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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시각장애인 골퍼 조인찬
“성공한 사업가에서 맹인골퍼로 제2인생 살죠”
양쪽 시력 잃은 뒤 8년간의 암흑기…골프 접한 후 그랜드슬램 쾌거
배수람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17-10-03 00:01:49
 
▲ 조인찬(사진) 씨는 지난 1988년 황반변성으로 오른쪽 눈을 잃은 뒤 12년 후인 지난 2000년 나머지 왼쪽 눈 시력 마저 잃었다. 평소 스킨스쿠버, 스키, 사격 등 레저 활동을 많이 즐겼던 조 씨는 양쪽 눈의 시력을 잃은 뒤 크게 낙담했지만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장애인 골프 선수에 도전, 마침내 ‘그랜드슬램’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비즈니스 목적으로 처음 골프를 시작했어요. 35살의 젊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하다 보니 거래처 관계자인 50~60대 중·장년층과의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죠. 그 때 생각해 낸 방법이 바로 골프였어요. 그 때 처음 접한 골프는 저에게 제2의 인생을 가져다 주는 계기가 됐죠”
 
서울시 서초구의 한 실내골프장에서 만난 조인찬(65·남) 씨는 양쪽 시력을 모두 잃은 시각장애인이다. 돋보기를 이용해야 간신히 피사체가 어디 있는지 정도의 시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조 씨는 타인의 도움 없이 혼자 지하철을 타고 직접 인터뷰 장소까지 찾아왔다며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말쑥한 정장 차림에 연신 인자한 웃음으로 일관한 조 씨는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신감에 가득차 있었다. 그는 스카이데일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걸어온 길과 그 과정에서 겪은 역경, 좌절을 딛고 일어선 원동력 등을 술회했다.
 
장애 8년 만에 다시 잡은 골프채…첫 국제대회 이어 그랜드슬램 ‘쾌거’
 
일찍이 사업을 시작한 조인찬 씨는 30대 젊은 나이에 개인 운전기사를 둘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그 과정에서 영업 활동의 일환으로 골프를 접하게 됐다. 이후 그는 아마추어 선수와 견주어도 손색없을 정도의 골프 실력을 갖추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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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1988년 ‘황반변성’이라는 질환으로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게 됐다. ‘황반변성’은 눈 안쪽 망막 중심부에 있는 황반부에 이상이 생겨 시력장애가 생기는 질환이다. 일단 걸리게 되면 시력감퇴는 물론 심할 경우 시력을 완전히 잃기도 하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노화·유전·독성·염증 등이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뚜렷한 발병 원인은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결국 조 씨는 오른쪽 눈 시력을 잃고 말았다. 다른 왼쪽 눈 역시 황반병성 발병 가능성이 예상된 점은 그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남은 왼쪽 눈이라도 지키자는 생각으로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조 씨는 세계 최고 안과 권위자이자 오늘날 라식·라섹 수술을 있게 한 근시교정수술의 창시자 ‘스뱌토슬라프 표도로프’ 박사를 찾아가 목숨을 건 임상치료를 받았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는 2000년 2월 나머지 왼쪽 눈의 시력도 잃게 된다. 나머지 왼쪽 눈의 시력마저 잃은 그는 2005년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중심시력(물체를 명확하게 볼 수 있는 시력)은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나마 남은 주변시력(물체의 희미한 형태만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시력) 덕분에 돋보기를 활용하면 희미하게나마 피사체를 구분할 수 있다.
 
▲ 황반변성으로 두 눈의 시력을 모두 잃은 조인찬(사진) 씨가 다시 골프채를 잡게 된 건 우연한 기회였다. TV뉴스를 통해 국내에서 시각장애인 골프대회가 열렸다는 소식을 접한 조인찬 씨는 다음날 바로 협회를 찾아 블라인드 골프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스카이데일리
 
“왼쪽 눈만 가지고도 사업을 잘 이끌어 갔어요. 그런데 양안이 온 뒤로는 더 이상 사업을 지속해나갈 방법이 없더라고요. 스스로 약점을 숨기려다 보니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짜증이 많아졌죠. 화가 늘고 별 것 아닌 것에도 트집을 잡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죠.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마무리했죠. 그날 이후 골프도 머릿속에서 지웠어요. 이제 제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사업을 완전히 접은 이후 8년간은 바깥 활동을 일체 하지 않았다. 동이 트기 전 새벽녘에 집을 나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날의 연속이었다. 낯선 곳에서 허기를 채우고 해가 뉘엿뉘엿 진 뒤 사람들 발길이 뜸해지면 녹초가 돼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다.
 
