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지정 민속문화재인 종로구 가회동 ‘백인제 가옥’ 의 바로 옆 필지 위에 있던 건물이 백인제 가옥의 일부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2년 철거된 건축물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개인사유지 위의 건물이었고 문화재에 지정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철거 당시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백인제 가옥 입구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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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롯데그룹 영빈관 신축 전 기존에 있던 건물이 서울시 지정 민속문화재인 백인제 가옥의 부속 건물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백인제 가옥이 민속 문화재의 가치가 있는 만큼 신 회장이 허문 건물 또한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할 가능성이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내는 여론도 일고 있다.
또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백인제 가옥이 전체 원형을 찾을 가능성이 아예 없어져 버렸다. 아무리 개인 재산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런 제재 없이 철거된 것이라면 서울시의 문화재 관리부실도 있다”는 비판과 지적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시민단체들 사이에서는 “재벌가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보존가치가 높은 문화재였을 지도 모를 건물을 철거하도록 눈감아 준 것은 아니냐”는 의혹까지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영빈관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개인 소유인 것을 보면 ‘박원순 시장의 재벌기업 봐주기’로도 비춰질 수 있는 사안이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전통 한옥 아름다움과 근대적 변화 어우러진 20세기 도시한옥 ‘백인제 가옥’
문화재 관련 전문가 등에 따르면 최근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가회동 백인제 가옥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한옥이다. 근대 한옥의 양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어 상당한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민족의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시대적 특징과 동시에 근대적 변화를 수용한 독특한 건축 양식이 압권이다. 이런 백인제 가옥은 그 가치를 일찌감치 인정받아 1977년 서울시 민속자료(현 민속문화재)22호로 지정됐다. 그 후 보수공사를 거쳐 상당수 원형을 보존한 채 유지되고 있다.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백인제 가옥에 대해 “한 마디로 ‘20세기 도시한옥’의 모습을 고스란히 표현해 냈다”며 “이층집, 유리창문 등 근대적 요소가 가미돼 있다. 또 일제시대 권력가(한상룡)가 지은 집답게 당시 최상의 재료·기법으로 최고의 목수가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 자료: ‘가회동 백인제 가옥의 변화와 특성 재고’ (박상욱, 2015) 중 1913년 원형복원 배치 및 지붕평면도 ⓒ스카이데일리
백인제 가옥은 지난 2012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공관으로 사용하려다 반대 여론에 부딪혀 무산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유명세를 탔다. 지난해부터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운영·관리를 맡게 되면서 일반인들도 관람할 수 있도록 개방됐다. 단, 문화재 보존을 위해 예약서비스 신청을 하지 않으면 가옥 내부까지 관람이 불가능하다. 가이드 해설과 함께 가옥 내부를 보려면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시스템을 통해 예약해야 한다.
관람객들 보는 내내 감탄…“신동빈 회장 소유터에 있던 건물 없어 아쉬워” 분분
기자가 직접 백인제 가옥 관람 프로그램을 체험해 봤다. 관람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한 시민 대다수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백인제 가옥의 내부를 둘러봤다. 큰 규모와 화려한 장식품, 독특한 건축양식, 별당에서 내려다보는 북촌 전망 등으로 인해 볼거리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담당 가이드에 따르면 백인제 가옥은 건축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 일본식 복도와 다다미방, 붉은 벽돌과 유리창 등이 많이 사용된 것이 그 증거다. 이는 조선시대 전통한옥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백인제 가옥만의 특징이다.
관람객들은 백인제 가옥을 보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지만 관람을 끝낸 후에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바로 옆 93-3번지 일대에 세워진 롯데그룹 영빈관 자리 역시 백인제 가옥의 일부라는 사실이 강력히 추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관람객들은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난 백인제가옥의 전체 원형이 보존됐으면 하는 아쉬움을 토로한 것이다.
관람객 김수진(40) 씨는 “(철거된 건축물)도 같이 있었으면 훨씬 더 좋았을 것 같다”며 “특히 건물 주인이 일본인으로 알려진 롯데그룹 회장이라라서 아무래도 좀 더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람객 김금수(67) 씨는 “처음 지어졌을 당시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볼 수 있었으면 너무 좋았을 것 같다”며 “분할된 후 사유지이기 때문에 문화재로 지정이 안 된 것은 어쩔수 없지만 그래도 너무 안타깝다”고 전했다.
