 집 보증금 정도를 빼고는 수중에 남아 있는 돈이 없더라고요”
아이를 난지 약 1년여가 흘렀을 때 최 대표는 다시 직장을 구했다. 유능한 미용사였던 최 대표는 그녀의 사정을 알고 있던 사장님 덕분에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취직한 지 1년 반 정도가 흘렀을 때 최 대표는 우연한 기회에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미용실로 이직하게 됐다.
“제가 미혼모라는 사실을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 했어요. 더 좋은 월급과 조건을 제시하는데 안갈 이유가 없었죠. 하지만 새 직장으로 옮긴지 4일 만에 손님의 입을 통해 제가 미혼모라는 사실이 새 미용실에 알려졌어요. 결국 6일 만에 새 직장을 관두게 됐죠”
미혼모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남부럽지 않은 능력을 갖추고도 직장을 관두게 됐다는 사실에 최 대표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사회에 대한 혐오감까지 생겨나게 됐다. 상실감을 느낀 그녀는 1달여 동안 아이와 함께 경기 포천시에 위치한 한 야산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산 속에서 생활을 하다가 하산을 하고 1년 정도 프래랜서로 생활 했어요. 프리랜서로 지내던 도중 우연히 미용실 인수의 제안을 받게 됐죠. 결국 지난 2008년 은평구에 위치한 한 미용실을 인수하게 됐어요. 이제 내 미용실을 가지게 됐으니 잘릴 일도 없고 편해지나 했지요. 하지만 또 다시 위기가 찾아 왔어요”
최 대표가 한 언론과 진행한 인터뷰가 문제가 됐다. 익명을 처리해달라는 요청에 이름과 얼굴을 모두 가리긴 했지만 인터뷰 전후 사정을 보면 최 대표라는 것이 알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결국 미혼모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손님들이 하나 둘 끊기기 시작했다. 결국 2009년 자신의 이름을 내 건 미용실을 폐업해야만 했다.
“‘세상이 이렇구나’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계기였죠. 제가 시민단체 활동을 시작한 시기도 바로 그때부터 였어요. 미혼모들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을 바꾸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뼈저리게 느꼈죠”
최 대표는 지난 2009년 우리나라 최초의 미혼모 당사자 단체격인 ‘한국미혼모가족협회’ 설립에 참여했다. 미혼모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그들을 직접적으로 후원해주는 단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단체 활동을 오래하진 못했다. 아이의 양육 때문이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인 8살이 됐어요. 아이에게 더 집중하기로 하고 기존의 활동을 관뒀죠.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는 등 아이를 위해서 시간을 투자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렀죠. 아이가 어느 정도 학교생활에 정착할 때쯤 다시 단체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새로운 단체를 결성했어요. 그게 지금의 인트리에요”
최 대표는 원래부터 활동하던 단체로 돌아가지 않고 새로운 단체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기존에 활동하던 단체의 활동 방향이 최 대표가 바라던 활동방향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던 탓이다. 최 대표는 미혼모 어머니들을 단순한 지원 대상으로 보는 것에 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었다. 스스로 자립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편견에 생계 위기 처한 미혼모 다수…끼니까지 거르는 사례도
“인트리가 비영리민간단체로 정식 등록된 시기는 지난 2013년이에요. 처음 시작할 때 회원수는 9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약 200명의 회비를 내는 회원이 있어요. 인트리는 모든 미혼모들에게 열려있죠. 네이버에 운영하는 카페 회원 수는 약 600명 가량입니다”
최 대표는 현재 우리나라 미혼모들은 사회적인 편견으로 인해 의식주와 노동권 등 인간으로써의 마땅한 권리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아쉬워했다. 노동권의 경우 최 대표가 수차례 경험한 것처럼 사회적인 편견으로 인해 제대로 된 직장 생활을 할 수 없는 게 사례로 꼽혔다.
“직장생활을 할 수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경제활동이 불가능해지게 되요. 직장도 월급이 낮은 열악한 곳으로 다닐 수밖에 없고요.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못하고 굶은 엄마들이 늘고 있어요. 돈을 벌어도 주거비용으로 대부분이 나가고 적게 남는 돈도 아이들 분유 값으로 우선해서 쓰다가 보니 정작 본인들 챙길 여력이 없는 것이죠”
‘인트리’는 미혼모들을 위해서 상담, 인식개선운동, 교육사업, 네트워킹사업, 자립지원 사업, 제도개선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인식개선운동의 일환으로 SNS를 통해 미혼모에 대한 인식 개선의 내용을 홍보하거나 뮤지컬을 제작한다. 또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중고등학교 등에서 어머니와 가족의 역할에 관한 성교육을 진행하거나 갓 출산한 미혼모를 대상으로 육아교육을 시키기도 한다.
“자립지원사업으로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어요. 사회단체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동작구의 도움을 받아 직접 카페를 운영하고 있지요. 카페 이름도 단체이름을 따서 카페 인트리라고 지었어요. 저는 미혼모들이 자립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을 많이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최 대표는 앞으로 미혼모라는 이슈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사회복지적인 측면에서만 미혼모를 바라본 탓에 지원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 것 자체가 잘못된 접근이다. 최 대표는 인트리를 통해 앞으로 연구소를 만들어 인문학을 기반으로 미혼모에 대한 자체적인 연구를 추진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미혼모라는 키워드가 제시되면 정부뿐 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양, 낙태 등의 키워드를 먼저 떠올려요. 최근 저출산 문제의 해결책으로 미혼모 지원이 떠오르면서 저출산 역시 미혼모에 따라오는 키워드가 됐죠. 정작 미혼모 입장이 돼 보면 마치 아이를 낳는 도구처럼 여기고 있다고 느껴져 상당히 기분이 나쁘죠”
최 대표는 지금까지 미혼모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나서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들이 어머니였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자신의 활동이 아이의 앞날을 가로막을까봐 두려워서 제대로 활동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미혼모도 분명 한 아이의 어머니에요. 직장·가정 등 어디에서든 자신의 몫을 해낼 수 있는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죠. 미혼모 스스로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고 지역사회에서부터 조금씩 미혼모들이 영역을 넓혀나가는 것을 앞으로도 꾸준히 도울 계획이에요”
[이경엽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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