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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진단]-고은시인 성추문 논란
고은 밉다고 작품까지…성추문에 멍드는 ‘민족영혼’
시인 개인 향한 비판, 세계적 수준 작품에 불똥…“예술성 지켜져야”
이경엽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18-02-19 17:03:54
유명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에 성추행·성폭행 피해를 입었다는 할리우드 여배우들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운동’은 지난해 10월 북미에서 시작해 점차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미투운동’의 경우 서지연 검사의 검찰내 성추행 폭로가 결정적인 도화선이 됐다. 익명소통 어플리케이션 ‘#미투’ 게시판을 통해 평범한 직장인들의 사내·외 성추행 고발이 이어졌고 점차 그 운동의 불길이 사회 곳곳으로 번졌다. 문단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문단계의 경우 2016년 10월 ‘문화계 성추문 폭로’가 있었으나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이번 미투운동의 영향으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가장 논란이 된 인사는 국내 문단계를 대표하는 고은 시인이었다. 최영미 시인이 지난해 12월 발간된 계간지 ‘황해문화’에 게재한 ‘괴물’이란 시를 통해 고은 시인의 성추행 행태를 폭로했고 미투운동의 여파로 사안이 이슈화 되면서 여론의 이목이 집중됐다. 사안이 일파만파로 확산되면서 한국 문단계의 거장으로 평가돼 온 고은 시인의 명성은 크게 휘청이고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고은 시인을 둘러싼 성추행스캔들과 이로 인한 사회적 파장 등을 현장진단했다.

  
▲ 수원시는 고은 시인에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자택을 빌려주고 있다. 수원시는 이를 위해서 약 9억원의 리모델링 비용을 수원시민의 세금으로 지출했다. 이후 매달 약 1000만원씩 관리비를 세금으로 지출해 왔다. 하지만 이번 성추행스캔들로 인해 수원시민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혈세 지원을 해선 안된다는 반발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사진은 경기 수원시 장안구 상광교동에 위치한 고은 시인 자택 ⓒ스카이데일리
  
   
‘한국 문단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원로문인 고은(본명·고은태·84·남) 시인을 둘러싼 성추행 파문이 잠잠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성추행 스캔들로 시작된 논란은 시인의 문학적 가치 폄하 분위기로 이어지는가 하면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공간 역시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됐다.
 
지금의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여론의 반응은 분분하다. 작품에 작가 개인의 도덕적 잣대를 적용해선 안 된다는 시선과 작품을 더 이상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게 됐다는 시각으로 양분된다. 전자의 경우 앞서 설치된 고은 시인을 기리는 공간이 유지돼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으나 후자는 이마저도 납득할 수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고은 시인이 쌓아 올린 그동안의 업적이 새삼 재조명 되고 있다. 고은 시인은 그동안 국내 최정상급 시인으로 평가되며 한국 문단계의 거장으로 불려왔다. 1958년 조지훈 시인의 추천으로 ‘폐결핵’이란 시를 통해 등단한 그는 꾸준하고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한국 문단계의 버팀목이 돼 왔다. 1970·80년대 저항시인으로 기록되며 신군부에 의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그는 다양한 시각과 주제의 시를 저술해 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특히 해외에 한국 문학의 우수함을 알리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한 인물로도 평가돼 왔다. 20개 언어로 번역·출간되는 그의 시는 노벨상의 본거지 북유럽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세계 각국에 그의 매니아층이 존재하는 것으로도 전해진다. 대표작으로는 1986년부터 2010년까지 쓰여진 연작시 ‘만인보’등이 있다.
 
문단계의 거장 고은 시인의 추락…“개인적 문제로 문학적 가치까지 훼손돼선 안 돼”
 
이번 성추행 스캔들과 관련해 고은 시인은 “30여년 전 여러 문인들이 같이 있는 공개된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격려하는 차원에서 손목도 잡고 그랬던 것 같다”며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오늘날의 풍토로 ‘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이라 생각하고 뉘우치겠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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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게보기=이미지클릭 [그래픽=배현정] ⓒ스카이데일리
 
고은 시인 스스로 사실을 일부 인정하면서 위대한 시인으로 여겨졌던 그의 명성은 단숨에 추락하게 됐다. 대다수는 고은 시인 개인의 문제를 그동안 쌓아 올린 문학적 명성에까지 적용해선 안된다는 반응이지만 일부는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며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은 시인의 업적을 기리고자 전시관과 거주할 공간을 마련한 일부 지자체의 경우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서울시와 수원시가 그 주인공이다.
 