박상욱 자향헌 대표 및 건축학계 “롯데 영빈관 자리는 백인제 가옥 일부 ‘손님채’” 주장
박상욱 자향헌 대표는 백인제가옥에 대한 논문만 세 편을 냈을 정도로 가옥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그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지난 2012년 철거된 93-3번지 위의 건축물을 백인제 가옥의 손님채로 추정된다.
박 대표는 “백인제 가옥이 최초 문화재로 지정될 당시(1977년), 문화재 위원들이 93-3번지에 있는 건축물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지정하지 않은 것이지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었기 때문에 제외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는 바꿔 말하면 문화재 가치가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 한옥과 근대적 가옥의 모습이 어우러진 백인제 가옥은 영화 ‘암살’ 촬영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백인제 가옥 관람객들은 “가옥의 옛 터에 있던 건물까지 포함해 원형이 보존돼 있어야 하는데 너무 아쉽다”는 마음을 표현했다. 사진은 백인제 가옥 내외부 전경 ⓒ스카이데일리
그는 “당시 한상룡은 자신의 집(현 백인제 가옥)에서 수많은 정재계 인사의 방문과 연회를 소화했다”며 “대지의 가운데 위치시킨 접객의 중심 공간 사랑채를 제외한다면, 출입대문에 가까운 곳에 배치시킬 수 있는 접객관련 건축용도는 손님채(객실)밖에 없다는 점에 비춰볼 때, 93-3번지 위에 있다가 사라진 건축물은 손님채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과거 1976년 백인제 가옥 최초 조사 당시 보고된 가옥의 도면은 최경진 여사가 머물던 가옥의 범위에 국한된 것으로, 그 범위는 백인제 가옥의 옛 소유주였던 최선익이 분필한 93-3번지가 제외된 대지 범위에 해당된다”며 “결국 다른 집으로 보였기 때문에 본 가옥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문화재 위원들이 인식하지 못했을 것으로 해석된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그렇기 때문에 93-3번지에 존재했던 건축물은 그 존재를 몰랐던 건축물이었지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었기 때문에 제외됐던 것은 아니다”며 “이 내용은 한국건축역사학회의 논문심사를 거쳐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으로 개인적 견해를 넘어 최소한 한국건축학계 주장에 해당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만약 건물이 존치돼 있었더라면 추후에라도 땅과 함께 매입해 전체 원형을 회복할 수 있는 희망이라도 있었을 텐데 지금은 아예 가능성 마저 사라져 아쉬움이 남는다”는 견해를 밝혔다.
손님채 추정 건물 철거 허가한 서울시 문화재 관리 부실 논란…시측 “근거없는 추정”
롯데그룹 영빈관이 지어진 장소가 과거 백인제 가옥의 일부(손님채) 였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여론 일각에서는 건물 철거를 허가한 서울시의 문화재 관리 부실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 측은 “93-3번지 위의 건축물이 손님채라는 것은 근거가 부족한 (박 대표의)추정일 뿐 최경진 여사의 증언, 문헌 등에 전혀 나와 있지 않다”며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시 문화재연구팀 관계자는 “1977년 문화재로 지정되기 전 문화재 위원들이 당시 거주하던 최경진 여사(마지막 소유주, 백인제 부인)에게 직접 증언을 듣는 등 철저한 조사를 거친 뒤 결정된 부분이다”며 “1935년 필지가 분할 된 이후 93-3번지는 백인제 가옥에 해당되지 않고 다른 개인의 사유지 위의 건물이었을 뿐이다”고 반박했다.
백인제 가옥의 가이드 역시 비슷한 의견을 보였다. 그는 “그 건물이 있던 부지는 부속채랑 행랑채 주차장으로 사용된 것으로 안다”며 “메인은 현 백인제 가옥 부지였기 때문에 문화재적 가치가 부족한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전했다.
또 현재 백인제 가옥의 운영 및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서울역사박물관 관계자는 “예전(1977년)에 결정된 사안을 놓고 지금 가치를 논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그 (손님채 추정)건물에 대해선 잘 알지도 못하고 40년 전의 일이기 때문에 건물의 가치를 추측할 수도 없고 알 수 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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