“8년은 그야말로 암흑기였어요. 어떻게 하면 고통 없이 잘 죽을 수 있을 지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2007년에 우연히 뉴스를 듣는데 국내에서 시각장애인 골프대회가 열렸다고 하더라고요. 갑자기 심장이 뛰었어요. 그길로 협회에 전화해 다음날 골프연습장에서 블라인드 골퍼들과 만났어요. 제2의 인생이 시작 된 거죠”
 
후천적 장애로 시각을 잃은 조 씨는 동료 골퍼들에게 도움을 주고 골프를 지도하기도 하면서 정상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2008년 4월에는 일본에서 열린 JBGA(Japan Blind Golf Association) 대회에 초청선수 자격으로 출전해 4위 선수와 같은 성적(비공식)을 기록했다. 이후 그는 2008년·2011년 호주 대회 우승 이후 2012년 캐나다, 2015년 미국, 지난해 영국까지 블라인드 골프계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골프를 다시 접한 그 순간 ‘앞으로 내가 할 일은 이거다’ 싶더라고요. 지난 8년 동안은 스스로 존재 가치를 모르겠고 자생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하찮게만 여겨졌었어요. 골프를 다시 시작한 뒤로 사는 동안만큼은 잘 살자는 마음을 가지게 됐어요. 그때부터 주위 시각장애인들을 둘러봤죠. 저보다 힘든 시각장애 환우(患友)들이 보이더라고요. 나보다 그들을 위해 살자고 생각했어요.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니까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기더라고요. 그들을 통해 희망을 얻고 동시에 그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었죠”
 
비장애인 시절보다 행복한 ‘마음부자’…황반변성 환우들 손·발 역할 앞장
 
조인찬 씨는 만약 다시 시력을 되찾게 된다면 가장 먼저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손자를 보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바에 시력을 잃은 상황에서도 행복을 찾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젊을 때 저는 굉장히 교만했어요. 청소부, 아파트 관리인, 골프장에서 일하는 캐디, 지하철 노숙자 등 타인을 돌아보기는커녕 무시했었어요. 당시 나이에는 만질 수 없는 돈을 수중에 쥘 정도로 부유했지만 주위 사람에게 1000원짜리 음료수 한 잔 뽑아줄 마음이 없었거든요. 시력을 잃고 베푸는 법을 배웠어요. 돌이켜보면 그때 저는 삭막했고 가난했어요. 하지만 지금의 저는 마음이 풍요로운 부자가 됐다고 생각해요”
 
장애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이후 조 씨는 같은 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들의 손·발을 자처하고 나섰다. 운동량이 적어 당뇨 합병증이 많은 시작장애인들을 위해 당뇨식을 배달하거나 매주 로또를 구매하는 환우를 위해 함께 편의점을 가는 일, 지방에 갈 일이 있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서울역에서 기차표를 끊어주는 일 등은 그의 소일거리이자 일상의 기쁨으로 자리했다.
 
▲ 조인찬(사진) 씨에 따르면 중심시력이 사라지고 주변시력만 남는 맹인의 경우, 자신의 장애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시각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이 주위에 알려지면 그것으로 인한 낙인효과가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스카이데일리
   
“시각을 잃었지만 저보다 힘든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어요. 거기에 골프까지 칠 수 있게 됐으니 삶에 대한 의지는 더욱 확고해졌죠. 요즘에는 친구들이 저를 엄청 부러워해요. 세계대회 나가서 트로피도 받고 이렇게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는 분들도 많아졌다고요. 비장애인으로 1만 가지를 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고작 100가지 밖에 할 수 없어요. 하지만 비장애인 시절의 조인찬에게 ‘1만 가지 일에 총력을 다했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아니요’ 이지만 지금의 저는 100가지에 총력을 다하고 있죠”
 
조 씨는 신체적인 제약은 있지만 할 수 있는 100가지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할 수 없는 9900가지 일에 연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시력을 잃은 뒤 그는 가족에 대한 소중함·타인에 대한 겸손함·사소한 일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 등을 얻었다며 스스로를 ‘마음부자’라고 설명했다.
 
“장애는 원해서 얻는 게 아니잖아요. 원치 않았음에도 맞닥뜨리는 게 장애죠. 원치 않는 일로 인해 좌절할 필요가 있을까요. 자초한 일로 실패를 맛봤다면 낙담하는 게 당연하지만 원치 않은 불행으로 자신을 나락으로 밀어내는 것은 실패로 접어드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를 하찮고 작은 존재로 생각하는 것은 결국 본인 자신이더라고요”
 
시종일관 긍정적인 모습을 보인 조 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강단에도 서고 있다. 그는 ‘시각장애인이니까’라는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 서른 장이 넘는 강연 원고를 2000번 가량 읽으며 모조리 외우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실수 없이 강연을 마치고 긴장된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누군가가 ‘시각장애인은 원래 머리가 좋다’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시각장애인들 대부분은 점자도 잘 읽고 타인의 도움 없이 혼자서 잘 다니죠. 시각을 잃다보니 상대적으로 청각이 유난히 발달하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것들은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죠. 제 강연을 듣고 ‘시각장애인들은 원래 그래’라는 말을 듣고 가슴 아팠던 것도 이런 이유에요. 시각장애인들의 노력은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요”
 
최근 조 씨는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었다. 시각장애 치료비에 의료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그는 강연은 각종 매체를 통해 의료보험 적용 필요성을 피력하고 있다. 황반변성환우회 회장직을 겸하며 오랜 시간 고군분투해 온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절망감에 빠진 환우들에게 희망을 전파하고 있다.
 
“저는 앞을 볼 수 있었던 사람이었고 시력을 뒤늦게 잃었으니까 장애인·비장애인 입장을 모두 알잖아요. 황반변성 환우들과 시각장애인들이 지금보다 좀 더 양질의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그들을 도울 생각이에요. 물론 골프도 하면서 말이죠”
 
[배수람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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