서울도서관 내에 설치된 ‘만인의 방’은 고은 시인의 문학적 성취를 기념하는 대표적인 사업으로 손꼽힌다. 서울시가 3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고은 시인의 서재를 그대로 본 따 지난해 11월 조성했다. 시인이 오늘날 문학적 성취를 얻기 위해 참고했던 서적들과 메모들이 현장감 있게 조성돼 있다.
 
설립 3달도 채 안된 이곳은 현재 조롱과 예산낭비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윤석존 서울도서관 행정지원과 주무관은 “만인의 방 존치여부와 관련해 항의전화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현재 여론의 추이 등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단계다”고 언급했다.
 
상당수의 시민들은 이러한 분위기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 도서관을 즐겨 찾는다는 조장경(65·남) 씨는 “고은 시인 개인의 행적에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훌륭한 시인으로 오늘날까지 존경받고 또한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거론될 수 있었던 이유는 작품들 때문이었다”며 “사람은 미워할 수 있지만 그의 문학적 성취까지 폄하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 고은(사진) 시인은 최근까지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자로 거론되던 원로시인이다. 하지만 최근 성추행 스캔들에 휩싸이면서 시인의 작품까지 폄훼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경기도 수원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고은 시인은 2012년부터 경기 수원시 장안구 상광교동에서 거주 중이다. 시인이 거주 중인 단독주택은 수원시가 시인의 문학적 성취를 인정하고 기리기 위해 9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리모델링한 곳이다. 매달 1000만원에 가까운 관리비를 시비로 지급해 왔다.
 
그러던 중 고은 시인 개인의 문제로 구설수가 불거져 나오자 수원시의 지원 정책을 문제 삼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가 계속되자 80세 넘은 늙은 시인은 집 안에 틀어박혀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수의 시민들은 고은 시인 개인의 문제 때문에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보금자리까지 문제 삼는 것은 가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고은 시인 자택 인근에 위치한 식당 관계자는 “성추행 스캔들이 불거진 이후 시인이 집밖으로 나서거나 다른 이들이 출입하는 모습 또한 본적이 없다”며 “고령의 시인이 말년에 구설에 휘말려 두문불출 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측은한 마음도 든다”고 전했다.
 
이태환 수원시 문화예술과 주무관은 “현재 고은 시인은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상태다”며 “만약 시인이 타 지역으로 이주하더라도 시인이 머물렀던 공간은 또 다른 문화예술인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언급했다.
 
“작품 자체가 가진 뛰어난 업적을 조명해야…무차별적 폄훼 움직임 안타깝다”
 
▲ 서울시는 서울도서관 3층에 만인의 방(사진)을 꾸몄다. 만인의 방에는 고은 시인이 평소에 읽던 책들과 평소에 사용하던 안경, 필기구, 원고지 등이 전시돼 있었다. 만인의 방은 고은 시인의 대표작 ‘만인보’에서 따왔다. ⓒ스카이데일리
  
현재 한국 문단계에서는 다소 안타깝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시인을 넘어 시인의 작품과 업적까지 동일하게 치부돼선 안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서울시·수원시 등 지자체가 지원해 조성한 공간들 역시 우리 문학의 성취라는 입장에서 당연히 보존돼야 한다는 반응이다.
 
김병익 문학평론가는 “뛰어난 예술가들의 업적은 존중하되 그들의 약점이나 실수는 보호하는 사회적 미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미 80세가 넘은 고은 시인 개인의 행태에 대해 마치 없던 일을 최근에 벌인 것처럼 새삼스럽게 까발리는 게 과연 좋은 일인가 싶다”고 말했다.
 
이어 “예술에서 도덕적 청렴함이 반드시 플러스가 되는 건 아니다”며 “오히려 뛰어난 예술가들은 스스로의 약점·욕망·좌절 같은 요인들은 예술의 깊이를 더욱 깊게 해주는 역할을 해내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인의 과오를 넘어 그의 작품세계가 비난받거나 혹은 사회적으로 공개 힐난 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문인들 대표단체인 한국작가회의는 다소 조심스러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경자 이사장은 앞서 10일 개최된 정기총회를 통해 “고은 시인과 관련된 논란은 오는 4월 정기이사회서 다룰 예정이다”고 밝힌 바 있다.
 
[이경엽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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