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가수를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콘서트·팬미팅을 앞둔 팬들의 경우 상당한 기대감을 드러내곤 한다. 잠을 설치는가 하면 아예 공연장 앞 길거리에서 장기간 대기하기도 한다. 공연장에서 판매하는 아이돌 관련 상품인 ‘굿즈(Goods)’와 미처 예매하지 못한 입장권을 현장에서 파는 ‘현장판매 티켓’ 등을 구매하기 위해서다. 아이돌가수에 대한 팬들의 사랑 앞에서 무더위·한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팬덤(특정한 인물·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현상) 내 관행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열악한 환경에서 수백명이 몰려 있는 탓에 각종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문제는 공연을 주최하는 연예기획사들의 태도다. 어린 학생들이 열악한 환경에 노출돼 있는데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사태를 조장·방관하고 있는 모습을 내비쳐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진다. 스카이데일리는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의 팬미팅 ‘머스터’가 열린 고척스카이돔을 찾아 밤샘대기 현장을 직접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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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연예인에 열광하는 열성팬들의 이색적인 행동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사회적 이슈가 됐었다. 과거 1969년 영국가수 클리프 리차프가 한국을 찾았을 당시 여대생들이 속옷을 벗어던지며 열광했던 일화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1992년 ‘뉴 키즈 온 더 블록’ 내한 공연 때는 기쁨에 못 이겨 실신하는 팬이 생겨나기도 했다.
인기 연예인을 향한 팬들의 열광적인 모습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특히 콘서트·팬미팅 등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한 노력은 가히 ‘지극정성’이라 표현할 만하다. 선착순 입장 기회를 잡기 위해 현장에서 밤새 줄을 서는 노력은 이젠 예삿일이 됐다.
하지만 이런 팬들의 마음을 이용한 일부 대형기획사들의 행태가 물의를 빚고 있다. 팬들의 안전 문제가 우려되는 상황에도 마땅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어서다. 오히려 사태를 조장·방관하고 있는 모습을 내비쳐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진다. 소속사들의 도 넘은 상술에 어린 학생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아이돌가수 관련 상품 구매 대기줄만 1km…한파 속 23시간 밤샘대기 불사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의 4번째 팬미팅 ‘머스터’가 지난 13일(토)·14일(일) 양일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이하·고척돔)에서 열렸다. 스카이데일리는 첫 날 팬 미팅 종료 이후인 14일 자정 고척돔 현장을 찾았다.
영하 15도의 한파에도 불구하고 수면바지·목도리·담요 등으로 무장한 방탄소년단 팬들의 행렬은 약 1km 가량 길게 늘어져 있었다. 기획사가 판매하는 공식 굿즈(Goods·연예인과 관련된 파생상품·응원봉, 스티커, 피규어 등)를 구매하기 위한 대기줄이었다. 고척돔 현장을 관리중인 경호업체의 설명에 따르면 방탄소년단 공식 굿즈를 사기 위한 팬들의 행렬은 지난 12일(금) 오후 12시부터 시작됐다.
행렬 중에 만난 신혜린(26·여) 씨는 “행사 때마다 나오는 굿즈가 다르기 때문에 늘 새 굿즈를 사기 위해 밤샘대기를 해야 한다”며 “현장에서 사지 못하면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매해야 하는데 이 경우 해외 팬들도 많이 몰리기 때문에 물량이 금방 동이 난다”고 설명했다.
같은 대기줄에 서 있던 한수정(16·여) 양은 “지난번에는 상당히 빨리 와서 지금보다 더 앞 쪽에 있었는데도 사려던 굿즈가 품절돼 속상했었다”며 “지금도 완전 앞쪽이 아니라서 굿즈가 품절될까봐 불안하다”고 말했다.
일부 팬들은 이러한 밤샘대기 현상을 연예기획사나 공연기획사가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장에서 만난 이은영(22·여·가명) 씨는 “연예기획사가 콘서트·팬 미팅 등 각종 대형 공연 행사 때마다 굿즈 상품을 한 번에 일괄 판매하기 위해 팬들의 밤샘대기를 방치하고 있다는 느낌이다”고 피력했다.
화장실 노숙, 팬들 간 싸움 등 빈번…행사 주최 소속사 안전관리엔 ‘뒷짐’
공연 입장권을 현장에서 판매하는 것 또한 팬들의 밤샘대기를 불러오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온라인 예매 후 남은 잔여 입장권 △온라인에서 판매되지 않은 관람시야가 좋지 않은 이른바 ‘극 사이드(side) 좌석’ 입장권 등이 현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표를 구하지 못한 팬들은 현장판매 표라도 구하기 위해 모기장·여벌 옷·돗자리·보조배터리 등을 챙겨 줄을 서며 며칠씩 밤을 새기도 한다. 맨 앞에 줄을 선 사람이 이른바 ‘총대’를 매고 줄을 선 사람들의 출석체크와 대기번호표를 배부한다.
문제는 밤샘대기 과정에서 안전사고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아이돌가수 팬 대부분이 10대 여학생들이라는 점은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밤샘대기를 하다 보니 종종 취객들이 시비를 거는가 하면 추운 날씨 탓에 공연장 내 복도에서 노숙을 하는 일도 다반사다.
하지만 정작 행사를 주최하는 연예기획사들은 밤샘대기 위험에 대한 대비책 마련에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콘서트나 팬 미팅에 많은 팬들이 몰리다 보니 이들에 대한 질서 유지와 안전관리는 늘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는데도 불구하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고척돔 광장에서 만난 김주안(26·여·가명) 씨는 “새벽시간대에 경호직원은 물론 기획사 스태프도 없이 팬들끼리 모여 대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끔 무섭다고 느낄 때가 있긴 하다”며 “대부분이 여학생들인 만큼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고 피력했다.
근처에 있던 박해주(16·여) 양은 “가끔 경호업체보다 팬이 일찍 도착해 줄을 서는 경우도 있다”며 “어제는 경호업체가 펜스를 미리 세워놓지 않고 도중에 설치해서 꽤 긴 줄이 해산돼 팬들이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대기자인 박은영(21·여·가명) 씨는 “대기줄이 1km에 달할 정도로 팬들이 몰리는데도 불구하고 야간에는 이를 통솔하는 경호업체가 배치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혼란스러운 상황이 빚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예민해진 팬들 간에 다툼이 벌어지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13일 새벽에는 고척돔 앞에서 일부 팬들이 대기 질서가 무너진데 대해 항의하는 과정에서 팬들과 경호원을 향해 엑소의 팬인 ‘엑소엘’을 빗대어 비난한 것이 SNS 상에서 화제가 돼 팬덤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입으론 밤샘대기 금지, 행동은 밤샘유도…“10대 소녀팬 상대 맹목적 돈벌이” 분분
팬들 사이에서도 밤샘대기 문화가 없어져야한다는 목소리가 속속 나오고 있다. 고척돔 광장 앞에서 만난 권예은(16·여) 양은 “이번 한파 때문에 밤샘하지 말라는 빅히트(방탄소년단 소속사) 측의 공고가 있었지만 그러면 밤샘대기가 필요 없는 환경을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며 “차라리 사전 수량 조사를 해서 예약판매를 하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전문가들도 밤샘대기 문화의 폐해와 함께 기획사들이 팬 서비스 차원에서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소장은 “열악한 환경에서 대규모의 팬덤이 밤샘대기를 하다 보니 집단 스트레스로 인해 무질서, 팬덤 내 갈등, 타 팬덤 빗댄 조롱 등의 사건이 발생하고 이는 결국 팬덤에 대한 사회적 비난을 초래하게 된다”며 “기획사측은 이 같은 현상이 결국 아이돌 활동에 제약을 줄 수 있는 점을 유의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획사 측은 자신들이 팬덤 내 과열 경쟁을 부추긴다는 자의식을 가지고 안전요원 배치를 늘리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비록 재무·실무적 비용이 초래되겠지만 산업의 장기적 발전 차원과 충성도 높은 팬들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팬들이 줄을 서는 문화가 국내 공연장 환경과 한국 문화와도 관계가 있다고 본다”며 “한정된 공간에 1~2만명의 대형 인원을 수용하고 한정 수량 물건을 한 번에 대규모 인원에 판매하겠다는 마케팅이 문제의 근원이다”고 지적했다.
[이슬비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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